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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북한이 침략해서 북침 아닌가요?"

    [르포] 대통령은 학생들의 '역사 의식'이 아닌 '어휘력'을 걱정해야

    (기사 내용과 관계없는 자료사진입니다.)

     

    "북한이 침략해서 북침 아닌가요?"

    박근혜 대통령이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다"며 "교육현장의 역사왜곡을 바로 잡겠다"고 밝혀 논란이 인 뒤 직접 만난 학생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언론에 공개되는 모두발언 마지막 부분에서 역사 교육 문제를 언급했다.

    박 대통령이 인용한 자료는 지난 10일 한 언론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조사에서 고등학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설문 항목이 "한국전쟁은 남침인가, 북침인가"로 단순해 여론조사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 "북한이 침략해서 북침 아닌가?

    이에 CBS노컷뉴스는 18일 '6.25는 북한이 먼저 공격했나, 남한이 먼저 공격했나', '그렇다면 남침인가, 북침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들고 중·고등학생들을 직접 만났다.

    취재 결과 설문에 응한 학생 대부분이 6.25가 북한의 침략이라고 답했지만, 용어 사용에서 혼동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침'이라고 잘못 답한 학생들 중에서는 "북한이 침략해서 북침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학생도 있었다. '남침'이라고 대답한 학생들 중에서도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몇 초 간 고민하다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이 선제공격했다'고 의견 일치를 보인 친구 두 명은, 용어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북한이 침략했으니까 북침이지!",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으니까 남침이거든!"이라며 한바탕 논쟁을 했다. 걸어가는 내내 다투다 스마트폰을 꺼내 정답을 확인하고 나서야 논란이 끝났다.

    '북침'이라고 대답한 어느 학생에겐 '남침이 올바른 말이다'고 알려주자 "아직 거기까지 수업 진도가 안 나가서 몰랐어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히 남침이죠"… 뉴스에서 보고 알았다는 반응도"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질문에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이 "북한이 남침했잖아요"라고 답하며 화를 내고 가는 학생도 있었다.

    기자가 접근하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가 "뭐 그런걸 물어봐요. 당연히 남침이죠"라며 표정을 푸는 학생도 상당수 있었다.

    '남침'이 올바른 용어라는 사실을 어제 여러 언론에 보도된 뒤에 인지한 학생들도 꽤 됐다. 몇몇 학생은 "뉴스에서 봐서 알아요"라며 남침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보도 이후 역사 교사들이 추가 교육을 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어제 역사 선생님이 6.25관련 동영상을 보여주며 남침이 맞는 말이라고 알려줬어요"라는 대답을 간간히 들었다.

    자신은 '모르겠다'는 대답에 넣어달라며 "전쟁은 어느 한 쪽에 의해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남침'이 맞는 용어인 것을 알지만, 어느 쪽이라고 꼭 찝어 말할 수 없다"고 밝힌 학생도 있었다.

    18일 CBS노컷뉴스가 서울 목동 일대 중·고등학생 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4%(305명)가 '북한이 침략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어진 '남침인가, 북침인가'라는 질문에는 '남침'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48%(158명), '북침'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44.5%(147명)으로 조사됐다.

    통계표본이 적어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힘들지만, 두 가지 질문에서 각각 나온 통계 수치의 차이는 유의미하다. 학생들은 역사인식이 부족하다기보다, 용어에서 혼동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 '6.25는 북침'?…놀란 박 대통령의 '과잉대응'

    결국 박 대통령의 발언은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사자성어 '견문발검(見蚊拔劍-사소한 일에 크게 화를 내며 덤빈다)에 딱 들어맞은 경우가 돼 버렸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진보·보수 양대 교원단체가 자제를 촉구하고 나설 정도였다.

    한국교총은 18일 발표한 성명에서 "설문조사가 '한국전쟁은 북침인가, 남침인가'라는 문항으로 설계돼 많은 학생들이 '북침'을 '북한의 침략'으로 오인할 개연성이 컸다"며 "그 결과를 확대해석하거나 침소봉대할 일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전교조도 같은 날 "정말로 대통령은 역사 선생님들이 한국전쟁을 북침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역사 선생님들께 사과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은 학교 현장에 대한 몰이해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해프닝으로 박 대통령이 근본적인 역사 교육의 문제는 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해당 여론조사와 관련 기사는 부실한 한국사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보라는 달은 안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다 화를 자초한 셈이기 때문이다.

    부천여고 역사 교사 조한경 씨는 "한국사 교육의 근본 문제는 두꺼워진 교과서를 주어진 수업 시수에 끝내기 벅차다 보니 뒷부분에 있는 근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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