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을 가슴에 단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특별법으로 촉발된 세월호 정국이 이어지고 있던 지난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4박 5일의 일정동안 교황이 보여준 모습은 가톨릭 신자들 뿐 만 아니라 참된 지도자를 그토록 기다리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고 지난 8월 18일 로마로 떠났다.
교황께서 4박 5일 일정동안 보여주신 모습은 하나하나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꼬인 세월호 정국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대다수 국민들의 관심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 유족들, 특히 단식 34일째를 맞이하는 유민이 아빠(김영오 씨)에 대한 교황의 반응이었다.
그러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를 공감하고 있었던 지, 미국의 AP통신에서는 대한민국을 방문한 교황의 4박 5일 일정 가운데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유민이 아빠와의 만남을 꼽았다. 세계인의 시선은 고통당하는 자 억눌린 자들을 위로하시는 교황의 모습으로만 비쳐졌을 터이나, 세월호 참사에 녹아있는 국민적 슬픔과 분노라는 복잡한 역학관계를 품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분명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심판자의 모습으로도 와 닿았을 것이다.
교황은 전 세계 12억이 넘는 가톨릭 신자들을 대표하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 교황과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로 전 세계인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세계 제일의 지도자로써 미국의 타임지는 2013년 올해의 인물에 교황 프란치스코를 선정하기도 했다.
따라서 프란치스코의 행보는 단순한 가톨릭 지도자의 행보가 아니다. 이제 그의 언행은 세계인이 지향해야 할 보편적 가치이며 지침이기도하다.
그런 점에서 가슴에 유족들이 전해준 노란 리본을 달고 단식 중인 유민이 아빠를 만나 축복하고 그의 편지를 전달 받은 것은 유민이 아빠의 단식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모든 이들에게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무슨 맘을 먹고 그런 행보를 보인 것일까?
교황께서는 한국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그 속내를 털어놨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교황의 행보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교황은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답했다고 했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있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힘겨워 하는 한 인간을 보고 중립을 지킬 수 없어 노란 리본을 달았다'는 것은 교황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와 한 나라의 수장의 영접을 받는 입장에서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월호 유족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서 그러한 관행과 품위, 절차에 대한 고려를 도저히 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정치적인 고려보다는 성직자로서 양심과 인간과 생명에 대한 진한 애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 셈이다. 이러한 교황의 감동적인 행보를 보면서 문득,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려낸 예수의 모습(눅7:11-17)이 떠오른다.
나인성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있는 나사렛 근처에 위치한 성읍이다. 그곳을 방문했던 예수께서 우연히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 장사 지내는 장례 행렬을 목격하게 되었다. '과부의 외아들의 죽음'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당하는 극한의 고통과 슬픔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슬픈 장례 행렬을 예수께서는 멈춰 세우시고, 관(시신)에 손을 대서 그 과부의 아들을 살렸다는 내용이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눅8:49-56), 나사로를 살리신(요11:17) 예수께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른 면이 보인다. 바로 유족의 요청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 뿐 아니다.
예수께서는 관에 손을 대셨다고 했다. 여기서 관(σορός, 소로스)은 뚜껑이 없는 시신을 올려놓는 판과 같은 것으로, 관에 손을 댔다는 것은 시신에 손을 댔다는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당시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을 율법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지만, 예수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던 셈이다. 극한의 고통과 슬픔 속에서 힘겨워 하는 과부를 보면서 예수는 법을 어긴 셈이다. 유족들이 요청하지도 않았지만 장례 행렬을 세우고 법을 어기면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신 예수의 행보, 이는 고통을 당하고 슬퍼하는 자 앞에서는 모든 법과 관행, 전통을 초월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오전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갑자기 차에서 내려 단식 농성 중인 유민이 아버지 김영오 씨를 위로하고 있다. (사진=교황방한준비위원회 제공)
지난 8월 22일, 유민이 아빠가 단식 40일째 맞이하는 날, 병원으로 실려 가는 사진을 지인이 보내준 바 있다. 바싹 야윈 다리와 팔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다. 40일 단식,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직하게 단식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이혼을 한 아빠라고 해서 그 진정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 그가 민노총 조합원이라고 해서 정치적 행위로 폄하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진상을 밝히자는 데, 왜 그런 잔인한 발언들이 난무하는가? 이혼한 아빠는 자식을 사랑할 자격이 없는가? 민노총 조합원이 하는 일은 뭐든 폭력적이고 정치적인 행위인가?
생떼 같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40일 넘게 단식을 하는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 교황께서 지적한 대한민국의 '죽음의 문화'라는 게 이런 모습 아닐까?{RELNEWS:right}
'법에 없는 일'이라며 생떼를 쓰면서 버틸 일이 아니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와 그 수장의 치부를 드러내는 걸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는 속셈을 이해는 하지만, 그런다고 그 치부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법에 없으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유족들의 아픔을 치료하고, 이 땅의 정의를 세워야 한다.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한 수단 아닌가.
극한의 고통 속에 있는 유족들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교황의 선택, 그리고 법을 어기면서 불쌍한 사람을 살려낸 예수의 선택이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선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