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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문화재 보수 보조금, '먼저 보면 임자?'

    문화재 보수를 명목으로 29억 원이 넘는 국가보조금을 편취한 문화재 수리업체와 사찰 관계자 등이 무더기로 검찰에 기소됐다.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문화재 보수와 관련한 국가보조금 편취가 드러나 관련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편집자주>

    (자료사진)

     

    ◈ 문화재 보수를 빌미로 보조금 29억 가로챈 일당 기소

    대구지검 경주지청은 지난 26일 문화재 보수를 빌미로 경주시로부터 국고보조금 29억 1,000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문화재 수리업체 이사 A(41) 씨를 구속하고 문화재수리업 면허를 빌려준 B(55) 씨 등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또 A 씨 등과 공모해 보조금을 편취한 혐의로 C(76) 씨를 비롯한 사찰 관계자 6명과 자격증을 대여해준 기술자 12명도 함께 불구속입건했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문화재 보수공사 보조금 예산이 배정된 사찰 등과 공모해 경주시로부터 10회에 걸쳐 29억 원 상당의 보조금을 편취하고, 면허를 대여 받아 무자격 공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 업체, 사찰 측 자부담금 대납 약속

    검찰 조사결과 문화재 보수 공사의 경우 수익률은 50%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예를 들어 10억 공사라면 5억원 가량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체 측은 새로운 공사를 따내기 위해 보통 전체 공사금액의 10~20%인 사찰측 자부담금을 대신 내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입장에서는 사찰 측 부담금을 자신들이 대신 내줘도 최소 30% 이상의 수익은 남길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사찰 입장에서도 보수가 필요한 문화재를 무료로 공사를 해주겠다는 제안이 솔깃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런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며 30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 편취사건이 발생했다.

    ◈ 문화재 보수 공사 보조금 지급 시스템 취약점 드러나

    문화재 보수공사는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이 공사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경주시에 보조금 지급을 요청하면 절차가 시작된다.

    사찰 측의 신청을 받은 경주시는 현장 실사 등을 통해 관련 예산을 신청한다. 이후 사업이 결정되면 배정된 예산을 사찰 등에게 통보해 공사에 착수하고 보조금 교부 신청을 하게 된다.

    이때 보조사업자인 사찰 등이 건축업자와 직접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총 공사금 중 일정액을 자부담금으로 부담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이어 보조금 지급이 결정되고 예산이 집행 및 정산되는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경제적 부담 없이 보조금만으로 사찰의 시설을 정비하려는 욕구와 문화재 보수 공사를 한건이라도 더 따내려는 업자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경우 이 시스템은 별다른 견제가 없는 '무용지물'이 됐다.

    ◈ 보조금 지급 시스템, 구조적 취약

    전술했듯 문화재 보수 공사는 50%에 이르는 높은 수익률 때문에 시공업체가 자부담금 대납을 약속하며 공사 수주를 유혹할 수 있는 구조가 조성돼 있다.

    현행 규정은 불필요한 공사의 시행을 막기 위해 보조사업자인 사찰 등의 자부담금 요건을 두고 있다.

    하지만 검증 절차는 자부담확약서 제출과 입금 내역 확인에 그쳤다. 자부담금을 내겠다는 서류 한장과 돈을 보냈다는 통장 사본 1장이면 자부담금을 확인하는 절차가 끝나는 것이다.

    결국 돈의 출처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고 자부담금 대납이 너무 쉬워 범죄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

    특히 보조금 예산 신청에 대한 권한과 배정된 예산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당공무원이 갖고 있어서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사건에서는 적발되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문화재 보수 공사와 관련한 리베이트가 오갔을 가능성이 충분해 추가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 문화재 공사 특수성도 보조금 편취 부추겨

    문화재 관련 공사는 '전문성'과 '특이성'으로 인해 자격 면허가 인정된 몇몇 업체가 전담하고 있다. 설계와 시공, 감독 등 전 과정이 폐쇄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로 인해 비리의 관행화와 관련자 간 결탁이 용이한 특성을 갖고 있다.

    여기다 국가보조금 편취는 국가나 지자체에 대한 범행이어서 마치 피해자가 없는 범죄인 것처럼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의자 대부분은 특별한 죄의식 없이 쉽게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보조금 편취사건과 관련해 '눈 먼 돈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 문화재 보조금 편취, 국가재정 낭비로 이어져

    이번 사건에서 보듯 보조금 지급이 문화재 보수와 관리의 필요성이 아닌 건축업자의 공사 수요 창출을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면서 불필요한 공사가 진행됐다.

    또 일부 공사의 경우 자부담금 대납 등을 예상해 보조금 신청단계에서부터 공사비 자체를 부풀려 필요 이상의 보조금을 신청하면서 국가재정이 더 낭비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실공사도 우려된다. 건축업자는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값싼 부실자재를 사용하거나 설계와 달리 공사할 우려가 높은 것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도 국내산 육송을 사용하겠다는 설계와 달리 값이 크게 싼 외국산 목재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문화재 부실 복원의 폐해는 가치로 측정할 수 없는 국가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 검찰, 제도 개선 적극 건의

    이번 사건으로 문화재 보수와 관련한 관행적 비리 구조가 확인됐다. 특히 경주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이런 범죄가 관행처럼 이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은 경주시에 수사결과를 통보해 부정 지급된 보조금의 회수를 주문했다. 이와 함께 보조금 지급 사업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을 촉구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보조금 지급 과정에 구조적 문제점 등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에 제도 개선을 적극 건의해 앞으로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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