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엔 포스코 라면 상무, 남양유업 막말사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추문 등 대형 사건이 잇달아 터졌다. 기업이나 정부가 정확한 위기관리 매뉴얼을 갖고 있었다면 터지지 않았을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올바른 기업의 위기관리,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기업 PR전문가 3인에게 물었다.
기업의 위기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나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유나) :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일상 업무 전반이 흔들리고 미래의 업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곧 영업이익, 주가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기업의 위기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이갑수 아이앤알 대표(이갑수) :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외부에 그대로 노출돼 은폐하거나 축소하기 힘든 시대다. 위기관리는 기업의 '명성'에 직결되기 때문에 생존의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김찬석 청주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김찬석) : "포스코 라면 상무, 남양유업 사태 등 최근의 사건을 보면 알수 있듯이 기업의 위기를 통제하지 못하면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기업의 위기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다."
그런데 요즘 발생한 사건을 보면 기업이 아니라 개인의 잘못에서 기인한 게 많다. 포스코 라면상무, 윤창중 전 대변인 모두 비슷한 사례 아닌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리스크였던 것 같은데.
이유나 : "포스코 상무는 걸어 다니는 PR전광판과도 같은 존재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국가의 얼굴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처럼 행동한 것은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내부교육이나 행동 매뉴얼이 사전에 있었다면 통제할 수 있었던 일들이다."
개인의 잘못으로 위기가 불거지면 후폭풍이 더 거세지 않은가.
이유나 : "통제할 수 없는 자연재해는 발생 후에도 이해와 용서를 구할 수 있다. 수습도 비교적 쉽다. 인재人災는 그렇지 않다. 개인의 잘못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더군다나 인재는 기업에서 발생하는 위기 중 가장 빈번하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개인으로 인한 위기발생이 잦아진 까닭은 무엇인가.
김찬석 : "최근의 사건들이 사람으로부터 발생했다는 건 트렌드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불과 3~5년 전만 해도 기업의 위기는 장치의 결함 혹은 기술ㆍ경제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축적돼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변하고 있다."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김찬석 : "한국 사회는 실제 나타나는 표현보다는 그 안에 담긴 맥락을 통해 뜻을 파악하는 '고맥락 문화'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한국도 '저맥락 문화'로 바뀌고 있다. 현실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저맥락 문화'는 서구사회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서 설명해 달라.
"부하직원에 대한 상사의 인신공격성 발언이 예전에는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직원에 대해서 10년 전엔 허용됐던 말들이 지금은 성희롱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위기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생각,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인 행위들이 축적돼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가.
이유나 : "'조직문화'를 관리해야 한다. 한 조직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나 절차는 조직문화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위기관리와 조직문화를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위기관리는 곧 조직문화의 관리라고 할 수 있다."
김찬석 : "맞는 말이다. 이번 아시아나 사건과 대응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공항ㆍ항공사에 위기 전담반이 따로 존재하고 직원들 모두 위기상황의 발생 가능성과 대처에 대한 사전 교육을 받으며 위기 발생 시에는 전문가를 고용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지시를 받는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형성될 수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위기관리는 경영 철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로 인해 위기관리가 더욱 어렵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갑수 : "그렇다. 소셜 미디어로 인해 관리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현재 대부분 기업들이 소셜 미디어에 대한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 관리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최근 발생한 포스코 사태를 봐도 그렇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4월 15일인데 보도는 19일에 이뤄졌다. 언론 보도가 나간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건이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포스코는 21일 일요일 밤에 이르러서야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통지했다."
아시아나의 경우에도 초기 대응이 문제가 됐는데.
이갑수 : "그렇다. 사건이 발생한 게 우리 시간으로 새벽 세시였고 첫 기자회견이 그날 오후 세시에 열렸다. 사건 발생 후 첫 기자회견이 열릴 때까지 열두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런 대응이 없었던 것이다. 이미 외신 보도가 숱하게 쏟아지고 있었는데 아시아나 측은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말만 할 뿐 사망자에 대한 애도나 부상자에 대해 쾌유를 비는 메시지도 전혀 없었다. 첫 기자회견 내용에도 그런 메시지는 포함되지 않았고 사상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찬석 : "정보의 공백 상태였던 거다. 상황을 통제할 컨트롤 타워도 내부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없었다. 이것은 평소 시스템의 문제다."
초기대응이 늦어졌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유나 : "위 기업들이 오프라인에 대한 위기대처 매뉴얼은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위기발생 48시간 내에 어떤 반응이든 대응해야한다고 돼있다. 그러나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대한 대처를 못한 것이 문제다.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모든 기업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기업에서 소셜 미디어의 관리는 직원은 젊고 의사결정권이 없는 직원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말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 '창구를 통일해야한다' 등이 전통적인 매뉴얼의 내용이다."
