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창업 모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페이지랭크의 알고리즘을 구현하고 증명하기 위해 검색엔진을 만들었다가 창업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기술적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려는 목표가 비즈니스로 이어진 셈이다.
구글의 탄생은 논문 한편에서 비롯됐다. 스탠퍼드 수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페이지랭크(PageRank) 이론'이 구글의 모태다. 두 사람은 당시 웹 구조를 연구하고 있었다. 인터넷에 존재하는 웹 페이지를 다운로드해 각 웹 페이지 간에 연결구조인 링크를 분석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 게 '페이지랭크'다. 링크를 구조화하고 웹페이지의 순위를 측정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페이지에 기록된 메타데이터(구조화된 정보를 분석하고, 부가 정보를 추가하기 위해 그 데이터 뒤에 따라가는 정보)를 가지고 키워드의 연관도를 반영한 것에서 한단계 발전한 방식이다. 온라인 데이터의 가치를 처음으로 평가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보자. 연구자는 자신의 논문을 준비할 때 데이터를 기초해 가설을 세운다. 다른 논문에 게재된 이론을 인용하거나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자신의 논문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인용되고 거론되는가에 따라 논문의 권위가 달라진다. 온라인 웹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인용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페이지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 구글의 페이지랭크의 특허는 누가 가지고 있을까. 놀랍게도 '마이크로소프트(MS)'다. MS의 페이지랭크 특허는 독립적인 링크 순위를 매기는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구축됐다. 구글의 페이지랭크 기술을 독보적인 검색엔진 알고리즘이라고 평가하기 어렵지만, 이 알고리즘을 잘 활용한 덕분에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이 됐다. 페이지랭크로 비즈니스를 시작한 구글의 창업과정은 사실 자발적이라고 보기엔 애매하다. 애초부터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연구에서 출발한 서비스였고, 실제로 스탠퍼드대 내 연구용 서버를 빌려 테스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논문 주제에서 비즈니스 모델로…
검색엔진의 특성상 전세계를 대상으로 웹페이지를 수집한다. 그런 점에서 구글은 기존 검색엔진보다 월등한 성능 차이를 보였고, 검색할 수 있는 자료도 많았다. 스탠퍼드에서만 하루 접속횟수가 1만건에 달할 정도였다.
연구용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중앙처리장치(CPU)와 메인보드를 구입해 리눅스 기반의 인터넷 서버를 구축했다. 이 서버는 후일 분산처리 시스템으로 진화했는데, 이것이 구글의 전세계 최고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됐다.
학생이었던 두사람은 초기에 구글의 검색엔진을 갖고 사업하려고 하기보다는 외부에 매각하려고 했다. MS에 매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바람에 사업에 나서게 됐다. 당시 구글의 투자금은 100만 달러(약 10억7350만원). 만약 MS가 구글을 인수했다면 지금의 MS 위상과 미래는 지금과 달라졌을지 모른다.
1998년 구글 회사를 설립한 두 사람은 CEO를 외부에서 영입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다. 당시 잡스는 애플에 복귀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아이맥(iMac)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다. 잡스는 두사람의 요청을 거절했다. 두 사람은 차선책으로 에릭 슈미트를 찾아갔다. 그는 제안을 수락했고, 구글을 굴지의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들었다.
구글은 창업 모델 가운데 성공 사례로 꼽힌다. 페이지랭크의 알고리즘을 구현하고 증명하기 위해 검색엔진을 만들었다가 창업까지 이어진 것이라서다.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기술적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만들려는 목표가 비즈니스가 된 셈이다. 스타트업 성공을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구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장선진 소프트웨어인라이프 대표 jangwunjin@softwareinlif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