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국무총리 (윤성호 기자)
이완구 국무총리 측이 전직 운전기사가 고(故) 성완종 전 회장의 독대와 관련한 결정적인 증언을 한 직후, 당사자와 부인에게 '사주 받았냐'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민간인인 전직 운전기사에 대한 이 총리 측의 대응이었다.
이완구 총리는 CBS 보도가 나간 지난 16일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보도 뒤에 운전기사와 전화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뒤로는 비서관이 당사자와 가족에게까지 전화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를 보낸 것이다.
CBS는 이 총리 측의 이같은 부적절한 대응을 직후에 알았지만, 본질이 호도될 것을 우려해 보도하지 않다가 당사자와의 상의 끝에 21일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 총리 측과 새누리당이 집주소를 수소문하는 것은 물론, 신상을 공개하고 여론전을 계속하는 등 신변을 위협하고 있어 이를 방어하는 차원이다.
이완구 의원실 5급 김모 비서관은 CBS 보도가 나간 직후인 16일 오전 7시쯤부터 약 3시간 동안 운전기사 A씨와 부인에게 수십 개의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을 보냈다.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와 카톡을 번갈아가며 남겼다.
김 비서관은 이날 아침 일찍 부인에게 카톡으로 1분 3초짜리 음성 파일을 보냈다. 이 녹취록은 김 비서관이 이완구 총리 측 지시를 받고 전날 새벽 A씨를 비롯해 직원들 6~7명에게 전화를 돌려 검찰 수사에 대비해 따놓은 것이었다.
김 비서관은 본인 몰래 따놓은 A씨와의 통화 녹취록을 근거로 "이것 말고 통화 녹음이 전부 있다",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부인은 A씨에게 큰 일이 벌어진 줄 알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침 일찍 일 나오면 오밤중에 집에 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어리둥절해 답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김 비서관은 "다른 사람들(독대 증언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지칭)은 별 문제 없다. A씨 B씨로 나오는데 형님은 운전기사로 나와서 확실하다"며 "형님 의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럴 이유가 뭐가 있겠냐. 누가 뒤에서 조정하는 건 아니냐"고 거듭 추궁했다.
이른 아침부터 놀란 부인은 불안에 떨며 멀리 지방에서 일하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같은 사실을 알렸다. A씨는 가족들의 신변이 걱정돼 서둘러 충남 집으로 향했다.
부인에게 카톡을 보낸 김 비서관은 A씨에게도 통화가 안되자 문자메시지와 카톡을 여러개 보냈다.
카톡으로는 "아침에 통화할 때는 기억이 없다고 하더니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된다", "형님 의사로 이렇게 한 건 아니지요"라며 물었다. 답문이 없자 문자메시지로 "형님 뜻이 아니지요? 누가 뒤에서 만드는 거지요?", "어제 통화할 때에도 못 봤고 기억없다 해놓고 참 안타깝다"는 등의 메시지를 연속으로 보냈다.
김 비서관은 "어제 통화한 내용 다 녹음 됐다. 형님 의사는 아니지만 누가 사주할 것 같다", "형님 실명이 나오는 얘기이다. 지금이라도 말이 틀리다면 정정해달라"고 거듭 압박했다.
{RELNEWS:right}김 비서관은 이날 오후 충남도청에서 이 총리와 성 전 회장과의 만남 자체가 없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 때 운전기사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녹취록을 들고 나왔고, 종편에 당사자의 허락없이 음성을 넘겨 공개했다. 김 비서관이 검찰 수사에 대비해 동선을 끼워넣으며 말맞추기를 시도한 그 녹취록이다.
이런 가운데 이완구 국무총리는 당일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전직 운전기사에게 궁금해서 전화를 해봤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의 질문에 "전화 안했다"고 답했다.
이 총리는 성 전 회장 관련 태안 군의회 부의장에게 십여차례 전화 건 것을 의식한 듯 "친분관계에 있어 전화해도 총리로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어서 오늘 아침에 제가 뉴스를 접했지만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은 운전기사 A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준 캡쳐 화면을 통해 재구성했고, 당사자에 확인작업을 거쳤다.
불과 몇 개월간 일했던 전직 운전기사와 가족들은 당시 기억나는 목격담을 알렸다는 이유로 이 총리 측의 압박과 여론전에 불안해하며 검찰 수사 결과를 초조히 지켜보고 있다.
A씨는 최근 취재기자와의 통화에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지검장)이 성 전 회장의 고속도로 하이패스 기록을 확보했다는 소식에 크게 안도했다. 그러다가도 '워낙 거물이시라 겁이 난다'며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