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이질풀'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월-금>
이질풀
태풍 산바의 흔적을 치우기 위해 며칠 땀을 흘렸습니다. 쓰러진 나무들도 다시 일으켜 세워졌고 숲길을 막고 있던 나뭇가지도 치워졌습니다. 흙이 쓸려나가 돌들이 드러났던 탐방로도 메워졌습니다. 탐방객들도 다시 숲을 찾을 것입니다. 나무를 일으켜 세우다 보니까 물봉선, 방울꽃, 한라참나물 등 들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강한 비바람 속에서도 숲속의 들꽃들은 제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휩쓸어갈듯 한 기세로 달려들었던 태풍도 풀꽃들은 어찌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언뜻 연약해 보이지만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갈 줄 아는 지혜와 힘이 느껴집니다.
들꽃들 사이에는 이질풀도 보입니다. 꽃이 핀지는 꽤 되었을 텐데 왠일인지 그동안 그냥 지나쳐 버린 모양입니다. 이질풀은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약용식물로 유명합니다.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은 식물이 없겠지만 이질풀은 그 가운데서도 특출한 듯합니다. 꼭 약용이 아니더라도 이질풀의 아름다운 꽃은 시선을 잡기에 충분합니다. 이질풀 종류에는 선이질풀, 흰꽃이질풀, 둥근이질풀 등 10여종이 넘고 간혹 흰 꽃을 피우는 종류도 있지만 대부분 붉은색 계통의 꽃을 피우고 초가을의 부드러운 햇볕을 받고 있음인지 더욱 매혹적입니다.
이질풀은 쥐손이풀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전국의 들판이나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거나 기어가듯이 뻗고 식물체 전체에 털이 많습니다. 잎은 3~5개로 갈라지는데 동물의 발바닥처럼 생겼습니다. 꽃은 8월쯤이면 피기 시작해서 제주에서는 10월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잎겨드랑이에서 큰 꽃자루가 나오고 다시 갈라져 2개의 작은 꽃자루가 만들어지면서 그 끝에 꽃이 달립니다. 꽃잎의 뚜렷한 맥과 날렵한 꽃술은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질풀1
10월에 익는 열매도 독특한 모습입니다. 열매는 5개의 꼬투리로 갈라져 씨앗이 5개가 들어 있는 셈입니다. 하늘로 향해 곧게 서는 꼬투리는 새의 부리를 닮아 보이기도 하고 나란히 서있는 촛대를 닮기도 했습니다. 햇빛에 비친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꽃 마니아라고 하면 한번쯤은 닮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꼬투리에는 씨앗이 들어있지 않고 바로 아래 조그만 주머니가 있는데 그 곳에 들어있습니다. 열매가 익으면 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위로 말려 올라가다 용수철을 튕겨내듯 주머니 속의 씨앗을 멀리 날려 보냅니다.
이질풀의 학명이 Geranium thunbergii입니다. 속명 Geranium은 학이라는 뜻으로 열매가 새의 부리처럼 길다는 데서 유래했고 종소명 thunbergii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Thunberg를 기리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이름인 이질풀은 이질에 효과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쓰임새 때문에 이름이 만들어졌을 정도로 약용식물로 유명합니다. 생약명으로는 현초(玄草), 노관초(老菅草) 등으로 불리는데 갖가지 균을 죽일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며 열을 내리게 하는 작용도 한다고 합니다.
이질풀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잘 맞는다고 합니다. 이질 외에도 장염 치료에 효능이 있고 세균성 설사에도 그만이라 합니다. 또 중풍, 신경통을 예방하기도 하고 손발의 마비나 경련을 치료하는 데에도 쓴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5대 민간 영약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약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매운 음식을 먹지 않는 일본인들이 장이 몹시 약한 편이어서 이질이나 장염을 잘 앓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20여 년 전에는 이질풀을 일본으로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질풀에는 독성이 있어 별다른 처방 없이 직접 먹으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함부로 쓰면 안되겠습니다.
이질풀의 꽃말은 귀감입니다. 사람들에게 너무나 유용하여 귀감이 되는 풀이라는 뜻에서 붙여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꽃을 볼 때 외형이나 쓰임새도 중요하지만 꽃과의 교감이 더 중요합니다.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꽃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큼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 없을 듯합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무슨 일에서든지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여름까지는 단지 꽃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왔다면 오는 가을에는 꽃이 주는 느낌을 마음속에 담아보는 일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 대상이 이질풀이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