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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사관은 문화재 반출 전초기지?…'슬픈 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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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대사관은 문화재 반출 전초기지?…'슬픈 청자'

    [임기상의 역사산책 ⑰]한국에서 닥치는대로 수집해 미국에 들고가 '돈벌이'

    헨더슨 컬렉션을 관람하는 문화재환수위 관계자들. 하바드대 마우리 교수가 헨더슨 컬렉션 중 고려청자가 지닌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문화재제자리찾기 제공)

     


    헨더슨 컬렉션 중 백자 시리즈. (사진=하바드대학 제공)

     


    ◈ 한국의 국보급 도자기가 즐비한 약탈 문화재 '헨더슨 컬렉션'
    지난 2009년 1월 9일 오전 10시 미국 하바드대학 아서 세클러 박물관.

    이 곳을 방문해 '헨더슨 컬렉션'을 찾은 '해외 반출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 방문단'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들 국립중앙박물관에 온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날 대학측은 공간상의 이유를 들어 도자기 12점만 공개했다.

    청자 주병(12세기 작품). 보존상태도 양호하다.(사진=하바드대학 제공)

     

    이 청자는 고려청자의 신비스런 색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하바드대학은 비취색이 은은히 감도는 이 작품은 현존하는 고려청자 중 가장 최고의 색깔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뱀모양의 장식이 달린 '가야토기'. 헨더슨은 도록에 '대구 달성군 양지리에 있는 장군의 무덤에서 1960년 도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했다.(사진=하바드대학 제공)

     

    이 의전용 스탠드의 미적인 가치는 인상적인 균형미와 강건함, 구조상의 미, 균형잡힌 삼각 세공에 있다.

    신라시대의 뿔잔과 받침대.(사진=하바드대학 제공)

     

    이 잔에 대해 하바드대학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작품으로 기마 유목문화와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이라며 "이런 형태는 사찰이나 거주지가 아닌 무덤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부장품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의 부인은 남편이 죽자 1991년 한국에서 수집한 도자기 150점을 하바드대학에 기증했다.

    대학측은 '헨더슨 컬렉션'이라고 이름을 붙인 도자기들 중에서 이날 12점만 공개한 것이다.

    ◈ '그레고리 헨더슨'…그는 누구인가?

     

    다음은 전광용 씨가 쓴 소설 '꺼삐딴 리'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청자병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면서 술잔을 거듭하는 브라운 씨도 몹시 즐거운 표정이었다.
    "미국에 가서의 모든 일도 잘 부탁합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떠나실 때 소개장을 써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역사는 짧지만, 미국은 지상의 낙토입니다. 양국의 우호와 친선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탱큐…"

    소설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미국으로 이민가기 위해 주한 미대사관 직원을 찾아 이렇게 고려청자 한병을 들고와 뇌물로 바친다.

    바로 이 대사관 직원은 실존 인물이고, 그 주인공은 한국에서 두 차례(1948~1950년,1958~1963년)에 걸쳐 7년간 문정관과 정무참사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이다.

    그는 조각가인 아내 마리아 폰 아그누스와 함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중요한 문화재를 수집했다.

    하바드대학에 기증한 도자기 150점 말고도 다량의 불화, 불상, 서예, 전적류를 수집했다.

    도자기는 1년마다 30여점을 수집했고, 다른 수집품까지 세보면 이틀에 하나 꼴로 닥치는대로 모았다.

    마리아 헨더슨은 1988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절대 골동품상을 찾아간 적이 없다. 골동품 상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물건을 싸들고 왔다. 거기서는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이들 부부는 1963년 한국을 떠나면서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이용해 어마어마한 문화재를 싸들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들이 떠나기 1년 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정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려면 정부에 신고해 허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헨더슨 부부의 이삿짐에 보물이나 국보급 문화재가 있었다면 이는 불법 반출이다.

    무사히 한국 문화재를 빼돌린 헨더슨 부부는 1969년 오하이오 주립대 미술관에서 '한국의 도자기:예술의 다양성-헨더슨 부부 컬렉션'이란 타이틀로 전시회를 열었다.

    이는 소장품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비싼 값에 팔려는 언론플레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전시회가 끝나자마자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자기들 소장품을 100만 달러에 사라고 요구했다.

    거의 100배 장사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을 박물관 큐레이터로 특채할 것을 덧붙였다.

    대학측이 거절하자 여기저기 물건을 팔려고 돌아다니다 헨더슨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1988년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헨더슨이 죽자 삼성이 접촉했으나 마리아 헨더슨이 부른 가격이 너무 엄청나 무산됐다고 한다.

    문화재 보관과 관리가 힘들어지자 헨더슨의 부인은 도자기 컬렉션을 하바드대학에 기증하고 나머지는 경매로 헐값 처분했다.
    마리아 헨더슨이 소장했던 기러기 12폭 병풍. 1만 5,405 달러에 팔렸다. (사진=보스톤 한인연합신문 제공)

     


    고려말 조선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가여래탱화. 1만 4,220 달러에 팔렸다. (사진=보스톤 한인연합신문 제공)

     


    ◈ 우리 문화재로 도배질한 헨더슨 부부의 자택

    헨더슨의 아내가 죽을 때까지 집에 갖고 있던 우리 문화재들. (사진=보스톤 한인연합신문 제공)

     

    마리아 헨더슨의 아내가 사는 거실 사진은 몇번 언론에 공개됐다.

    집 전체가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로 도배를 하다시피했다.

    그들의 집은 보통 서민주택보다는 비싼 곳이지만 귀중한 문화재를 전시할만한 대저택은 아니다.

    저 좁은 거실의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고려시대의 탱화를 보면, 이들 부부가 우리 문화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때 서재에 걸려 있었다는 안평대군의 글 '금니법화경'이 아직 경매처분되지 않고 헨더슨 재단이 보관 중이라는 사실이다.

    조선 최고의 명필가라는 안평대군이 쓴 <금니법화경> (사진=보스톤 한인연합신문 제공)

     

    이 작품이 한국에 남아 있었다면 당연히 국보로 지정될 만한 귀중한 문화재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유일한 안평대군의 글씨 '소원화개첩'은 국보 2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나 문화재단이 많은 돈이 들더라도 사서 우리 박물관에 전시해야 한다.

    ◈ 해외로 흩어진 문화재…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자
    그레고리 헨더슨만 이렇게 우리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불법 반출한 건 아니다.

    1970년대에 한국에 근무한 스나이더 미국대사 부부도 한국의 민화를 대량 수집해 미국으로 들고가버렸다.

    이들이 한국을 떠난 무렵 민화값이 폭등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1980년대 한국에서 근무한 리차드 워커 대사의 관저 창고에는 한국의 유력인사들이 뇌물로 바친 우리 문화재가 가득 차있다는 사실이 여러 증언에서 나오고 있다.

    더이상 우리 정부는 해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 회수를 더 이상 민간에 맡기고 뒷짐 지고 있으면 안된다.

    문화재란 원래 있던 제 자리로 돌아가야 그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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