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입찰 담합을 저지른 건설사는 최대 2년까지 공공입찰 참여가 제한된다. 그런데 CBS 취재결과, 규제완화와 사업자 부담 경감 등을 빌미로 정부가 담합 비리 건설사들의 입찰제한 조치를 일부 풀어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의견수렴도 없었다.
지난달 4일 전자관보에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이 공포됐다. 여러 내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시행령 76조의2 2항에 대한 단서규정을 삭제한다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계약법에서는 경쟁 입찰에서 2인 미만이 입찰해 유효 경쟁이 성립되지 않으면, 부정당업자라도 일정한 금액의 과징금을 내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개정 전 시행령은 이 경우에도 76조의2, 2항의 단서조항을 통해 담합 비리 건설사는 참여를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 단서조항이 삭제된 것이다. 게다가 부칙에서는 내년 1월 1일 이전에 발생한 위반 건도 소급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 11월 4일 공포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신구 조문 비교표. 단서조항을 삭제해 입찰담합을 벌인 부정당업자에게도 입찰참여의 길을 열었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이에따라 과거 입찰담합이 적발돼 제재를 받은 건설사들도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은 공공 입찰 건에 대해서는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개정작업을 주도한 기획재정부는 단서 조항이 삭제되더라도 혜택을 받는 건설사는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담당자는 “공공 입찰에서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고, 국방이나 방산 등 예외적인 분야에 한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그럴까. 관보에서는 정부 스스로 이번 시행령 개정작업이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여 사업자의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담합 비리로 입찰 제한을 받는 건설사는 60개에 달하고, 상위 30개사 중에서는 26개사가 제재를 받고 있다. {RELNEWS:right}
소위 1군 건설사들이 대거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황이라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는 뜻이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연합 국책감시팀 부장은 “최근에 연이어 굉장히 많은 입찰담합이 적발되고 있고, 앞으로 재벌 건설사들이 혜택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찬반 논란이 첨예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행령 개정작업 과정에서는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가 없었다.
앞서 지난 9월 24일, 해당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에서는 76조의2, 2항의 단서를 삭제하는 내용 자체가 담겨 있지 않았다.
입법예고는 물론이고, 이후 단서 삭제조항이 추가된 뒤 개정령을 공포하기 전에 관련 내용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하는 절차도 모두 무시됐다.
담합 비리를 근절할 책임이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마저 노대래 전 위원장이 "입찰참가제한이 과도한 처벌로 개선이 필요하다"며, 외려 시행령 개정을 거들었다.
입찰 담합은 시장경제를 중시한다면 반드시 근절해야할 불공정행위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인 자유경쟁을 어긴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칙을 강조하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는 박근혜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빌미로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을 어긴 건설사들에게까지 면죄부를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