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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일반

    김형태 "인혁당 사형수의 1분, 잊지 못해"

    노컷뉴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3년 6월 11일 (화)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형태 변호사

    ◇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용산 참사, 임수경 사건, 문규현 사건.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사건에 늘 함께 했던 변호사가 있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변 창립 주도하셨고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도 지내셨고 지금은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 지난 30여 년간 재판 변론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처음으로 책으로 묶어냈네요. 그래서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형태>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게 한겨레신문에 쭉 연재하셨던 것 묶어내신 거죠?

    ◆ 김형태> 네, 1년 동안 주말마다 했던 거죠.

    ◇ 정관용> 제목이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 이게 무슨 뜻이에요?

    ◆ 김형태> 글 중의 하나가 인혁당 사형수들 얘기인데요. 그중에서 이수병 선생님이라고 경희대 그때 졸업하고 나서 8명의 사형당한 분 중의 한 분인데요. 그분이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 받기 1주일 전에.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인데 부인이 그때 29인가 아주 젊은 나이인데. 등에다가 아들은 걸리고 딸은 업고 그러고 매일 구치소를 찾아가서 문틈으로 남편 혹시 지나다니나. 왜냐하면 그때 일체 법정 빼고는 면회를 안 시켰거든요. 그래서 지나가는 걸 보려고 그렇게 하니까 교도관 한 분이 너무 딱하니까 얘기를 한 거예요. 내가 문 열어줄 테니까 마당에 들어와서 절대로 아는 척하지 마라. 그 대신 얼굴만 보고 나가세요 해서.

    ◇ 정관용> 남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 김형태> 그렇죠. 그래서 문을 이제 열어주고 들어갔죠. 교도관이 다른 교도관이죠. 그 교도관이 포승 채워서 변호인 접견하러 마당을 가로질러가는 그 순간이에요 그게. 그래서 한 1분 정도 되는 시간인데 이수병 선생이 나이는 젊지만 눈이 좀 안 좋아서. 안경도 안 썼는데 잘 안 보여서 자기 처하고 애들이 와 있는 걸 못 보고 쭉 걸어가다가 바로 코앞에 와서 딱 마주쳤어요. 그런데 이쪽에는 아는 체를 안 하고 부인은. 그런데 딱 마주치니까 이수병 선생님이 너무 놀라서 애를 들여다보고 등에 있는 애보고 딱 두 마디를 한 거예요. ''''어, 많이 컸네? 많이 컸네?'''' 딱 두 마디 하니까 포승줄에 묶고 갔던 교도관이 ''''왜 그래, 애 보고 싶어서 그래?'''' 꿈에도 생각을 못한 거예요. 그걸 자기 친애라고는 모르고 빨리 가 그러고서는 갔어요. 그게 정말 1분 정도. 그러니까 부인하고는 말 한 마디도 못 건네고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갔는데. 그리고 일주일 있다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내렸고요. 사형 선고 내린 다음 날 사형 선고했던 통지 오기도 전에 사형 집행을 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그 부인이 나중에 제가 얘기를 들었는데 그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애 아빠! 그러고 불러라도 볼 걸. 그렇게 한 얘기를 제가 듣고 하여튼 세상에서 정말 짧은, 그렇지만 가장 영원한 만남. 그렇게 제목을 붙였죠.

    ◇ 정관용> 그게 사법 살인사건 아닙니까?

    ◆ 김형태> 네.

    ◇ 정관용> 재심사건 맡으셔서 이건 다 무죄로 판명 나고.

    ◆ 김형태> 그렇죠. 그때 무죄를 하면서도 판사가 그러더라고요. 저하고 대학교 동기였는데. 우리가 무죄를 선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간 분들이 이 차례에 돌아올 리도 없고. 그러면서 판사도 굉장히 심리하면서 쭉 그런 걸 얘기를 듣고 보고 그래서 안타까워했는데 안타까움으로 그냥 끝나는 거죠. 돌아올 리는 없고.

