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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票에 우는 사람들 "朴 더이상 아무 것도 안했으면"



사건/사고

    자기 票에 우는 사람들 "朴 더이상 아무 것도 안했으면"

    박근혜 정부 1년, 거리로 내몰린 장애인과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서울 광화문역 지하보도 '장애인 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농성장에서 만난 김모 (39) 씨.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앓게 된 소아마비는 39년 인생 동안 김 씨를 괴롭혔다.

    (송은석 기자)

     

    지체장애 3급에 시각장애 3급, 모두 합쳐 중복장애 3급인 김 씨는 불편한 몸을 플라스틱 목발 하나에 기댄 채 시민 100만 명 서명을 받고 있었다.

    그나마 한 쪽 다리와 두 팔을 어느 정도 쓸 수 있고, 의사소통도 가능한 덕에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나름 돈벌이도 하던 김 씨.

    세금을 내고 나면 손에 남는 월급은 100만 원도 채 안 된다. 그래도 매달 15만 원 씩 나오던 장애인 연금으로 아내와 어린 두 자녀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겨우 2000원 오른 월급이 걸림돌이 됐다. 김 씨가 장애인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차상위계층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 "朴, 장애인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해"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장애인 연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김 씨는 믿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기초연금처럼 소득 하위 70% 장애인에게만 주겠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특히 당시 박근혜 후보가 줄기차게 외쳤던 '장애인 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은 김 씨 같은 장애인들이 꿈에서도 바라던 것이었다.

    김 씨는 "박근혜가 당선되면 우리도 사람 대접은 받고 살겠다"며 휠체어를 이끌고 투표를 하던 장애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결국 꿈으로 남았다. 공약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뇌병변 1급 장애인 박모(41) 씨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고 했다.

    하반신 마비에 걸을 수도 없고 의사소통도 안돼 평소에도 늘 휠체어에 앉아있거나 방에 누워만 있는 박 씨이지만, 경비일을 하는 아버지 탓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부모에게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부양의무제'에 걸린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생계·주거·의료·교육급여 등 월 57만여 원을 받을 수 있지만, 박 씨는 차상위 계층에 포함, 매달 장애인연금 17만 원만 받는다.

    "반드시 공약이 실현됐으면 좋겠다, 정말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며 표를 던졌다는 김 씨. 믿었던 박근혜 정부 1년이 지났고, 새해를 코앞에 뒀지만 눈앞은 깜깜하기만 하다.

    김 씨는 '공약이란 건 개인과 개인이 아니라 국민에게 한 약속"이라며 "지키겠다며 약속해놓고 본인은 지키지도 않은 채 국민들에게 의무만 요구하고 있다"며 가슴을 쳤다.

    "우리도 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지 않냐"며 목발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재벌도 국민이고 아픈 사람도 국민인데 우리같은 약자에게 쓰는 돈은 아까워하는 것 같다.

    돈이란 게 남 일이 되면 아까운 법인데…". 김 씨는 말끝을 흐렸다.

    (자료 사진 / 송은석 기자)

     

    ◈ 정규직화한다더니 노조 탄압…"더 이상 아무 것도 안 했으면"

    지난 27일 영하 8도의 날씨에 서울 영등포구 새누리당 앞에서 노숙 농성중인 조모(43·여) 씨. 이날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다.

    조 씨는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회계직으로 일하고 있다. 벌써 근무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녀가 받는 월급은 그동안 겨우 10만 원 늘었다. 비정규직 노조 결성 뒤 추가로 받게 된 수당에 불과하다.

    노조가 인정되지 않는 학교의 비정규직 직원은 20년을 근무해도, 그 때나 지금이나 월급은 그대로인 셈이다.

    월급이 적다고 일이 적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규직보다도 많다"고 조 씨는 주장했다.

    학교폭력이 화두로 떠오르자 일선 교사들의 업무를 줄이고 학생들 지도와 상담에 신경쓰라며 '교원업무경감' 계획이 추진됐다. 이에 따라 교사들의 행정 업무는 조 씨 같은 비정규직들에게 돌아가곤 했다.

    조 씨는 "한 학교에 40~50명씩 있는 교사들이 한 가지씩 업무만 떠넘겨도 처리해야할 일이 40~50개 증가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급식 조리원으로 20년 동안 일하고 있는 최모(45·여) 씨는 매일 20kg가 넘는 쌀, 과일 포대를 나르고 몸집의 5배 만한 솥을 닦느라 어깨, 손목, 허리 등 관절이 남아나질 않는다.

    20년 동안 조금도 오르지 않은 월급에 관절 치료를 받고 나면 남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학교 비정규직은 과도한 업무에도 100만 원도 채 못 받지만 이들은 월급 인상보다도 '고용 안정'을 외쳤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기대가 컸다"던 조 씨. 그동안 학교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해마다 1만 명씩 잘려나갔다.

    설령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도 학교 학생 수나 예산이 줄거나, 교육청 사업 변경되면 이들은 어떠한 절차도 없이 곧바로 쫓겨나야만 했다.

    해마다 겨울이면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는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실현을 누구보다 기대했다.

    하지만 올해 겨울에도 이들은 거리로 나왔다. 올해만 90일 넘게 거리에서 지냈다. 조 씨는 박 대통령의 거짓 공약에 허탈과 실망보다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100% 정규직 전환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기계약직 전환 등 고용은 보장되겠거니 생각했던 조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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