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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흑룡강성 출신 리우INB 강문천 사장(25)은 스무 살에 한국 땅을 밟은 뒤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입국 5년 만에 한 해 매출 10억원을 올리는 음식점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성장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조차 한국 땅에서 쉽게 이루지 못할 일을 중국 동포가, 그것도 유학생 신분으로 대학에서 공부한 2년을 빼면 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4년도 채 안되는 기간에 일궈낸 성과다.
청년사업가 강문천 사장의 성공스토리를 들어봤다.
강문천 사장은 한국에 올 때만해도 사업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10여년 먼저 한국에 먼저 와있던 어머니의 권유로 유학을 선택 할 때도 진로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한국 물정을 잘 모르고 단지 자신과 누나를 뒷바라지 해주신 어머니가 한국에서 단순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외엔 한국행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대학 선택도 막연히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통하니 관광통역을 전공하면 직장을 구하기가 수월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경상남도 마산대학 관광통역과를 진학했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사회인이 된 뒤에도 처음에 생각한 안정된 직장을 찾지 못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순 노동 뿐이었다.
졸업 후 서울 대림동으로 올라온 그는 어머니와 함께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새벽부터 일어나밤 늦게까지 고되게 일하는 반복된 일상의 연속이었다.
때로 아침을 거르고 현장에 달려가기도 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만큼 수입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1년여를 노동현장에서 보낸 강사장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단순노동을 계속한다면 미래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것인지 생각이 많아졌어요."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자 지금보다 나은 삶을 위해 돈을 벌어야 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러기 위해 내 사업을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일을 다니면서도 어떤 아이템이 좋을지 사업구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고민 고민끝에 찾아낸 사업 아이템은 'PC방' 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처음 PC방 사업을 하겠다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어린나이에 사회경험도 없이 무슨 사업을 하느냐'시며 펄쩍 뛰셨어요. 다행이 누나가 저의 '20대 청년의 도전정신'을 응원해주었어요."
누나는 "젊었을 때 망하기도 하고 성공해 보기도 해야 된다"며 함께 어머니를 설득했다.
그리고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동생을 위해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조금씩 모아둔 돈을 사업자금으로 선뜻 지원해줬다. 그러나 우여곡절끝에 오픈한 강사장의 생애 첫 사업인 PC방 운영은 시작부터 기대 이하였다.
무엇보다 PC방의 입지선택이 좋지 않았다. 당연히 예상보다 매출은 저조했고 1년이 지나면서 폐업위기까지 몰렸다.
때마침 전세로 입주한 건물이 팔렸는데, 새 건물 주인이 PC방을 한다며 이사를 권유했다.
강사장은 폐업위기에 몰린 PC방을 접기로하고 그동안 투자한 인테리어 비용과 컴퓨터를 건물 주인에게 매각 처분했다.
첫 사업으로 보기좋게 실패 했지만 다행히 투자원금은 보전할 수 있었다.
■ 동포가 원하는 채팅과 인터넷 영상 통화로 "생애 처음 시작한 사업인데 보기 좋게 실패하고 나자 오기가 생겼어요. 오기가 생기니 다시 해보자는 의지도 생기더군요."
PC방 사업을 접은 강사장은 철저하게 실패 원인을 분석 했다.
그는 "입지선정부터 잘못됐어요. 더구나 어디를 가도 똑같은 PC방 사업아이템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중국동포들을 위한 PC방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강사장은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아이템을 다시 구성했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가족 화상통화가 가능한 PC방' 이었다.
게임위주의 손님 뿐 아니라 중국 동포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 강사장은 중국에 자녀를 두고 한국에 온 부모들은 항상 자식 걱정을 한다는데 착안해 채팅과 영상으로 인터넷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실내를 오픈형태의 개방구조로 바꾸었다.
새로 개업한 PC방은 강사장의 예상이 적중했다. 중국에 자녀를 두고 온 부모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도 몰랐던 동포들에게 적은 비용으로 가족과 통화 할 수 있다는 소문은 금방 퍼졌고 PC방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찼다.
6개월이 지나면서 빚을 갚을 만큼 매출이 급상승했다.
그리고도 어머니가 평소 하고싶어 하던 식당을 열어줄 만큼 여유자금이 생겼다. '마라샤브성'으로 간판을 내건 날 어머니는 16년 만에 단순노동 일꾼에서 식당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강사장이 이렇게 공격적인 사업을 펼치는 이유는 대림동만의 특별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고 서울 경기주변 중국동포들이 주말이면 대림동으로 모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라샤브성' 역시 대박행진을 펼쳤다. 개업하고 6개월이 지나 옆 가게까지 늘렸으며 매출은 두배로 뛰었다.
■ PC방서 식당 그리고 프랜차이저 사업까지 그러는 사이 PC방 점포는 두개로 늘었고 두개의 포켓볼 당구장, 그리고 '마라샤브성'은 건대 점까지 확대했다.
PC방과 당구장 음식점이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자 강사장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업을 찾아 중국 출장도 잦았다. 그러던 중 중국에 4000개의 지점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식당 '미국가주우육면대왕' 본점이 눈에 띄었다.
중국의 기차역 주변이나 사람이 많은 지역에 흔히 보이는 중국 프랜차이즈로 소고기탕면 전문 국수집이다. 그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국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본사에 한국 총판권사업을 제안했다.
처음에 본사 임원을 만나 협상을 벌었으나 쉽지 않았다. 본점의 임원들은 너무 젊은 친구가 제안하는 사업에 따져보지도 않고 부정적 결론은 내렸다.
강사장은 포기하지 않고 사업의 중요성과 사업계획을 보여주며 임원들을 설득했다. 결국 강사장의 사업에 대한 패기와 열정은 중국에서도 통했다.
곧 바로 '한국 총판권' 을 들고 한국에 돌아와 대림동에 1호점을, 2호점을 안산역 부근에 오픈했다.
중국동포들은 중국에서만 맛보던 식당이 한국에 생긴 것을 무척 반겼다. 한국을 방문한 중국 바이어들도 찾는 명소가 됐다.
■ 24시간 주말도 쉬지 않고 생각하는 '강사장' 강사장은 지금도 사업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강사장의 이런 공격적인 사업마인드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어머니와 1년 동안 단순노동이 가장 큰 경험이고 제가 중국에 있었다면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그는 또 다른 사업에 투자 했고 'INB 요식협회'도 만들어 70여명의 회원이 있다.
"동포들도 돌잔치, 환갑잔치, 생일잔치, 결혼식, 피로연 등 매월 행사가 많아요. 그런데 크고 작은 행사로 한국의 식당에 가보면 동포들은 항상 불만이예요 한국인의 입맛과 다르기 때문이죠."
강사장은 여기서 '중국 전통 식당 뷔페'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이같은 사업아이템을 토대로 대림동에 지난달 280평 규모 건물 두 개 층을 계약하고 인테리어 중이다.
'동방만두왕'으로 중국 '사천요리'와 '동방요리' 전문으로 하는 뷔페식당을 12월말에 오픈한다.
■ '뜻이 있으면 성공 한다(유지경성 有志竟成)' 강사장은 아직 젊고 패기가 있으며 시간은 부족하고 걱정도 많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행운도 있었고 노력도 무척해서 조금 성공했지만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더 멀고 험한 여정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 연매출 20억원대를 바라보는 그는 조만간 자사 건물 매입과 5년 후 결혼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 INB요식협회 통합구매시스템을 만들어 회원사들이 저렴한 식자재 구입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아울러 그는 사회사업 및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함께 봉사하는 기업인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