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자료사진)
그 어느 때보다 개헌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뒤 27년이 됐는데 그동안 수많은 개헌논의가 있어왔지만 지금처럼 활발하지는 못했다.
비록 중간에 입장을 번복하긴 했지만 여당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고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 원혜영 혁신위원장이 대표적이 개헌론자들이다.
새누리당에서는 김태호 최고위원이 '개헌의 불씨를 살리겠다며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고, 비주류 중진인 이재오 의원이 '개헌전도사'를 자처하면서 개헌특위를 발의하겠다고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CBS가 현역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설문에 응한 249명 중 231명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 개헌안 의결 정족수 2/3(200명)을 훌쩍 넘는 지지다.
그렇지만 개헌이 성사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이번에는 개헌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많지만 개헌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 "개헌 이번에는 정말 성사될까?"라는 주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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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 이번에는 개헌이 성사 될까?= 쉽지 않다고 본다. 국회의원 재적 2/3 이상이 압도적으로 개헌에 찬성했지만 개헌이 필요하다는 총론에 합의한 것이지 어떻게 개헌할 것인가 하는 각론에 찬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정치권은 백가쟁명식 논쟁을 벌일 것이고 합의에 이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헌이 쉽지 않다고 보는 네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개헌 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회생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국민안전과 공직사회 혁신 등 국가대혁신 과제도 한 시가 급한 상황"이라면서 "장기간 표류하던 국회가 정상화돼서 이제 민생법안과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며 개헌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개헌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힌 상황에서 여당이 이를 무시하고 개헌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언론인터뷰에서 "개헌하려면 우선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조율이 끝나야 한다. 그런데 서로 마음이 안 맞는데 개헌을 어떻게 할 것이냐"며 "분란을 일으킬 게 아니고 국민적 열망 등 개헌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하느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개헌논의가 정치권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점이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제9차 개헌이 이뤄졌다. 그 이후 1990년 3당 합당으로 내각제 개헌이 거론됐지만 불발됐고, 1997년 DJP연합도 내각제 개헌을 들고 나왔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료사진)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실시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명박 정부 3년차부터 이재오 의원이 '개헌전도사'를 자처하며 개헌론에 불을 지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이 모든 개헌논의는 정치권에서 시작된 이른바 위로부터의 개헌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강대 임지봉 교수는 언론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은 헌법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국민 다수가 원할 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국민들은 정부 형태에 큰 관심이 없다. 이번 개헌 논의는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게임"이라고 평가했다.
세 번째는 국민들의 호응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 개헌 논의를 아무리 활발히 하더라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국민의 여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개헌문제가 바로 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면 개헌의 필요성이 높게 나오긴 하지만 1987년 '호헌철폐'와 '직선제 개헌'을 주장하던 당시와는 국민여론이 너무나 다르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은 "저보고 헌법을 바꿔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못 봤다"고 말했다. 헌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국민적 요구가 분출되거나 국가가 위기상황이거나 하는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면서 "나는 개헌이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없어서 개헌하기가 어렵다"고 전망했다.
네 번째는 현실론으로 지금 국회의 정치력으로 헌법 개정안에 합의할 정도의 정치력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세월호 특별법 정국을 보면서 느낀 것이지만 지금의 국회는 국가현안을 해결 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세월호 특별법과 별도의 특검이 필요하다며 대국민담화를 통해 약속했다. 그렇지만 이 약속은 오로지 6.4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선거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했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10월말까지 타결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새누리당의 버티기로 인해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온 국민이 그렇게 슬퍼하고 분개하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세월호 특별법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권이 그렇게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헌법개정안에 합의할 수 있을까?
CBS가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개헌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249명 중 231명이 찬성했지만 개헌의 방향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복수응답을 포함해 권력구조에 대한 응답 256건 가운데 4년 중임제는 104건으로 39.2%였고 분권형 대통령제는 94건, 전체응답의 35.4%, 내각제가 33건이었다.
▶ 그렇다면 개헌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냐?= 지금의 상황에서 어렵다는 것이지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갖춰지면 개헌은 할 수 있을 것이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은 호헌을 선언했고 국민들은 체육관 선거에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직선제 개헌을 내걸고 거리로 나섰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6월 항쟁의 구심이었고 당시 6월 10일 전국적으로 열린 집회의 이름이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였다.
따라서 개헌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 국회가 헌법 개정에 대한 여론수렴과 각계의 여론을 청취해서 헌법 개정안에 합의를 해야 한다. 개정안에 합의를 해야 국회의원 재적의원 과반수로 개헌 발의를 하고 국회의원 재적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국회가 여·야를 떠나서 대승적 차원에서 헌법 개정안에 합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두 번째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개헌 발의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개헌에 적극 나선다면 개헌은 이미 절반이상 성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논의가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며 반대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여당에서 개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찬성을 끌어낼 수 있을까?
세 번째는 국민들이 개헌이 시급한 문제라는 걸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87년 체제의 타파'나 '제왕적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권력집중 5년 단임제의 폐단,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동시 실시의 필요성 등이 개헌 필요성을 거론하는 이유다.
그렇지만 국민들은 정치권의 탐욕과 무능 탓으로 보지 헌법 때문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도 보다는 사람 탓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개헌논의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개헌을 해서 국가운영을 어떻게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회는 갈수록 진영논리로 갈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합의가 쉽게 이뤄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쉽지 않은 문제인데… 그렇지만 개헌 논의자체를 막아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 그렇다. 개헌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헌법의 중요성과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전도사'로 불리는 이재오 의원은 "개헌을 오늘 당장 하자는 게 아니다. 공청회를 열어 국민의 여론을 들어야 하고, 선진국들의 개헌 사례도 모아야 한다"면서 "지금은 국회에서 그런 작업을 할 특위를 구성할 때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개헌 특위부터 구성해 놓고 절차를 밟아가자는 주장인 것이다.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으로 개헌 논의를 확산하자는 건 타당한 주장일 수도 있다.
개헌논의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학자들 언론인들과 개헌문제에 대해 대체로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가 적절하다는 얘기들이 많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언론기고문에서 개헌을 하기 전 '87년 체제의 극복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87년체제란 1987년 6월 항쟁으로 열린 민주화 시대의 사회체제를 말하는 것으로 "87년체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체제, 정당정치와 운동정치의 기묘한 공존, 강고한 진영 논리와 이와 연관된 이념갈등"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개헌의 문제제기가 국민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바로 이런 87년체제가 갖는 명암에 대한 성찰적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과 "개헌보다는 정부와 국회의 자기혁신을 포함한 87년체제의 극복이 먼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