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자료사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47)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기자가 이런 편지 형식의 글을 쓴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누군가는 지적을 해야겠기에 망설이다 펜을 들었습니다.
듣고 보자 하니 수제 맥주집을 내고 고급술을 파는 주류백화점을 만들겠다면서요.
정용진 부회장께서는 지난해 11월 서울 반포에 수제 맥주 전문점인 '데블스도어'를 열었습니다.
그 지역의 맥주집을 찾곤 했던 젊은이들에겐 꿈의 맥주집이라는 입소문이 무성합니다.
길게는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을 정도로 성황이라고 합니다.
정 부회장께서 직접 진두지휘하셨으니까 성공신화를 써도 될 듯합니다.
신세계 임직원들에게 보란 듯이 자랑도 할 수 있고, 성공했다고 언론에 알릴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수제 맥주집은 15,6년 전 청운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 이사 등)이 독일 등 유럽 맥주의 참맛을 한국 맥주 애호가들에게 선보이겠다며 시작한 사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 조선호텔 등이 수제 맥주집을 여는 등 너도나도 수제 맥주집을 차렸죠.
그러니까 수제 맥주집은 중소상인들의 영역입니다.
그 분야에까지 손을 뻗쳐야 직성이 풀리시고 그래야만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밖에 없군요.
정 부회장께서 또 주류백화점업에 진출하시겠다고요?
다음달 12일 경기도 파주에 고급 주류백화점인 '와인앤모어' 1호점을 개장할 계획이라고 하죠.
2호점, 3호점을 계속 내신다고요. 그러시겠죠? 신세계의 수입, 유통망을 활용하면 무슨 소매업인들 못 하시겠습니까?
'와인앤모어'에는 와인과 관련한 모든 것을 판매하는 고급 주류백화점이라고 합니다.
와인 수입업자 중에는 대기업과 관련된 곳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와인 수입, 판매업도 중소상인들의 주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세계가 와인을 팔든, 발렌타인 30년을 팔든, 수백만원짜리 고급 양주를 팔든 시비를 걸고자하는 것이 아니고 고급 주류 백화점 매장을 새로 내는 게 과연 필요한지를 묻고 싶을 뿐입니다.
정 부회장님, 고급 와인을 팔고 맥주를 손수 제조해 팔면 큰 이익이 남습니까? 신세계의 연간 매출액을 1천 억 원 이상 올리는 사업인가요?
혹시 개인적 취향과 관련된 사업 아닌가요?
정 부회장께서는 와인 애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만 맛 좋은 와인을 마시기가 뭐시기(?)해 값 싸고 질 좋은 와인을 수입해 와인 애호가들에게 널리 마시도록 편의를 봐주시겠다면 나쁠 거야 없죠.
정 부회장께서 꼭 그런 선행 아닌 호의(?)를 갖지 않으셔도 되는 걸 왜, 굳이 그런 사업을 하려고 하시나요?
정 부회장께서 굴지의 신세계를 이끌고 계신 것은 누구의 덕일까요?
지나가는 국민에게 물어보십시오. 열 명 가운데 7,8명은 외할아버지인 고(故) 이병철 전 회장님이시라고 말할 것입니다.
고 정주영 회장님과 함께 고 이병철 회장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대표적인 기업인 두 분 중 한 분 아니겠습니까?
외할아버지인 고 이병철 회장님의 경영이념이 혹시 뭔지 아시나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님의 3대 경영이념이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입니다.
가치관 경영을 주로 얘기했고, 아들이자 외삼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가치관 경영을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정 부회장께서 이마트와 신세계 백화점도 부족해 와인 등 고급 주류 백화점을 내고 수제 맥주집을 오픈하는 것이 과연 고 이병철 회장님의 경영이념인 '사업보국', '합리추구'에 부합할까요?
고 이병철 전 회장님의 가치 경영과 맥을 같이할까요?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재벌들이 탱크 생산에서부터 중소상인들의 먹거리인 물장사, 술장사까지 다 해먹는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는 것을 모르고 계시지는 않겠죠?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유통법을 만든 취지를 모르시진 않을 것입니다.
벌써 지지난해가 됐네요. 정 부회장께서 국회에 불려나가 의원들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은 적도 있으시잖아요?
회장님이 수제 맥주집과 주류 백화점에서 번 1억 원은 큰 돈이 아니겠으나 길거리에서 치맥을 팔거나 와인 한두 잔을 파는 와인바들에겐 생사가 걸린 돈입니다.
한 명의 배가 불릴 때 수십 명, 아니 수백 명, 더 나아가 수천 명은 가게를 접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현실이 정 부회장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영업자 열 명 가운데 3년이 지나면 7,8명이 망하고 있습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건도 재벌가 3,4세들로 하여금 자숙하라는 국민적 경고를 울린 것이거든요.
수제 맥주집이나 와인 가게를 할 돈이 있으시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면서도 꼭 필요한 사업을 시도하시면 어떨까요?
특히 중국인 13억 5천만 명을 대상으로 한 사업 아이템이야말로 정용진 부회장님의 이름 석자를 만천하에 드높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도전이라면 모두가 '멋져부러요'라는 찬사를 보낼 텐데 말입니다.
외할아버지의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뭔지를 한번 곱씹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조선 중후기 시대 유명한 무역상 임상옥 선생 이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32세의 나이에 중국(청나라)과의 인삼무역권을 따내 조선 후기 최고의 거상이자 무역왕이 된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