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기사와 직접적 관련없음 (자료사진)
화사한 립스틱과 윤나는 외출복으로 치장한 김은자(71)씨가 서울 종로3가 지하철역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훑어 본다. 그녀가 곁에 내려놓은 큰 가방을 움직일 때마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친 유리병이 쨍그랑 소리를 낸다. 가방에 박카스를 넣고 다니는 김씨는 일명 '박카스 아줌마'다.
9일 BBC 온라인판에는 '성매매 하는 한국인 할머니'라는 제목으로 박카스 아줌마들의 생활상이 낱낱이 보도됐다. 한국에서 박카스 아줌마란 박카스 등 자양강장제를 팔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노인 여성을 뜻한다.
이 기사를 보도한 루시 윌리엄슨 BBC 기자는 "전통적으로 한국은 자녀들이 노인을 부양하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자녀들은 자신들의 노후를 준비하는 데에만 바쁘다. 결과적으로 일부 노인 여성들은 성매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카스 아줌마가 단순히 박카스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자신의 성(性)을 함께 판다. 김씨는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일부는 할아버지와의 하룻밤을 통해 돈을 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박카스만 팔면 하루에 5천원을 벌지만, 성매매를 겸하면 한 번에 2~3만원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성매매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현장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종묘공원이다. 50~70대 여성들은 이곳에서 장기를 두거나 소일거리를 찾는 노인 남성들에게 박카스를 건네며 접근한다. 그러나 박카스 구매는 인근 싸구려 호텔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일 뿐이다.
윌리엄슨 기자가 만난 60대 남성은 "늙은 남자나 젊은 남자나 모두 여자를 갖고 싶어한다. 그게 남자의 심리"라고 전했다. 또 다른 81세의 남성은 "우리는 여기서 여자친구를 만나 사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성공의 그늘에는 노인 남성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 신화를 창조해내기 위해 일하고 번 돈을 자녀들에게 투자했다. 유교사회에서 성공한 자녀는 부모 세대에게 노후 보장을 위한 최고의 보험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RELNEWS:right}그러나 급속도로 경쟁 사회로 치닫는 한국에서 젊은 세대들은 더 이상 부모 세대를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도 적절한 복지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한계가 따른다. 그러는 사이 종묘공원을 서성이는 남녀 노인들은 현실적인 노후 보장과 자녀도 없이 그들만의 세계에 갇힌 외국인으로 비칠 뿐이다.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인 이호선 서울벤처대 교수는 윌리엄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박카스 여성들은 새로운 형태의 노인 빈곤 때문에 결국 성매매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박카스 여성은 이 교수에게 "나는 배고프다. 존경은 필요 없다. 명예도 필요 없다. 그저 하루에 세 끼 식사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윌리엄슨 기자는 "'무시무시한' 한국 경제를 이룩한 할아버지들에게 음식은 너무 비싸고 섹스는 저렴하지만, 사람의 체온은 어떤 가격에든 좀처럼 이용할 수 없다"면서 온정에 메말라버린 한국 사회를 냉소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