트렌드에 걸맞은 위기관리책 만들어야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유나 : "소셜미디어는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하므로 소셜 미디어를 담당하는 직원은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의사 결정까지는 아닐지라도 내부적인 진행 상황에 대한 공지를 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 지금까지와 같아서는 안 된다. 소셜미디어 담당자가 상황을 접하고 윗선에 보고한 후 다시 지시가 내려오는 시스템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김찬석 : "나도 동의한다. 한국에는 '선조치 후보고' 시스템이 전혀 자리 잡지 못했다. 이 역시 문화적인 문제다. 올 6월 이촌역에서 환경미화원이 난간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본 시민이 위험한 근무 환경을 지적하는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올린 일이 있었다. 글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는데 코레일은 이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했다. 트위터를 통해 '사고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며 앞으로는 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발표한 것이다. 코레일의 빠른 대처로 문제는 일단락 됐다. 이제는 위기관리에 있어 시간관념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상황을 접했을 때 즉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유나 : "좋은 예다.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소셜 미디어를 지속적으로 관찰할 전담 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기업이 소셜 미디어 관리를 위해 전담 인력까지 투입하는 것을 비용라고 생각한다. 또 위기관리를 위한 비용을 1회 혹은 단기로 지불하려는 기업이 많다. 그러나 위기관리를 위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이뤄질 문제다."
기업의 위기관리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이유나 : "위기관리는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직결되는 문제다. 따라서 위기관리는 조직 전반에 걸쳐 이뤄져야한다. 조직문화관리는 사원의 충성도를 높이고 사내 분위기를 위한 목적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위기관리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므로 조직문화의 외연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찬석 : "위기관리의 내부 교육화, 사내 커뮤니케이션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 직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다시 말해 발생 가능한 위기들에 대한 자각과 대응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이갑수 : "그렇다. 지금까지는 내부 교육과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위기관리와 연관돼 다뤄진 적이 없다. 그러나 기업 내부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결국 기업 위기를 키우는 원인이 된다. 위기관리와의 접목을 통해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한다."
구체적인 방법이 있는가.
이유나 : "외국 기업의 경우 사적인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때, '이포스팅은 회사의 입장과는 무관하다'는 각주를 달아야한다는 등의 매뉴얼이 존재한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소셜미디어 관련 행동강령과 같은 구체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위기 발생하면 매뉴얼이 빛난다"위기관리에 있어서 경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갑수 : "위기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너의 의지다. 조직문화는 경영자의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과 실천 의지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은 위기 관리에 대한 인식이 낮은 편이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오너의 영향력이 막강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경영자의 낮은 인식이 위기 관리가 잘 이뤄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으로 들린다. 기업과 경영자의 인식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이갑수 : "수직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통한 내부적인 해결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 구조에서는 '직언'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기 발생상황에서는 제3의 전문가가 투입돼야 한다."
이유나 : "옳은 지적이다. 직언을 할 수 있는 조직의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위기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직언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게 있다. 위기 발생 시뿐만 아니라 아닌 평상시에도 대중과의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이유나 : "기본적으로는 언행일치다. 대중과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고, 또 이행하지 못했을 시에는 즉각 인정하고 사과하는 그런 모습을 평소에 보여 온 기업이라면 문제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도 대중은 신뢰하고 기다린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기업이라면 위기 상황 발생 시 그 여파는 더 크게 몰려온다."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이유나 : "그렇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은 감정적이고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감정이 실제보다 격렬하게 표출된다. 그것이 분노, 불만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중의 감성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 대중이 분노를 표출할 때 이성적인 접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감정적인 접근이다. 어떻게 해야 그 분노를 보듬고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신뢰 쌓은 기업, 위기시 강해져
이갑수 : "같은 생각이다. 최근 발생한 사태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으나 표출되지 않았던 것이 표출됨에 따라 발생한 것이다. 위기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라 대중이 변한 것이다. 남양유업 사태만 보아도 업계의 밀어내기 관행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를 그저 참아내던 이해관계자들, 을乙에 위치에 놓은 이들이 변했고 이것이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이제는 갑甲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이 이해당사자 그룹을 진정성 있게 보듬고 동반자 개념을 가질 때다."
위기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할 문제로 보이는데.
이유나 : "그렇다. 위기는 인생을 살면서 언제나 찾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의 발생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고 경영 프로세스에 포함해야 한다. 위기를 절대 발생하지 말아야할 것으로 규정해버리면 이에 대한 대처능력도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찬석 :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도 회복탄력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모든 위기가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지나가게 마련이므로 위기에 잘 대처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