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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열변·사람냄새'…기억 속의 그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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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벙·열변·사람냄새'…기억 속의 그 '변호인'

    • 2014-01-26 10:26
    영화 '변호인' 홈피 제공

     

    '꺼벙하게 생긴 사람이 다방 커피를 시켜놓고는 열변을 토했다. 그 시절, 그곳에서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변호인'이 개봉 33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해 흥행 돌풍을 이어가는 가운데 '변호인'의 당시 활동상을 회고한 글이 법조계 안팎에서 잔잔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앤장에서 일하는 황정근(53·사법연수원 15기) 변호사는 최근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 '영화 변호인의 추억'에서 노 전 대통령의 1980년대 부산 지역 활동상과 당시 판결을 둘러싼 법리에 관한 의견을 풀어놓았다.

    황 변호사는 1985년 부산 부민동의 법원에서 6개월간 시보를 했다. 당시에는 시보 15명이 교실 같이 큰 사무실을 함께 썼다고 한다. 사무실은 낡은 별관 2층에 있었으며 이 건물은 현재 동아대 로스쿨 건물로 쓰이고 있다.

    그는 "꺼벙하게 생긴 40살 정도 되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시보실 문을 열고 들어와 명함을 죽 돌리고는 소파로 시보들을 불러모았다"며 "'노 변'은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고 첫 만남의 순간을 떠올렸다.

    이어 그는 "'노 변'은 다방에 전화를 걸어 커피를 시켜 놓고는 열변을 토했다"며 "한참 후배인 시보들에게 인사하러 와서 다방 커피까지 시켜준, 사람 냄새 나는 유일한 변호사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부산 법원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시국 재판으로 늘 시끄러웠다는 게 황 변호사의 증언이다. 그런데 창 밖을 내다보면 방청하러 온 가족들과 학생들 앞에서 일장연설을 하는 '노 변'이 있었다고 그는 술회했다.

    황 변호사는 1981~82년 '부림사건' 피고인들이 고문에 의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선고받을 수밖에 없었던 법리적 배경도 설명했다.

    그는 "영화에서 피고인들은 고문에 의한 진술 증거에 의해 모조리 실형을 선고받는다"며 "거기에는 형사재판에서 '전가의 보도'로 사용된 '실질적 진정성립 추정론'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고 말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만든 조서에 '(피의자가) 읽어보고 서명 무인(날인)했다'고 적혀 있으면 그 조서는 진술한 대로 적힌 것으로 추정한다는 법리다. 이것이 당시 법원의 판례였고 실무에서도 통용됐다.

    이에 대해 황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는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해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된 때' 증거능력을 인정하라고 돼 있었음에도 당시 법원은 법을 아예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부림사건 피고인들을 옥죈 대법원 판례는 결국 2004년 12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해 폐기됐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은 후일 대법원장이 된 이용훈 변호사였다.

    당시 대법원은 "원진술자의 진술에 의해 형식적 진정성립뿐만 아니라 실질적 진정성립까지 인정된 때에 한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판결했다.

    황 변호사는 "형소법 규정대로 돌아오는 데 20여년이 걸렸다. 20여년 후에 폐기될 판례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영화 속 피고인들을 생각한다"며 "다시는 영화 속의 장면과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그는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했다. 1995년 행정처 재직 당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신설, 긴급구속 폐지 및 긴급체포 도입 등을 통해 인신구속 제도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대법원의 형소법 개정 실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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