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맞서라!
대한민국은 왜 헛발질만 하는가/변상욱 지음/페이퍼로드
민주주의로 포장되어 휘둘러지는 지배와 군림의 단면들을 적어간 시대 기록의 모음이다. 저자는 그 지배와 군림이 어디서 왔는지를 살피기 위해 역사를 뒤적이기도 하고 속절없이 당하는 우리를 살피고자 심리학도 참고하며 외국의 사례나 상황을 첨부하기도 한다.
저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버지에게서 배운 정치적 이념과 구시대적인 통치 행동 양식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였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곁에서 영부인 대역을 수행한 일은 상당히 가치 있는 정치 수업이었겠지만 젊은 시절 자신의 이념을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경험이 적기에 지도자로서 생동감이 떨어지며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모습은 가히 파시즘의 양상이라 부를 만하다. '일간베스트(일베)'와 같은 극우 집단에서는 간첩 신고 붐이 일고 보수 언론은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부풀려 보도한다. 정부가 이를 두둔하는 가운데 사상의 자유는 사라진다. 반공의 이름으로 검열이 행해지던 시대의 트라우마가 우리를 움츠리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구경꾼일 뿐이다. 구경꾼에게는 그들만의 역사가 없다. 저자는 국민의 정치적 침묵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언론에도 책임을 묻는다. 기득권이 정치 참여에 비싼 입장료를 요구하면 언론은 투표장에 가는 것이 국민에게 부여된 정치의 전부라고 오도한다는 것이다. 민주공화국 시민의 정치적 권력은 박탈당한 채 박제된 유물로만 남아 있고 지적한다.
"국민의 정치참여의 핵심은 투표참여가 아니라 정치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정치에 나서라 하지 않고 투표에나 나서라고 한다. 왜 국민에게 정치를 권하지 않는가? 이 문제는 정치는 무엇인가라는 문제부터 따져야 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절차가 권력일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정치가 아니라 지배이다. 진정한 민주정치는 국민이 자신의 운명과 삶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해 고루 나누는 것이다."-본문 286쪽.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곳곳의 저항이 거리로 나오고 있는 지금 저자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빌려 우리를 일깨운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세상이 바뀌어야 할 때 빚어지는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이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지독한 침묵이었다고." 이 책은 선한 다수인 우리에게 세상 읽는 법을 안내한다. 그리고 우리의 침묵이 깨질 때 비로소 지배와 군림에 맞서게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