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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장애인의 날에도… 835일째 광화문 농성하는 장애인들

인권/복지

    UN 장애인의 날에도… 835일째 광화문 농성하는 장애인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요구에 정부 대응은 지지부진

     

    UN이 정한 '세계장애인의 날'인 3일에도 한국의 장애단체들은 매서운 한파 속에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연대투쟁 선봉대 '차차차'가 시동을 걸었다.

    장애단체들이 모여 "'차'별을 걷어'차'는 부릉부릉 자동'차'"라는 구호를 내걸고 세계장애인의 날인 3일까지 전국순회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는 더 이상 어색한 목소리가 아니다.

    이미 2012년부터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지하보도에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225개 단체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농성을 벌여왔다.

    이들이 처음 천막을 차린 날이 2012년 8월 21일, 오늘로 무려 835일째 도심 한복판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과 차량 소음이 밤마다 머리를 울리고 제대로 된 난방기구 하나들이기 어려운 지하농성장에서만 세 번째 겨울을 맞는 셈이다.

    1년 가까이 농성에 참여했다는 유모(37) 씨는 "추운 겨울이 여름보다 더 힘들다"며 "농성이 언제쯤 끝날까, 우리도 기원하는데 정부에서 우리 목소리를 잘 듣고 이해하기만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 "부양의무제의 경우 우리 장애인만이 아닌 저소득층, 노인층 등에도 적용되는 문제"라며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해 싸우는 것이지, 내 몫만 더 챙기려는 속셈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무기력한 삶' 강요하는 부양의무제, 죽음을 부르는 장애등급제

    (자료사진)

     

    지난달 28일, 정신·지적장애인이 거주하는 전남 신안군의 H복지원에서 원장 고모(62) 씨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장애인에게 체벌을 가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11살 미성년자를 포함한 장애인을 각각 개와 함께 개집에 가두거나 쇠사슬로 묶어둔 채 생활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에도 서울 도봉구 인강원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10대 장애인의 엉덩이 관절을 발로 밟아 부러뜨리고, 샤워 타월로 장애인의 두 손을 묶고 몽둥이로 내려치는 등 상습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적발됐다.

    한 장애인 시설에서 14년 동안 생활했던 장희정(42) 씨도 "시설 교사가 두려워 말 한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하라는 대로 따라야 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결국 3년 전 장 씨는 자유를 찾아 시설을 벗어났지만, 시설 밖에서도 부양의무제 때문에 여전히 '홀로서기'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현행 부양의무제에 따르면 가족 중에 일정 수준 이상 소득·재산이 있을 경우 직계 가족에게 부양의무가 우선 지워진다.

    따라서 자신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빈곤층이라도 기초생활수급 지원 등 복지혜택을 받지 못한 채 평생 가족에게 생활을 의지해야 한다.

    1등급 뇌병변 장애인인 장 씨는 경제활동은 물론 일상생활도 쉽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 산다는 이유로 활동보조 서비스 등에 제한을 받는 식이다.

    장 씨는 "성인인만큼 독립하고 싶지만, 부모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가족들에게 부양의무를 맡겨 죽을 때까지 함께 살라고 떠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89년 도입된 장애등급제 역시 부양의무제와 함께 장애단체가 꼽는 '2대 장애 악법'이다.

    장애인이 자신의 장애 정도를 국가에 신고하면 이를 1~6급의 등급으로 매겨 각종 장애복지제도의 신청권 및 급여량이 차등 지급되는 제도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선진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장애단체들은 노인과 여성에게는 아무런 구분 없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유독 장애인에게만 차별의 낙인을 찍고 있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1, 2등급이 아니라는 핑계로 시급한 복지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4월 숨진 고 송국현(53) 씨의 죽음은 장애등급제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송 씨는 거동하기 어려운 중복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등급이 3급에 불과한 바람에 활동보조인을 구할 수 없어 화재가 일어난 집에 홀로 갇힌 채 숨을 거뒀다.

    특히 지난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장애등급 심사절차와 관리를 강화하는 바람에 당시 심사대상 중 3분의 1의 등급이 하락하면서 장애계의 강한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고 박진영(37) 씨가 장애등급외 판정을 받아 수급권 박탈 위기에 놓이자 스스로 가슴을 흉기로 찔러 숨졌다.

    당시 공개된 박 씨의 유서는 "돈 있는 자들은 의사에게 돈을 먹여 진료내역 청구서를 잘 받아 수급자가 되는가 하는 반면 돈 없는 사람은 약만 타고 검사도 못하니 수급권자에서 탈락되고 있습니다"라고 부르짖으며 장애등급제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 제도 폐지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폐지 수순 놓고 온도 차 뚜렷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지난 2월 일어난 송파 세 모녀 사건으로 부양의무제 관련 법 개정안들이 지난달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부양의무자가 중증장애인인 경우 등에 관해 부양의무 소득·재산 기준을 다소 완화할 뿐이어서 여전히 장애단체의 요구사항과는 거리가 멀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교육급여에 한해 부양 의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며 "다음 해 하반기에는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가족의 부양의무에 대한 국민 정서나 제도 발전을 위한 재정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며 "모든 급여에 대해 부양 의무제를 당장 폐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장애등급제의 경우 갈 길이 더 많이 남았다.

    앞서 지난 대선 각 후보들이 앞 다투어 제도 폐지를 약속했고, 박근혜 정부 역시 국정과제로 삼아 폐지하겠다고 홍보해 장밋빛 전망을 약속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정과제 추진 일정이 있어 2016년까지 추진하도록 계획해 진행하고 있다"며 "올해 초에야 연구용역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장애차별금지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부양 의무제를 포함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13년이 지났는데도 수급자는 150여만 명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이라며 "상식적으로 전체인구와 빈곤층이 늘어나는데 수급자 수만 변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장애등급 1, 2급 대상자와 달리 3급 이하는 연금도 활동지원제도도 받을 수 없다"며 "예산 아끼기에 급급한 정부는 복지 기준만 바꾸겠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기준을 치우고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이 받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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