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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윤리 버린 물질정치 생명경시 사회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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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윤리 버린 물질정치 생명경시 사회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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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이 만난 사람]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이 땅에 발붙이고 살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수백여 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과 같은 참사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20년 가까이 지식인 공동체를 꾸려 오며 대중 인문학의 물꼬를 튼 고전평론가 고미숙(54) 씨는 "세월호 참사는 압축 고도성장을 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가를 한눈에 보여 준 사건으로 20세기 정치담론의 침몰"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은 타고난 본성을 윤리화·제도화한다는 말입니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그 본성일 텐데 20세기의 도덕률은 이를 본능이라는 개념에 묶어 옆으로 치워놓고는 그 자리에 이성과 합리성을 세웠어요. 그렇게 우리의 정치는 사람의 생명과 몸을 완벽하게 소외시키는 시스템과 제도만을 만들어 온 셈이죠."
     
    제도를 실행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몸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는 그러한 몸의 습관과 기질을 바꿀 수 있는 윤리적 운동을 단 한 차례도 벌이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선장 등이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고, 정부 고위 관료들이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도 윤리적인 몸을 갖지 못한 탓이란다.
     
    최근 서울 필동에 있는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에서 만난 고 씨는 '본성, 자연, 무의식 등 야생적인 욕망이 집약된 공간이 몸'이라며 "윤리는 몸으로 얻는 비전이요 이치"라고 전했다. 그가 고전에서 애써 찾으려는 것도 현대에 접목할 수 있는 윤리학의 씨앗이었다.
     
    "시대별로 사회 구성체가 다르다는 것은 사람 내면의 풍경까지도 다르다는 말이죠. 화폐적 인간을 낳은 지금 시대는 국가 재난시스템도 화폐로 만들어 버렸어요. 옛 삶의 풍경을 품은 고전은 한 걸음 떨어져서 현재 우리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이때 동양고전은 이치와 존재의 결합을 꾀한 뒤 그것을 몸으로 실천하라고 요구하는데, 결국 윤리학인 셈이죠."
     
    ■ 화폐의 지배서 벗어나기…"고전은 윤리학의 씨앗"
     
    고 씨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당시 30대 후반이었는데, 2년 동안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알아보면서 몹시도 몸이 피로했던 그때 경험을 전했다. 이 경험이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붙인 지식인 공동체를 꾸리는 데 동참하도록 만든 계기가 됐단다.
     
    "교수 임용 면접·시험을 한 번 보면 일주일은 소화가 안 됐죠. 서류 쓰고 면접 보고 나면 한 학기가 훌쩍 지나가는 식이었는데, 그 와중에 제 일상은 없었어요. 시간 강사로 학생들 앞에 서도 불만에 가득차 비판만 쏟아내고 있더군요. 그런 제 자신이 싫었고 겁도 났죠. 그렇게 5, 6년 하면 자리가 난다는데, 몸이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외쳤죠. 당시에는 저 같은 수많은 박사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었죠. 그렇게 뜻맞는 인텔리 백수들이 모여 수유너머를 꾸렸습니다."
     
    고 씨가 인문학연구소 수유너머에 참여한 데는 마음 편하게 공부하자는 마음이 컸는데, 이는 결국 몸을 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힘내서 공부를 하려면 밥을 먹어야 했고, 그래서 공동체 안에 주방도 만들었다. 이 전통은 그가 수유너머에서 분화해 감이당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온 15년 동안 계속됐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모인 이곳 공동체는 실제 먹고 사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뜻하지 않게 사회에 기여한 부분은 학문의 융합과 생활화라고 봅니다. 한국 고전문학을 하던 제가 서양 포스트모더니즘을 연구하던 분들과 접촉을 했고, 이런 식으로 예술과 물리학, 인류학 등 학문들이 섞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제게는 정말 행운이었죠. 주방을 만들면서는 누가 밥하고 설거지하냐는 현실적인 역할 구분 문제로 진통을 겪었는데, 주방 일을 안하려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엄청 당했어요. (웃음) 그래도 밥은 먹어야 했으니 성별·세대 갈등을 겪으면서도 주방은 운영이 됐고, 잘 먹고 열심히 공부하니 연구 성과도 잘 나오더군요."
     
