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천 경정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박지만 EG회장에게 보고된 미행 보고서가 박관천 경정이 꾸며낸 얘기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짐에 따라 박 경정의 정보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이 보고서는 공식적으로 작성된 것은 아니지만, 박 경정이 평소 정보를 수집하고 다루는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경정은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을 미행자로 지목하고 그럴듯한 소설을 만들었다.
검찰은 미행 보고서뿐만 아니라 박관천 경정이 작성한 정윤회 씨와 십상시 모임 등의 동향 보고서도 모두 허위였다는 쪽으로 결론을 낸 상태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박관천 경정의 사법처리를 고심하던 검찰은 며칠 새 무려 세 개의 혐의를 추가해 박 경정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용서류 은닉, 그리고 무고까지 죄명이 붙였다. 여기에 근거 없이 정윤회 씨를 미행 지시자로 몬 부분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초반에는 박관천 경정에 대한 동정론도 없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동향 보고서가 진위 여부를 떠나 각종 세간의 풍문과 의혹을 모아 작성되는 점임을 감안할 때 박 경정의 정보 활동은 죄를 묻기 힘든 부분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각 분야의 수많은 IO(정보원)들이 각종 의혹에 약간의 살을 붙여 상부에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지만 회장에게 보고한 미행 보고서가 거의 지어낸 소설수준으로 밝혀지면서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가 맞다면 박 경정이 정보를 가공하는 방식은 단순히 '살'을 붙이는 수준을 넘어서 '날조'의 수준이다. 정윤회 씨와 박지만 회장과 일면식도 없고, 오토바이도 수년간 타지 않았던 경기도 남양주시의 유명 카페 사장 아들을 미행자로 지목한 것은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과감하다.
하지만 일개 경정급 경찰관이 이처럼 민감한 정보를 과감하게 날조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아무리 자신이 가진 정보력이 인사나 승진 등에 영향을 준다고 해도 없는 정보를 지어낸 이유가 무엇인지는 규명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비서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검찰도 이 부분을 의심하고 있다. 결국 직속 상사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역할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 대부분은 모두 정윤회 씨와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겨냥하고 있는데, 이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윗선'에서 박 경정의 정보를 적극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단, 박지만 EG회장은 정윤회 씨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권력 암투설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으며, 측근이었던 조응천 전 비서관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결국 조 전 비서관이 중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이번 검찰 수사에서 뻗어 나갈 수 있는 최대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의 죄를 묻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의 칼끝이 조 전 비서관을 향한다면 박 경정이 작성한 허위 문건에 '나도 속았다'는 주장을 펼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처음에는 박 경정을 옹호하던 조 전 비서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는 박 경정과 점차 거리를 두고 있는 분위기이다.
조 전 비서관이 박 경정이 가져온 다소 거친 정보들을 어떤 불순한 의도로 채택했는지, 순수하게 믿고 채택했는지는 수사상으로도 규명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조 전 비서관이 보고받은 정윤회 씨와 십상시 국정개입 문건 등은 박 경정의 정보력에 대한 평소 신뢰를 바탕으로 의심없이 채택됐을 가능성도 있다. 제보자가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라는 말을 듣고는 정보 출처에 더욱 신뢰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