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학생들에게 남긴 메시지들
‘대한민국이 미워요’.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안산 임시합동분향소의 수많은 조화 가운데 이런 글귀가 적혀있는 조화가 눈에 띈다.
얼마나 분노가 치밀고,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으면 이런 조화를 보냈을까? 맞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싫다. 다 어른들의 잘못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첫 신고한 아이조차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나 먼저 살겠다고 벗어던진 책임감, 돈벌이에 혈안이 돼 내팽겨진 안전, 밀어주고 끌어주며 자리 챙기기에 여념 없던 관료, 엉망진창이 돼버린 사상누각의 재난본부, 초기 대응부터 우왕좌왕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가슴을 짓누르고 대한민국을 울게 만든다.
전방위로 휘두르는 검찰의 칼날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대통령의 때늦은 엄포가 시간을 돌릴 수도, 숨진 아이들을 살려낼 수도 없다. 가족을 잃고, 자식을 찾지 못해 울부짖는 이들에게 그 누가 힘이 되어 주고, 그 무엇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이 다 안타깝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어떻게 한 명도 살리지 못할 수 있느냐는 격앙된 목소리도, 국민의 생명도 지키지 못하는 게 정부냐는 외침도, 그동안 한 일이 무엇이냐는 악다구니도 그래서 더욱 처연하게 느껴진다. 대답 없는 메아리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미워요’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응어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응어리 속에서 슬픔을 나누며 고통에 동참하는 물결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위로의 말조차 누가 될까봐 침묵으로 청소에서 식사준비, 빨래까지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임시분향소에는 애도 행렬의 눈물이 강물을 이루고, 비통한 마음으로 적은 쪽지들이 홍수를 이룬다. SNS에서 시작된 노란 리본은 안산과 서울, 진도, 전국 방방곡곡을 물들이고 있다. 살아 돌아오기만을 염원하던 소원이 살아있는 자의 미안함으로,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다짐으로 펄럭이고 있다.
등교하는 단원고 학생들
세월호의 고통과 상처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이 현실을 원망하지만 슬픔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상황에 대한 분명한 심판, 살아있는 우리가 더 낳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확고한 다짐으로 승화돼야 한다.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이 24일 다시 등굣길에 나섰다. 후배들의 희생과 상처를 안고 못 다 이룬 꿈과 희망이 이제 그들의 몫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미워요’는 대한민국을 다시 세울 역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