    고 씨가 자기 학문의 밑거름으로 "몸으로 얻는 생활의 논리"를 꼽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스스로 "자연과학을 좋아하게 되고 동의보감을 연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그에게는 학문도 결국 생활의 논리였다.
     
    "대학에서 서양적 프리즘으로 학문을 하던, 근대적 표상으로 가꿔지던 제 생활의 논리가 변하니 결국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몸이었죠. 상대의 동선과 습관을 봐야 소통이 되는 법이잖아요. 이는 윤리학으로서 동양고전을 재발견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 "먹고 살기 힘든데도 공부하는 것이 사람의 윤리"
     
    고전평론가 고미숙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사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동양철학, 좁혔을 때 한국의 전통 철학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보는 시선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고 씨는 "화폐와 쾌락, 노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화폐, 쾌락, 노동의 삼위일체 안에서는 그 곳에 사랑, 자비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더 자극적이고 세고 강렬한 것만이 살아남으니까요. 어제보다 약한 자극으로는 오늘의 쾌락을 움직일 수 없어요. 이렇게 봤을 때 동양적인 유동성이 얼마나 고리타분하겠습니까. '손 안의 세계'로 불리는 스마트폰은 인종, 성, 빈부격차,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정보는 인류가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무기입니다. 그 정보의 보고가 곧 고전이죠.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의지하거나 무릎꿇지 않고 삶과 죽음을 감당하겠다는 겁니다."
     
    이렇듯 동양철학은 고 씨에게 있어서 곧 윤리학이 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먹고 살기도 힘든데 책 볼 시간이 어딨냐고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데도 공부를 하는 것이 인간의 윤리"다.
     
    "지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힘은 그것을 직시하는 거죠. 전태일에게 힘든 일과에서도 책을 보던 시간이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때였던 것처럼요. 개인의 윤리학, 모든 혁명과 문명의 방향은 그곳을 항하고 있어요. 자기 욕망을 계속 변주하면서 세상의 리듬을 타는 것이 윤리입니다. 하지만 개인과 집단을 나눠 버린 서양의 근대적 시각은 집단 안에서 개인의 욕망을 인정하려 들지 않아요. 이는 교육·지식 자체에 개인이 연결되는 지점을 없애 버리는 결과를 낳았어요. 집단의 논리에서 윤리가 배제된 거죠."
     
    고 씨에 따르면 불균형은 생명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이지만 번뇌와 불안도 만들어낸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화폐가 지배하기 전의 사회는 번뇌와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배움을 중요시했다. 동양에서는 이를 두고 '기질을 바꾼다'고 표현했단다.
     
    "개인의 몸을 소외시킴으로써 윤리를 훈련할 기회조차 사라져 버린 윤리 없는 사회가 된 거죠. 이에 따라 결국 법망만 물고 늘어지고 있는데, 그 법이 내적 자발성에 근거한 것인지를 검증할 시스템은 없어요. 사회를 개인과 집단으로, 사생활과 공생활로 나눈 데 대한 참혹한 대가가 윤리의 붕괴인 셈이죠." 
     
    ■ "글쓰기는 삶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수행"
     
    특정 학문에 구애 받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글쓰기로 이름난 고 씨는 자신의 글쓰기를 두고 '수행'이라고 했다. 윤리적 주체로서 끊임없이 우주의 진리를 배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혁명을 일으켜 왔는데, 혁명의 성공은 깃발을 꽂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바꾸는 겁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일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이에요. 노동, 화폐, 쾌락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으려면 지적인 즐거움을 누려야 하는데, 스스로 삶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글쓰기인 거죠."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몸담고 있는, 수유너머에서 분화된 감이당 역시 노동 화폐 쾌락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도심에서 유목하기' '자본주의 한복판에서 길 열기'가 대중지성 네트워크로서 감이당의 모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리가 있는 지성, 곧 대중지성의 네트워크라 하면 주방에서 밥을 해 먹는 것만큼이나 생로병사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몸의 기질과 습관이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의 존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역학과 의학의 문제가 불거졌고, 이에 접근하고자 감이당이 꾸려졌죠. 대중지성은 20세기 지식인들이 대중을 계몽하고 이끌던 것과는 다릅니다. 대중 스스로 지성인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는 데 감이당의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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