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0일 오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 나온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경복궁 내를 둘러보고 있다. 윤창원기자
"중국은 땅이 크니까요. (한국은 땅이 작아서) 궁궐도 작습니다. 한국은 무엇이든 다 이렇게 작아요. 경복궁은 그나마 좀 큰 편입니다"
지난 1일 오전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한 중국인 관광객이 "경복궁이 중국에 비해 크기가 좀 작은 것 같다"며 질문하자 이들을 인솔하던 중국동포 가이드는 이렇게 답했다.
건축물 크기가 땅 크기에 비례한다는 부실하고 어이없는 설명.
명지대 전통건축학과 김왕직 교수는 "건축은 단순히 '규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중국은 작은 나무들을 모아 감싸는 방식으로 큰 기둥을 만들어 규모를 키웠지만, 우리나라는 통 원목을 쓰기 때문에 건축의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을 갖고 이를 객관적으로 알려야 할 가이드가 되려 왜곡된 사실을 전달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다.
이는 해마다 우리나라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중국어에 능통한 중국동포들의 불법 가이드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중국동포들은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갖추지 않은 채 불법 가이드 활동을 하고, 당장 사람이 급한 여행사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가이드를 쓸 수 있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인 상대 가이드는 한국인·한족·중국동포로 나뉘는데 그 중 자격증 없이 활동하는 중국동포 가이드가 80~90%는 될 것"이라고 심각성을 전했다.
한 가이드는 "경복궁이 자금성에 비해 색이 칙칙하다고 표현하는 가이드도 본 적이 있다"며 "한 달 전까지 공장에서 일하던 중국동포가 두세 번 연습하고 가이드로 나서는 실정"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날 "경복궁은 자금성을 본 따 만든 것"이라고 설명하던 또 다른 중국동포 가이드는 자격증이 없다고 시인하면서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시험에 두 번 떨어지고 다시 공부하는 중"이라면서 "한국에서 어릴 때부터 있었다면 어렵지 않을 텐데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법률이나 문화는 너무 어렵다. 시험을 보고 떨어진 경우라면 좀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이 있는 합법적인 가이드들은 경복궁에서 여행사 깃발을 들고 마이크 등 장비를 갖추고 활동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무자격 중국동포 가이드들은 여행사 깃발 없이 소수 인원만을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아 얼핏 보면 가이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구분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관광업계 관계자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국내 여행사 가이드는 "과거 사대주의가 있기는 했지만, 옆에 있는 다른 가이드들이 객관적인 사실을 과도하게 중국 쪽으로 표현해 설명한다든지 하면 불쾌하다"며 "중국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해 주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관광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전이 치열하다 보니 가격을 낮추는 대신 쇼핑을 하도록 유도하는 일정을 넣게 된다"며 "중국동포들이 물건을 잘 판다는 인식이 있어 이들을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국경절 연휴에만 16만 명의 중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무자격 가이드들의 엉터리 설명 탓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굳히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