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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국영화의 오락적 폭력이 불편하다

     

    최근 한국영화의 폭력수위가 무의미하게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액션과 느와르 장르가 집중적으로 개봉하면서 '식칼의 향연'이라고 할 정도로 칼부림이 난무하고 있다.

    4월 '표적'과 '끝까지 간다'부터 5월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 그리고 7월 '신의 한수'까지 지난 세 달간 한국영화는 유난히 느와르나 액션 장르가 주를 이뤄 개봉됐다.

    이중 3종 세트라 할 수 있는 우는 남자와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는 상대적 저평가와 매끄럽지 못한 만듦새, 세월호 참사 이후 우울한 사회분위기가 겹쳐 관객의 외면을 받았고 장동건 차승원 이민기 등 스타캐스팅에도 불구하고 100만 관객도 모으지 못했다.

    그나마 표적은 5월 가정의 달 연휴에 개봉해 284만 명을 모았고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끝까지 간다는 예상치 못한 스토리 전개와 이선균 조진웅 두 배우의 팽팽한 연기대결에 힘입어 300만 관객돌파를 앞둔 상태다.

    신의 한수는 언론 시사 이후 대중을 사로잡을 오락영화로 손꼽히고 있다.하지만 이들 영화의 폭력수위는 오락성과 별개로 불편함을 안겨주는 게 사실이다. 여기에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캐릭터는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고개 돌려 외면하고 싶다.

    현실의 뉴스에서 너무나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이며 부패한 어른들을 일상처럼 접하는데 굳이 영화에서까지 보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나쁜 경찰의 나쁜 짓, 신뢰도 추락한 공권력의 반영?

    경찰은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고 비리경찰도 한국영화의 장르가 확장되면서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특히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바닥으로 추락한 올 상반기, 표적과 끝까지 간다에서 나쁜 경찰의 등장은 현실상을 반영했다는 느낌마저 줬다.

    표적에서 누명을 쓴 남자를 뒤쫓는 사람이 바로 '배드캅'이다. 나쁜 놈을 잡아야할 경찰이 오히려 나쁜 짓을 저지르는 악당이고,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악당으로 만든 뒤 '범인검거'라는 이름으로 뒤쫓는 것이다.

    그나마 이 영화는 누명을 쓴 남자가 배드캅을 혼내주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면이 있다. 누명을 쓴 자의 포효는 힘없는 자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기도 했다.

    끝까지 간다는  비리 경찰과 나쁜 경찰, 두 배드캅의 예상을 뒤집는 한판 승부가 주는 오락적 재미에 머문다.

    적당히 속물근성이 있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자신보다 더 악질 경찰을 만나 위기에 처하나 죽기 살기의 각오로 맞받아쳐 살아남는다. 마지막 얼떨결에 얻은 큰 행운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보통사람의 일그러진 욕망을 대변한다. 

    최근 청소년의 17.7%가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해 화제가 됐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도덕성이 추락한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초상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자아낸다. 눈먼 돈은 당연히 꿀꺽하는 것이고, 그걸 못하는 사람이 바보인 세상인 것이다.

    조폭과 함께 등장한 사시미칼 "과도하게 난폭한 식칼 액션

    하이힐은 성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애정이 가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은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요즘 영화 속 악당은 경찰도 검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그들을 죽이는 방법은 과도하게 잔인해 눈을 감고 싶다.

    칼질의 행위가 아무런 목적없이 자행된 것은 아니다. 극중 검사의 피살은 살해를 지시한 자가 그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드러내며 극중 동료 형사의 피살은 주인공의 선택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칼질의 횟수가 필요 이상으로 과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황제를 위하여는 배신과 비정함으로 얼룩진 세계를 보여준다. 마치 동물의 왕국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은 수컷들의 세계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정한지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와 주제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이들 난폭한 장면들은 의미 없는 이미지의 향연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 속 죽음, 창작자와 산업구성원들 고민 필요"

    신의 한수도 과도한 폭력신이 등장하다. 무협물의 공식을 따르는 이 영화에서 초반부 주인공이 과도한 폭력을 당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잔인하게 당할수록 주인공의 복수가 설득력을 얻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상대할 악당이 얼마나 잔인무도한 캐릭터인지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둘의 싸움이 팽팽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 드는 회의가 있다. 과연 저 장면의 폭력신은 반드시 필요한가, 무엇보다 당한만큼 똑같이 복수하는 주인공의 행동은 과연 정당한가. 상대를 불구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꼭 죽여야 할까.

