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콘 김일호 대표가 지난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노는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언제나 즐거워~"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무슨 노래인지 단박에 알아챘을 것이다. 지난 2003년 11월 27일 EBS를 통해 처음 방영된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의 주제곡 앞부분이다. 처음 전파를 타는 순간부터 시청률 5%로 단숨에 국내 애니메이션 1위에 올라서며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뽀로로는 단순히 인기를 넘어 대단한 위엄을 자랑한다.
TV 앞에서 뽀로로를 경건한 자세로 보는 아이들을 두고 뽀로로가 유아세계에서는 거의 종교에 가깝다는 뜻에서 '뽀느님(뽀로로+하느님)'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영유아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해서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통령(뽀로로+대통령)'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아이만 뽀로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뽀로로를 육아의 일등공신으로 친다. 엄마 아빠도 뽀로로 동영상을 스마트폰에 저장하는 일은 이제 필수가 됐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우는 아이 달래는 데 이만큼 좋은 처방이 없다. 대성통곡하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고, 화면에 빠져든다. 안절부절 못하던 엄마는 쉽게 한숨 돌릴 수 있다. 뽀로로 덕분에 애보기가 수월해지니 고마울 따름이다. 육아의 고통에서 엄마를 구원해주시니 진정 '뽀느님'이다.
'뽀로로'의 인기는 국내외를 막론한다. 뽀로로는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업고 출판·완구·DVD 시장 등에서 연이어 성공을 거두면서 한류를 이끄는 하나의 축이라고까지 평가한다.
현재는 전 세계 130개국에 수출, 브랜드 가치는 8000억원(서울산업통상진흥원 기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문화콘텐츠의 특성인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로 높은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사업성을 갖지 못했던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희망적인 전례를 남기고 있다.
늘 좋은 일만 있었던건 아니다. 뽀로로 제작 초기부터 협력관계를 맺었던 오콘과 아이코닉스는 저작권 분쟁으로 법정 소송까지 가는 등 갈등을 빚었지만 최근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로 양측이 합의했다. 이들은 최근 의기투합해 뽀로로 테마파크인 '뽀로로파크'사업을 공동 지분을 출자해 운영하고 있다.
뽀로로의 등장 이후 한국애니매이션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한국은 과거 '하청 대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으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와 함께 '창작 국가'로 대접받고 있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현재는 40여명의 뽀로로 제작 핵심인력을 둔 오콘 스튜디오의 한 창작자는 "100여 년의 역사와 막대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해외 기업들과 경쟁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고 말한다.
'뽀로로 아빠'로 더 유명한 김일호 오콘 대표를 만나 뽀로로의 탄생 10년간의 이야기와 향후 계획들을 들어 봤다.
오콘 김일호 대표가 1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s.co.kr
- 뽀로로 제작사인 오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1996년말 설립된 오콘은 아동용 TV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선물공룡 디보'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업체입니다. 현재 완구를 비롯해 출판·의류 등 총 430여개 상품에 라이선스계약을 맺고 있으며, 영화· 뮤지컬도 선보였습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스튜디오 기업(판권사업)에서 직접 브랜드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마트플랫폼 기반의 홈스쿨링 사업인 신개념 유아용 교육사업과 디보 빌리지('선물공룡 디보' 테마파크)를 이용한 어린이 키즈카페 등 에듀테인먼트 서비스를 비롯해 프렌차이즈 사업까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 처음엔 1인기업으로 시작했습니까."창업 초기에는 기업의 CI, BI 등 브랜드컨설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9년부터 2년 동안 SBS 시사만평 '나잘란 박사'와 SBS 인기가요 댄스자키 '룰루랄라' 애니메이션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들었습니다. 당시 작품을 지금 보면 투박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2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 것에 외부에서도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이 때부터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현재는 뽀로로 후속으로 '선물공룡 디보'를 세계 90개국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디보는 기획, 디자인, 이야기줄거리 등은 한국에서 했지만 철저한 해외 현지화를 통해 구체적인 대사, 음성, 음악 등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 지난해까지 약 2년간 법정 분쟁으로 속상했죠."아이코닉스는 오콘과 12년간이나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같이 가야할 평생의 협력자입니다. 같이 하는일에 순탄한 일만 있겠습니까. 모든일에 일어날 수 있는 조율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소송을 제기했었지만 '서로 존중하고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50년 100년를 바라봐야 할 '뽀로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없어서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로 양측이 합의했습니다."