    ◇ 정관용> 유족들한테 그래도 보상은 충분히 됐습니까?

    ◆ 김형태> 보상문제가 참 답답한데요. 그러니까 처음의 8분은 말하자면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재심하고 재판하면서 검사가 항소를 안 했어요. 그래서 빨리 재판이 끝났고 1심에서. 그다음에 민사재판을 걸어서 손해배상을 일정 부분, 그래도 돈으로 상당 부분 이자가 될 정도가 나왔는데 항소를 역시 안 해서 빨리 끝났습니다. 그랬는데 그때 제일 컸던 게 이자거든요. 그러니까 75년에 이분들이 죽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이자가 연 5% 하면, 40년 치면 그것만 해도 벌써 두 배거든요, 원금보다 두 배. 그러고 나서 뒤에 징역살이 했던 민청학련, 인혁당 이분들이 한참 뒤에 최근까지 소송하고 있는데. 대법원에서 태도를 바꿔서 이자가 세월이 오래됐기 때문에 과거부터 줄 수 없다. 지금부터 줘야 된다. 그거는 사실은 법 논리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되죠. 왜냐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못했으면 그때부터 줘야 되는 거고 돈 꿔갔으면 그때부터 이자 갚아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세월이 얼마가 지나면 그때부터 주지 말라는 건지 기준도 없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깎였어요. 문제는 뭐냐면 고등법원까지 과거부터 이제 주라고 판사가 얘기를 해서 국가가 지급을 했습니다, 가지급을. 그런데 대법원에서 바꿔버려서.

    ◇ 정관용> 도로 내놓아야 돼요?

    ◆ 김형태> (웃음) 지금 도로 내놓게 생긴 상황이죠. 그 액수가 굉장히 커서.

    ◇ 정관용> 대법원 한 번 결정되면 뒤바꿀 수 없는 거죠? 그건.

    ◆ 김형태> 그렇죠.

    ◇ 정관용> 아이고.

    ◆ 김형태> 과거사 사건 전반에 관해서 지금 전체적으로 대법원이 그런 식으로 판결하고 있고요. 그다음에 과거사에 대한 그걸 굉장히 빡빡하게 해서 아마 한동안 재심이 많았었는데 점점 어려워지는.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 인혁당 사건으로 해서 제목을 따오신 거군요. 그리고 부제가 ''''한국현대사를 뒤흔든 사건들'''' 이렇게 되어 있고. 대학이 76학번이시고 변호사를 몇 년부터 하셨죠?

    ◆ 김형태> 81년에 제가 사법시험 돼서 83년에 변호사 자격 땄죠. 그런데 그때부터 군대에 법무관으로 가서 이런 저런 관련 일들, 변론도 하고 그랬으니까 아마 83년부터 시작이라고 보면 30년 된 거죠.

    ◇ 정관용> 처음 시작할 때부터 뭔가 민주화 또 인권 이쪽 변호사 선배들하고 함께 하셨던 거잖아요, 사실.

    ◆ 김형태>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로펌이라고 국제거래 좀 하다가. 그때 87년 이럴 때 민주화가 굉장히 급격히.

    ◇ 정관용> 6월 항쟁 있고 할 때.

    ◆ 김형태> 6월 항쟁이 팽창하면서 변호사들도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야, 우리도 변호사를 그냥 명망가가 아니라 운동의 하나로써. 그러니까 정말 그때 민족, 민중 이런 거. 그걸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그냥 심부름꾼 노릇으로써 변호사를 해 보자 이렇게 하면서 나왔던 게 민변이라고 지금 컸죠. 한 600명 정도 되는. 그때 처음 시작했죠.

    ◇ 정관용> 그걸 처음 만들면서부터 그런 민주 인권 변론의.

    ◆ 김형태> 그런 셈이죠.

