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때죽나무'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가를 통해 알아본다.월-금>
때죽나무
제주에도 겨울을 넘긴 꽃들이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새끼노루귀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제주의 서쪽 곶자왈에는 백서향이 서서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곶자왈은 백서향의 향기로 가득할 것입니다. 제일 먼저 꽃을 피우던 복수초는 어쩐 일인지 작년부터 새끼노루귀에 선두를 내줬습니다. 그러나 꽃대를 올린 것을 보면 머지않아 꽃잎을 활짝 열 것입니다. 이렇게 봄꽃들은 나뭇잎이 채 달리기 전에 일찍 꽃을 피웁니다. 그것은 나뭇잎을 달기 시작하면 햇빛을 가려 양분을 확보하고 꽃가루받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숲속의 봄꽃들이 끝나갈 무렵에는 뒤를 이어 나무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가 때죽나무일 것입니다. 때죽나무는 중부 이남의 저지대에서 자라는 낙엽성 나무로 높이는 대략 10~15m 정도 됩니다. 나무껍질은 어두운 갈색으로 매끈하고 잎은 타원형입니다. 꽃은 하얀색으로 피는데 제주에서는 4월이 끝나갈 무렵부터 6월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잎겨드랑이에서 2~5개씩 아래를 향해 촘촘히 달린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멈추게 하며 은은하게 퍼지는 꽃향기는 한층 봄내음 가득한 숲을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나무 아래로 밟힐 정도로 많이 떨어뜨린 꽃과 열매도 때죽나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입니다. 때죽나무의 이름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무껍질에 때가 많아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는 것도 있고 열매껍질에 에고사포닌이라는 마취성분이 있어 이를 빻아 물에 풀어 넣으면 물고기를 기절시켜 많이 잡을 수 있다 하여 '물고기를 떼로 죽이는 나무' 즉 때죽나무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때죽나무의 흰 꽃에서 종을 연상했는지 '눈종'이라는 의미로 'snowbell'이라 부릅니다. 제주도에서도 '종낭'이라 하는 것을 보면 때죽나무에서 받는 느낌은 같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학명은 Styrax japonica입니다. 속명 Styrax는 '편안한 향기'라는 뜻으로 학명에서도 때죽나무가 향기 좋은 나무임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때죽나무2
향기가 피어오르는 때죽나무 꽃에는 많은 벌들이 들락거립니다. 사람들은 재빨리 이것을 이용하여 은은한 향기가 있는 꿀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때죽나무는 예로부터 생활에 쓰임이 많았던 나무 가운데 하나입니다. 열매에 들어있는 에고사포닌이라는 성분은 기름때를 없애주기 때문에 세제가 없던 시절에는 찧어서 빨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열매에는 기름이 많아 쪽동백나무와 함께 동백기름을 대신했는데 여자들의 머릿기름이나 등잔불을 밝히는 원료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동학혁명 때는 무기가 부족하여 열매를 빻아 화약에 섞어 썼다는 이야기도 내려옵니다. 제주사람들은 때죽나무를 매우 깨끗하고 정갈한 나무로 생각했습니다. 예전 수도가 없을 때는 물이 부족하여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 놓은 것을 '지산물'이라 하고 나무를 이용하여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놓은 것을 '참받음물'이라 했습니다. 참받음물은 때죽나무 가지에 띠를 엮어 빗방울이 흘러내리도록 하여 받았는데 일주일만 보관해도 변질 되어버리는 샘물과는 달리 오랜 기간에도 썩지 않고 물맛이 더욱 좋아져 제사에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쪽동백나무라는 나무가 있습니다. 열매의 쓰임이 동백나무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아 이름에 '쪽'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쪽동백나무의 꽃이 때쭉나무와 비슷합니다. 나무껍질도 비슷하여 겨울철 나뭇잎이 떨어진 후에는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때죽나무는 꽃대에 몇 개의 꽃을 달고 있지만 쪽동백나무의 꽃대는 많은 꽃송이가 달려 길게 늘어뜨린 모습입니다. 그리고 때죽나무는 큰 줄기 옆으로 뿌리에서 올라온 작은 줄기가 많은 데 비해 쪽동백나무는 큰 줄기 하나뿐입니다. 잎도 때죽나무는 크기도 작고 타원형인데 비해 쪽동백나무는 둥글고 커다랗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120여종의 때죽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것이 추위와 공해에 가장 잘 견디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결과 외국에서는 한국산 때죽나무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심지어 개량되어 역수입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도 조경수로 종종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입니다. 때죽나무를 키우려면 봄에 새로 난 가지를 잘라서 꺾꽂이를 하거나 가을에 씨앗을 채취해서 뿌리면 됩니다. 키가 크고 햇볕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야 하고 부엽토를 섞어서 심으면 좋다고 합니다. 때죽나무의 꽃말은 '겸손'입니다, 때죽나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꽃향기와 장관을 이룬 꽃들로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만도 하지만 수줍은 듯, 겸손한 듯 꽃은 아래쪽으로만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꽃과 향기는 숲길을 걷는 사람들을 멈추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꼭 매혹적이고 화려한 꽃이라야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님을 때죽나무는 잘 보여줍니다. 이것이 겸손이 주는 아름다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