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사진 = 이미지비트 제공)
담보 없이도 수출실적 등으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신용보증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수십억원대의 사기행각을 벌인 일당이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검사 노정환)는 유령업체를 설립하고 허위 수출서류를 이용해 금융기관에서 수십억원대의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로 유령업체 대표 신모(80)씨 등 4명을 구속기소하고 대출브로커 백모(40)씨 등 6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신씨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의류수출업체에 업체 명의를 빌려주고, 허위로 수출면장 등의 서류 6억 7천만원 상당을 만들어 한국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받아 농협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2억 3천만원을 대출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신씨 등이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사기대출을 벌인 금액은 각 5천~6천만원씩 총 24억3800만원에 달했다. 이들은 대출을 받고 나면 바로 폐업을 하거나 잠적했으며, 한두 차례 더 대출을 받고 폐업을 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브로커 백씨는 의류업을 한 적이 있어 의류수출 소상인들이 세금 회피를 위해 타인 명의로 수출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를 이용해 유령업체 대표들을 모집했으며, 10개 업체의 사기대출을 알선한 대가로 모두 65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명의를 빌려준 의류수출 소상인들은 주로 동대문, 남대문 상인들이었다.
검찰은 신씨 등이 담보가 부족해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수출업체에 담보가 없어도 일정 수출 실적만 있으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무역보험공사와 신용보증기금의 신용보증제도를 악용했다고 밝혔다.
특히 무역보험공사 등은 수출신고필증, 부가가치세 과세표준증명서 등 해당 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실질 심사 없이 대출을 보증해주고 있어 피해를 키웠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또 신용보증 대출의 경우 변제를 못하면 무역보험공사 등이 대신 변제를 해주는 '대위변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무역보험공사 등은 허술한 서류에도 엄격한 절차 없이 각 지점에서 대신 변제를 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사전에 예고를 하고 현장방문을 하는 바람에 이들의 범행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들 업체는 1~2개월에 걸쳐 사무실을 임대하고 브로커가 직원으로 행세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은행 직원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대상이 된 은행들은 우리은행, 기업은행, 농협,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이었다. 우리은행 한 지점에서 서류 미비를 이유로 대출을 해주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은행들은 5년여에 걸친 범행에 힘없이 노출됐다.
신씨 등이 사기대출을 받은 '공공기금'은 고스란히 부동산 투기 등 개인적인 용도로 소진됐다.
검찰은 무역보험공사와 신용보증기금 역시 수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기대출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접대 가능성도 있는 만큼 관련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공공기금 대출보증 심사의 문제점이 확인된 사례로 총 6700억원대 금융피해를 야기한 모뉴엘 사태와 닮았다"며 "부실대출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으므로 대출보증 심사제도의 보완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영장실질심사에 불응한 다른 유령업체 대표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받는 한편, 도피 중인 업자 1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수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