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 과거사를 축소·은폐한다는 논란에 시달리는 헝가리에서 국가수반이 이례적으로 당시 조국이 독일 나치의 인종말살을 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일(27일)을 앞두고 26일 공개한 성명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헝가리에서 수백㎞ 떨어져 있지만 우리 역사의 일부다. 우리 국민 근 50만명이 그곳에서 비인간적 고통과 모욕 속에 숨졌다"고 밝혔다.
아데르 대통령은 "헝가리가 독일에 점령됐던 70년 전(1944년) 나치와 이에 협력한 헝가리 당국은 근 반년 만에 게토(유대인 격리구역)를 완공하고 시골에 사는 유대인 거의 전부를 그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전했다.
헝가리 대통령은 의회에서 간접 투표로 선출되는 자리로 행정적 실권은 없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헝가리는 중도 우파 집권당이 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기의 피해만 앞세우고 유대인 학살 책임은 회피한다는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과거사 논쟁에 들썩이고 있다.
이 논란은 특히 극우 정당 요비크(일명 '헝가리 수호대')가 2차 대전 때 나치 유대인 학살을 도운 권력자 미클로스 호르티의 동상을 작년 11월 공개하면서 극심해졌다.
헝가리 내 유대인 단체는 1944년 독일 점령 추모비를 건립하는 정부 계획이 인종 학살 과거를 축소·은폐하려는 속셈이라며 홀로코스트 관련 행사를 거부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루마니아 태생의 저명 미국 역사가인 랜돌프 브라함은 이번 과거사 사태에 항의하고자 2011년 헝가리 대통령에게서 받은 공로 훈장을 반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브라함은 26일 언론에 낸 공개서한에서 "과거사를 숨기려는 운동이 최근 몇 년 사이 헝가리에서 벌어져 충격을 받았다"며 "독일 점령 추모비는 당시 정권이 유대인 학살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관련해 대중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비열한 시도다"고 비판했다.
1944년 당시 헝가리 당국은 독일 점령군을 도와 수주 내에 자국 내 유대인 43만 7천여명을 수용소에 몰아넣었다.{RELNEWS:right}
이 강제 이주는 1944년 7월 중단돼 유대인 수만 명이 겨우 학살을 면했다.
생존 유대인은 대부분 수도 부다페스트 주민들이었고 현재도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 최대 유대인 거주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