    ◇ 정관용> 그러니까 돈은 많이 못 버셨을 거고. (웃음) 그런데 이 책에 보면 인혁당 사건과 비슷한, ''''조각난 나라에 산다는 것'''' 이런 부제를 달고 있는 임수경, 문규현, 비전향 장기수, 송두율,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이런 등등. 이른바 분단과 이념에 관련된 것. 또 하나는 누가 그를 망루에서 떨어뜨렸는가. 용산 참사, 한진중공업 박창수 죽음 이런 등등등. 즉, 이념적 분쟁 아니면 소외된 사람들, 노동계급 이런 쪽의 사건들이 주로인데. 치과의사 모녀 그 살인사건은 어떻게 해서 맡게 되신 거예요? 이건 이른바 인권 이거랑 조금 관련 없는 것 아닌가요?

    ◆ 김형태> 말하자면 그냥 일반 전형적인 형사사건이고. 사람이 애도 죽고 어머니도 죽었기 때문에 유죄가 확정이 되면 사형 선고를 피할 수가 없는데.

    ◇ 정관용> 그게 몇 년도였죠?

    ◆ 김형태> 그게 96년입니다.

    ◇ 정관용> 96년. 기억 못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 김형태> 96년에 불광동에서.

    ◇ 정관용> 엄마와 아기가 죽었는데.

    ◆ 김형태> 치과의사를 하는 어머니하고 한 살 난 딸이 욕조에서 벗겨진 채로 떠 있었어요. 목이 졸리고 그러니까 남편이 외과의사인데 남편이 죽였다라고 해서 구속이 됐고. 그래서 1심에서 사형 선고 받았어요. 저도 그때 그것 보고 참 몹쓸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 정관용> 어떻게 연결된 거예요?

    ◆ 김형태> 항소심 시작할 때 그 누나가 천주교 인권회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제발 좀 동생 살려달라. 그래서 제가... 선입견이 굉장히 안 좋았죠, 저도. 저렇게 끔찍한 인간을 내가 뭘 도와주나? 어쨌든 두세 번 구치소에 찾아갔더니 정말 이 사람이 순진한 사람이에요. 예를 들면 처가 마지막 시신 사진에 보면 눈썹을 그렸어요. 그건 남편이 출근한 후에 그리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그 눈썹을 그렸다는 건 남편 출근 이후라는 게 아주 유력한 증거가 돼서.

    ◇ 정관용> 남편 출근 시키고 자기 출근하려고 화장을 했다 이거죠?

    ◆ 김형태> 그래서 야, 이거 눈썹 그렸네 그랬더니 본인이 ''''그거 문신입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변호사가 그렇게 막 확신을 갖고 뛰고 있으면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문신으로 얘기 안 하면 되는데. 문신했다는 거는 아무도 몰라요, 남편밖에. 친정어머니도 모르고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면 되는데 하여튼 그걸 굳이 자기한테 불리한 얘기를.

    ◇ 정관용> 야, 이거 김 변호사가 보니까 거짓말 하려고 했는데 피고인이 ''''그건 안 됩니다.'''' 이렇게 한 셈이네요.

    ◆ 김형태> 그런 셈이 된 거죠, 사실은. 그리고 그것 이외에도 몇 가지 식기세척기의 그릇 개수도 자기한테. 나는 유리한 쪽으로 짜서 물어봤더니 또 불리한 얘기를 막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 확실히 아니구나, 그런 것 가지고.

    ◇ 정관용> 그렇게 순진하게 자기한테 불리할 수도 있는 얘기를 하면서 자기는 죽이지 않았다라고 해요?

    ◆ 김형태> 그렇죠,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죽였다는 얘기는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절대 죽이지 않았다.

    ◇ 정관용> 그러니까 아, 이렇게 순진한 사람인 걸 보면 믿어도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죠?

    ◆ 김형태> 네.

    ◇ 정관용> 그래서요?

