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서울 종로구 체신동에서 전세 9,000만 원짜리 다가구 주택에 사는 미혼여성 최모(39) 씨.
최 씨는 최근 전세계약 갱신을 앞두고 집주인이 3,000만 원을 올려줄 것을 요구하자 읍소 끝에 2,000만 원 인상으로 겨우 합의했다.
인근 시세는 이보다 훨씬 높고 그나마 물량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그로선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집주인을 피해 다니며 죄지은 듯 지내야 했던 기억에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6개월 안에 3,000만 원을 구해야 하는 거예요. 이미 전세자금 중에 절반은 대출인 상황에서. (궁여지책에) 1년 동안 불안하게 부동산업자 피해 다니면서, 집주인 전화 피하면서 살았죠."
최 씨는 그나마 2,000만 원을 추가대출 받기 위해 찾은 은행에서도 을의 비애감을 맛봐야 했다.
금리 인하로 대출은 어렵지 않았지만 은행은 대신에 적금 가입 등의 '꺾기'를 종용했다.
"세입자는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겠다, 갑을병정 중에 가장 밑에 있는 위치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상식적으로, 돈 없어서 대출받는 사람이 적금 들 여유가 있겠어요?"
4년 전 인근 반지하 월세방에 살던 때는 더 암울했다.
여름철 폭우로 침수가 되는 바람에 한동안 친구 집이나 찜질방 신세를 졌지만 집주인은 월세를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
계약만료 후 퇴거할 때 이를 따졌지만, 여자라고 만만히 봤는지 집주인은 한참 승강이 끝에야 '모욕적'으로 돈을 돌려줬다는 것이다.
"실제로 받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적어도 당신 이러면 안 된다는 것 보여주려고 했던 건데…근데 '적선하는 셈 치고 옜다 30만 원' 이런 식으로 나왔어요. 이렇게 비애감과 비굴함을 느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2년 사이에 4,986만 원 올랐다. 최 씨보다 고소득층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상승세는 최근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지난 2009년 초부터 시작돼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RELNEWS:right}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2009년 1월 72.1을 기록한 이후 거의 쉼 없이 올라 지난달에는 111.9에 달했다.
'전세난민', '미친 전셋값'이란 말은 이미 그때부터 나왔는데도 정부는 내내 뒷짐만 지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