- 뽀로로가 남북합작이라는 말이 있던데요."사실입니다. 당시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의 투자를 통해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에게 외주 업무를 주었습니다. 뽀로로 시즌 1에서 52편 중 10여편까지 제작에 참여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손을 뗀 상태입니다. 당시 북한 인력의 높은 수준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일은 잘했지만 만화를 잘 보지 못해서 그런지 표정 묘사 능력 등 디테일한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면서 온라인에서 뽀로로를 마스코트로 정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는데."마스코트는 폐막 후 저작권이 국제 올림픽위원회에 귀속되므로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뽀로로를 마스코트로 거론해 주신 것 자체가 영광입니다."
- '뽀로로' 탄생비화가 있다고 들렀는데요."당시 제작에 참여한 창작자들 모두 30개월에서 세 살이 된 아이들을 둔 부모였는데, 내 아이에게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무해하고 담백한, 그래서 100번, 1000번을 반복해서 봐도 좋을 그런 영상이요. 사업적 마인드는 망각했을지언정 아빠, 엄마의 진정성이 넘쳐흘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뽀로로가 탄생했습니다. 잔재주를 부리면 돈을 벌 순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사지는 못해요. 저는 그 값진 걸 뽀로로에게서 배웠습니다."
-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뽀로로는 보통 미취학 아동기준으로 여섯 살까지 봅니다. 학교에 가게 되면 파워레인저로 갈아타죠. 커가는 아이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무리해서 빠르고 자극적인 요소를 넣지 않았어요. 그건 어른들의 욕심일 뿐이거든요.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뺄지'를 고민했어요. 브랜드 가치를 지키되 영화나 캐릭터 쪽으로 산업을 다각화했습니다."
- 지난해 3D 극장판 '뽀로로 슈퍼 썰매 대모험'을 개봉했는데,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제작기간 3년에 80억원을 들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죠. 뽀로로의 주 시청자 층이 3~6세인데, 극장엔 4세부터 올 수 있으니까 전국의 4세, 5세, 6세가 각각 45만 명이라 할 때 최대 관객수가 135만 명인 겁니다. 그 타깃을 가지고 영화에 도전했어요. 그런데 100만 관객이 들었어요.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대박 아닙니까. 중국·미국 스크린도 두드렸죠. CJ엔터테인먼트가 중국 배급사 차이나 필름을 통해 6000여 개관 규모로 현지 상영을 했습니다. 미국의 메이저 배급사 그라인드스톤 엔터테인먼트에 북미 지역 배급권을 판매했고요. 굉장히 의미 있는 한걸음이죠."
- 테마파크 사업도 하고 있죠."뽀로로 파크 사업은 아이코닉스와 공동으로 지분을 출자해 7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콘 단독으로 운영하는 '디보 빌리지'는 국내 8곳과 중국 1곳이 성업중입니다. 그리고 늦어도 올 가을까지 디보 빌리지를 활용한 어린이 키즈카페를 프렌차이즈화해 2~3배 규모로 늘릴 계획입니다."
- 뽀로로 시청연령층이 어느새 중·고등학생이 됐는데, 감회가 어떤가요."그때 그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됐습니다. 10년 후에는 그 애들이 아빠, 엄마가 되겠지요. 내가 자라면서 본 애니메이션을 내 아이에게 보여주는 거죠. 한 캐릭터에 대한 추억을 세대가 함께 공유하는 것, 얼마나 아름답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