    ◆ 김형태> 거기서 쟁점이 시신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거, 그게 몇 시간 만에 굳어지느냐. 또 시체를 옮기면 이렇게 피가 내려와서 딱딱하게, 까맣게 자색으로 시반이라고 그러는데요. 그게 몇 시간 만에 이동하면 그렇게 되느냐. 그다음에 위에 음식물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그다음에 불난 시간이 언제냐, 이런 몇 가지 아주 쟁점이 많았는데. 그 수많은 쟁점들에 관해서 사실은 저희가 기존 법의학 책에 나와 있는 걸 다 뒤엎는 새로운 것들을 워낙 많이 찾아내고. 그래서 그건 주로 외국 법의학자들의 최신 성과를 다 끌어당겼죠.

    ◇ 정관용> 이게 한 8년 걸렸죠? 재판.

    ◆ 김형태> 그렇죠. 그래서 2심에서 뒤집혀서 무죄가 나왔고요. 대법원에 갔더니 다시 그런데 이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유죄로 다시 취지가 파기됐고요. 그래서 고등으로 다시 또 내려와서 그때는 화재를 쟁점으로 저희가 주로 해서. 시간 같은 걸 따져봐서 도저히 그때 연기 발견되려면 남편 출근 이후 한참 있다가, 한 2시간 있다가 불을 놔야 된다. 이런 거를 했어요.

    ◇ 정관용> 시간문제 이런 걸 해서. 그래서 무죄?

    ◆ 김형태> 또 무죄 놨어요.

    ◇ 정관용> 그게 원래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 하면 무죄 못 나는 것 아니에요?

    ◆ 김형태> 거의 한 90 몇 %가 못 난다는 거죠. 그런데 저희가 입증을 시작해서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래서 대법원에 가서 다행히 확정이 됐고요.

    ◇ 정관용> 무죄로.

    ◆ 김형태> 그렇죠. 그래서 사형-무죄-사형-무죄-무죄. 이렇게 5번을 선고 받았고요.

    ◇ 정관용> 참 우연히 그걸 맡게 되신 거군요 그러니까.

    ◆ 김형태> 그런 셈이죠.

    ◇ 정관용> 천주교 인권위원회에 있고 좀 도와주세요 그러니 안 만날 수 없고.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 ''''어, 아니겠네?'''' 이런 생각이 들고 그렇죠?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하셨나 봐요.

    ◆ 김형태> 대법원에서 깨졌을 때 그럼 이제 사형이잖아요. 다시 대법원이 이거 사형 취지로 깨니까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도망가라고 했어요, 외국으로. 변호사로서는 해서는 안 될 말인데. 너 도망가라고 했더니 막 울면서 이 친구가.

    ◇ 정관용> 그때 고법에서 무죄 받고 나와 있었겠군요.

    ◆ 김형태> 나와 있었죠.

    ◇ 정관용> 그렇군요.

    ◆ 김형태> 그러니까 외국으로 도망가 버려라 그랬더니 ''''나라가 자기보고 죽으라고 하면 죽겠습니다.'''' 이렇게 울면서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변호사가 사실은 더 답답했어요. 이건 정말 외국으로 빼돌리고 싶을 정도.

    ◇ 정관용> 진범 아직도 안 잡혔나요?

    ◆ 김형태> 그거 저희는 누구라고 추정은 되는 사람이 아주 강력한 추정이 있는데. 우리도 겨우 빠져나갔는데 또 다른 사람 몰아넣기가 그래서 사실은 그때 그냥 넘어갔지만 저로서는 있죠.

    ◇ 정관용> 심증이 가는.

    ◆ 김형태> 한동안 그 사람은 없어졌었어요, 몇 년 동안.

    ◇ 정관용> 여쭙지 않겠습니다. 이 책에 보면 그 대목에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다루시면서 ''''이게 정말 해피엔드일까? 나는 모르겠다.'''' 라는 표현이 들어 있어요. 이건 무슨 말입니까?