    이 영화에도 식칼 액션신이 등장한다. 총과 달리 식칼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그 느낌의 강도가 다르다. 특히 실감나는 음향효과는 장면의 폭력성을 더욱 끌어올린다.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인 외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주인공이 죽으면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의 영화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에 맞서 전장에 투입된 그는 다시 살아나 같은 날을 반복하면서 상대를 죽일 전략과 기술을 연마한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다보면 웃지못할 상황에 처한다. 극중 톰 크루즈가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피식 웃음이 난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는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비밀을 아는 동료는 작전상 눈도 깜짝 안하고 그를 죽인다. 현실에서는 한번 죽으면 끝인데 말이다.

    오락영화를 너무 심각하게 본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액션영화나 누아르의 특성상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짜라도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세가 창작자를 비롯한 산업구성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영화란 대중적이고, 사람들의 의식에 적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인 까닭이다.  

    한국영화 폭력수위 "시스템 영향도 무시못해"

    한 영화 언론 관계자는 최근 한국영화의 폭력수위에 대해 "마치 내가 더 멋지게 사람을 죽여라고 내기라도 하는 것 같 다"라고 했다.

    그는 “한때 조폭영화가 성행하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한국영화는 욕 빼면 시체라고 할 정도로 욕이 난무했다면 요즘은 너무나 잔인해졌다”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어 "총보다 칼이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데 사람 목을 정중앙으로 찌른다든지 눈알을 빼고 손목을 자르고 심지어 혀도 빼서 자른다든지 경쟁적으로 표현이 과해졌다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한 극장 관계자도 "'하이힐' '우는 남자' 그리고 개봉 앞둔 '신의 한수'까지 폭력수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신세계'도 잔인했지만 당시에는 그 한 편뿐이었고, 드라마의 완성도가 뒷받침돼 덜 선정적으로 다가왔다면 올 상반기에는 유사 장르의 영화가 쏟아지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될 정도"라고 했다.

    그는 "표현수위를 둘러싸고 투자자나 제작사, 감독 간의 실랑이는 예전부터 있어 왔으나 현재 잘되고 있는 '끝까지 간다'는 그렇게 잔인한 장면없이도 흥행이 잘되지 않느냐"며 "폭력수위에 대한 창작자들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도 "한국액션영화의 폭력수위가 센 것은 사실"이라며 "할리우드 영화는 호러가 전담하는데 호러가 판타지 장르라면 액션은 사실적 세계를 그린다는 차이가 있다"고 비교했다.

    이어 "요즘은 창자가 터져 나올 정도로 쑤시고 찌르는 소리도 자극적인데, 한국영화의 폭력수위가 세진 이유는 단지 창작자의 문제가 아니라 대기업이 주도하는 시스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산업을 주도하면서 한국영화의 절반 이상이 감동과 웃음, 볼거리 세가지 흥행요소를 한 영화에 다 넣고자 한다."

    폭력은 볼거리의 하나로 제작비가 높으면 CG나 특수효과의 힘을 빌릴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폭력이 가장 싸게 먹히는 스펙터클이 되는 것이다.

    '세븐데이즈'(2007)나 '추격자'(2008)가 흥행하면서 스릴러와 액션이 결합된 영화가 중심 장르로 부상한 것도 한국영화의 폭력수위가 높아지는데 일조했다.

    그는 "유괴 장기매매 납치 살인 도박이 소재가 되고, 우정과 배신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표현방식으로 폭력을 택하면서 폭력이 남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폭력 자체를 주제로 한 폭력은 없다. 다른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폭력이 선호되는 양상이다. '아저씨'나 '최종병기 활'도 얼마나 폭력수위가 강했나? 하지만 흥행에 성공하면서 영화산업시스템이 창작자에게 폭력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창작자도 투자가 잘되는 영화를 해야하니까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폭력 수위가 높은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표현수위가 낮아지거나 아예 '끝까지 간다'처럼 폭력 수위는 낮고 관객들에게 심적 고통은 덜 주는 경쾌한 리듬의 액션이나 스릴러가 나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때 욕하는 한국영화가 난무하다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사라졌던것 처럼 폭력수위가 높은 영화도 흥행성적에 따라 변화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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