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딜' 언론시사회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열린 가운데 이훈규 감독(왼쪽)과 고영재 프로듀서가 기자간담회에 참여하고 있다.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여러분의 공공재는 어떻습니까?"
17일 서울 소공동에 있는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언론시사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블랙딜(Black Deal)'의 말미, 내레이션을 맡은 가수이자 문화운동가인 정태춘이 친근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묻는다.
전기, 가스, 철도, 의료, 수도, 통신, 도서관 등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없이 누려야 하는 우리 모두의 재산 공공재. 우리는 공공재를 잘 관리해 달라는 의미에서 정부에 권리를 위임하고 세금을 낸다.
그런데 정부가 화폐의 논리에 따라 기업의 주머니를 채워 주는 수익원(여기에는 '민영화'라는 어감이 꽤나 괜찮은 이름이 붙는다)으로 공공재에 접근하고 있다면? 더욱이 시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나랑은 상관 없잖아'라는 무관심과 '세상이 다 그렇지'라는 식의 체념에 젖어 있다면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영화 블랙딜은 영국 프랑스 독일 칠레 아르헨티나 일본 등 우리나라보다 수십 년 먼저 공공재에 대한 민영화가 이뤄진 나라들을 찾아가 그곳 시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그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수십 년간 진행된 민영화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은 만족을 모르는 화폐의 탐욕성에 밀리고 있었고, 시민들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의지와 어디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잊은 망각 사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이 영화는 다소 묵직한 주제를 우리 일상과 접해 있는 사례, 몰입도를 끌어올린 편집, 딱딱함을 버린 편안한 내레이션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필요가 있다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극 전반에 깔린 덕에 그 효과는 배가되는 인상이다.
이날 언론시사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는 블랙딜을 연출한 이훈규 감독과 제작을 맡은 고영재 프로듀서가 참석해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훈규 감독은 "최근 다시 논쟁의 화두로 떠오른 민영화에 대한 답을 내리기보다는 어떤 질문을 던질까에 무게를 뒀다"며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취재를 하다보니 시민의 의견을 모으는 민주적인 제도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전했다.
고영재 PD는 "기획의도는 20년 전부터 광범위하게 민영화가 이뤄져 온 현장에 가서 그 실상을 취재하자는 것이었는데, 기획 의도와 현장에서 느낀 것을 종합해 결과물이 나왔다"며 "취재 과정에서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 발전 없이는 민영화의 폐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블랙딜' 언론시사회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열린 가운데 왼쪽부터 이훈규 감독, 나레이션 정태춘, 고영재 프로듀서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영화는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민영화가 불러 온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다보니 내레이션과 마찬가지로 톤을 한 단계 낮춰 오히려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인상을 준다.
이 감독은 "해외 6개국을 취재하면서 남미를 거쳐 일본 유럽을 갔는데, 아르헨티나가 가장 처참한 경우였고 일본의 경우 아르헨티나로 가는 중간 과정에 있었다. 유럽은 정치권과 기업이 유착한 블랙딜과 민영화됐던 것을 다시 공영화하는 움직임이 혼재돼 있었다"며 "민영화에 대한 문제를 잊어버리는 순간 10년 뒤 우리의 현실은 어디에 항의해야 할지조차 잊어 버린 아르헨티나의 시민일 것"이라고 했다.
민영화가 시행된지 한 세대가 지난 유럽의 경우 시민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국가 주도로 민영화를 밀어붙인 상황에서 이를 이어갈지 말지를 논하는 재계약 시점이 도래했다. 영화 블랙딜은 이 재계약 과정에서 시민들이 대처하는 과정을 비중 있게 다룬다.
이 감독은 "유럽에서는 재계약 때 시민 의견이 전달되고 반영돼 다시 공영화를 하거나 민영화가 아닌 또 다른 형태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며 "주민공청회가 주민 의견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우리나라에서 시민 참여 수위가 낮은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