    ◆ 김형태> 저는 그 남편이, 외과의사가 그때 막 공익근무 의무 복무하고 나와서 첫 개업하는 날 그 날이 맞거든요. 그런데 자기 제일 사랑하는 딸하고 부인이 죽었죠. 그런데 자기가 또 죽인 사람으로 사형 선고 받았죠. 그리고 그 곡절 끝에 8년을 끌면서 막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나왔는데 또 매스컴에서 저건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서 범인이 틀림없다. 이렇게 아주 폭격을 했어요. 그러니까 또 죽었어요, 거기에서 사실은.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거의 그냥 몇 번을 죽었기 때문에. 그거 무죄 받았다고 전혀... 그런 상황은 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됐던 거죠.

    ◇ 정관용> 지금도 혹시 연락하십니까?

    ◆ 김형태> 지금은 잘 지내면서 의사 노릇 잘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하고 있어요?

    ◆ 김형태> 그리고 사형 폐지, 본인이 그렇게 사형대 앞에 몇 번 갔다 온 셈이 됐기 때문에 사형 폐지 운동만 있으면 꼭 와서 열심히 자기 얘기, 경험 얘기 하고.

    ◇ 정관용> 맞아요, 김형태 변호사께서 사형 폐지 운동을 참 열심히 하고 계시고 사형제 위헌심판도 제소하셨고. 그러나 여전히 아직 폐지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형제 폐지운동에 운동에 진력하시는 이유는 뭐예요?

    ◆ 김형태> 재작년에 그게 5대 4로. 사형 찬성 쪽이 5였고요, 헌법재판관들이. 그런데 사실은 폐지하라는 게 6표가 돼야 됩니다. 그런데 두 표가 모자랐죠. 그런데 두 분이 거기 의견에 뭐라고 했냐면 사실 법적으로는 내가 합헌이라고 했지만 국회에서 이거는 다시 좀 심각하게 다뤄서 어떻게 해야 된다. 그러니까 그것까지 따지면 사실은 6대 3으로 위헌을 사실상 했다라고 저는 보고요. 지금 전세계적으로 100개 넘는 나라가 완전히 법적으로 폐지했고 10년 이상 집행 안 한 나라가 한 40개 나라, 우리나라도 거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15년째 안 하고 있어요. 그리고 한 40개 나라 정도가 사형 집행을 하는데 UN 자체가 아예 사형 폐지 결행을 여러 번 했고요. 집행을 하지 말라. 그리고 반기문 총장이 그걸 보고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거기에 자꾸 기권을 해요. 한국은 집행을 안 하면서 왜 기권하는지 난 모르겠는데. 사형 폐지에 관한 한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이 굉장히 후진입니다. 그러니까 제일 빠른 나라 베네수엘라가 150년 전에 폐지했는데.

    ◇ 정관용> 그러니까 김 변호사가 관심 갖고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오로지 인권, 그 단어 때문입니까?

    ◆ 김형태> 저는 흔한 말로 죄는 믿지만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라는 거죠. 죄는 정말 끔찍하고 몸서리 쳐지는 죄가 너무 많죠. 그런데 그렇더라도 그 사람도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그런 분들의 생명을 존중해야 일반 사람의 생명도 존중이 되고. 우리 사회 전체가 생명 존중의 한 단계가 올라간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이렇게 연재를 계기로 해서 지난번 2, 30년 동안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회고하고, 정리하고 그런 기회를 가지신 거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쭉 정리를 하다 보니까 책으로 묶으면서 본인이 ''''아, 내가 세상에 이 말을 하고 싶구나.'''' 그런 게 떠오르지 않으세요?

    ◆ 김형태> 저는 하여튼 이 복잡하고 정말 엉터리 같은 세상이지만. 여기서 그래도 다른 사람들 어려움 생각해 주고 사람뿐 아니라 다른 생물들, 무생물까지도 같이 살아가는 이런 노력을 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래도 이만큼 세상이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 똑같은 일이 계속 흉악한 일이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계속 그것에 대해서 열심히 그게 아니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나와야지만 이 세상이 그래도 유지되고 살만한 세상이 될 거다라는 점에서. 맨날 똑같이 나쁜 일이 반복된다고 그냥 힘 빼고 넘어지면 안 되고 다시 또 신발 끈 고쳐 매고 또 출발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 정관용>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습니까? 그렇게 느껴지십니까?

    ◆ 김형태> 조금씩은 나아졌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기초적인 인권도 보장이 안 됐기 때문에 재판 없이 보도연맹, 십수만 명을 죽이고 그랬거든요. 지금은 못 그러죠. 그것은 그 안에 열심히 노력했던 분들의 희생 또 그걸 열심히 밝히려고 했던 사람들의 노력. 이런 것들이 합쳐져서 그래도 이만큼 살만해졌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정관용> 하긴 김형태 변호사님 87년 민변을 만든 그 이후는 그래도 가끔씩이나마 시국사건에서 승소하는 사건도 생기잖아요.

    ◆ 김형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이전 선배 변호사들은 법정에 그냥 괜히 가는 거예요.

    ◆ 김형태> 전패였는데요. 저는 송두율 교수 같은 경우에는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이라는데 그것도 다 무죄 받았거든요. 그리고 아까 말한 치과의사 사건이라든지 그다음에 최근의 보도연맹도 하여튼 시효를 국가가 따지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국가가 기본권 보장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시효 따지지 않고 배상하라는 판결도 받고요.

    ◇ 정관용> 그걸 보면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진 거예요.

    ◆ 김형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돌아보면서 ''''아, 이건 내가 정말 승소할 수 있었는데 아깝게 패소했다.'''' 이런 거 있습니까?

    ◆ 김형태> 그런 사건 많이 있죠.

    ◇ 정관용> 많아요?

    ◆ 김형태> 많이 있는데 우리 시스템 자체가 주는 한계 때문에 안 되는 것들도 있고요. 그다음에 법조계 종사하는 판검사 이런 분들이 세상 경험을 좀 더 밑에서부터 하고서 그런 일을 하면 훨씬 세상을 밑에서부터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법이라는 게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고 사람을 좀 살리는 역할. 저도 예를 들면 과거에는 국가보안법이니 온갖 법들 갖고 사람 막 죽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법을 가지고 한번 살려봤으면 좋겠다. 재개발법도 용산에서 재개발법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 수익 과실을 갖다가 국가에서 정한 과실을 다 돈 있는 사람만 가져갔거든요. 그런데 그걸 열심히 장사했던 영세상인들, 세입자들 이분들 조금이라도 떼어줬으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재개발법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서 6명씩 죽은 거예요. 그러니까 법이 사람을 죽였는데 그 법을 바꾸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법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해 보죠.

    ◇ 정관용> 그렇게 법을 바꾸려면 국회가 제대로 해야 되는데. 김 변호사님은 국회는 안 갈 거예요?

    ◆ 김형태> 여기 바깥에서 법 가지고 열심히 집행하는 데 뛰어드는 사람도 있어야죠.

    ◇ 정관용> 책 마지막에 보면 ''''내가 이제 이렇게 이 풍진 세상을 만나 비망록을 썼지만 앞으로 또 다른 비망록을 쓸 일들 슬슬 해 가며 살아갈 거다.'''' 라고 쓰셨네요. 슬슬 하시지 마시고 열심히 하셔야죠.

    ◆ 김형태> 네. 써놓고 나니까 참 30년께 많긴 많은데. 사실은 이런 일이 자꾸 발생 안 해서 슬슬 하는 사회가 돼야겠죠.

    ◇ 정관용> 하긴 또 그러네요.

    ◆ 김형태> 제가 또 열심히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골치 아프니까.

    ◇ 정관용> 김 변호사님이 열심히 뛸 일이 없는 세상 빨리 오기를.

    ◆ 김형태> 그렇습니다.

    ◇ 정관용> 고맙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 김형태> 감사합니다.

    ◇ 정관용> 김형태 변호사 보내드리면서 오늘 순서 정리하겠습니다. 내일 뵙죠.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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