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윤병세 외교통상부 장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가 패장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얘기다.
윤 장관은 1일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에서 "미일관계의 진전과 관련해서 국내 일각에서는 한국이 소외되거나 주변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함께, 외교전략 부재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미관계는 현 정부 출범 이래 업그레이드를 통해 "역대 최상"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또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상호보완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제로섬' 시각에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했다.
외교를 모르는 사람들이야 아베 일본 총리가 미국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외교는 원래 그런 게 아니라고 점잖게 타이르는 투다.
하지만 윤 장관의 상황인식은 아무리 좋게 봐도 절반만 옳다.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여당 지도부조차 자신을 질타하는 것은 미·일 '신(新) 밀월' 자체를 막지 못한 때문이 아니다.
아베 신조 일본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7일 한 차량으로 링컨 메모리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제공)
미·일이 원래 그런 사이라는 것쯤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인 과거사 문제가 그처럼 아무렇게나 다뤄질 줄은 몰랐고, 언필칭 '동맹'이라는 미국이 그렇게 일본 편만 들 줄은 몰랐다.
아베는 심지어 "일본이 전후 한국과 중국의 성장을 위해 자본과 기술을 쏟아부었다"는 궤변으로 또다른 역사 왜곡을 했다.
사과하러 온 줄 알았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아픈 상처에 염장까지 지른 것이다.
국민들은 일이 그 지경이 되도록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있다.
그런데도 윤 장관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조차 없다.
그래서였을까? 아베 연설에 대한 전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은 15시간의 산고 끝에 나왔음에도 기껏 "매우 유감" 수준에 그쳤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일본 총리실)
다른 곳도 아닌 미국 의회에서 한 연설에 대해 뭐라 하기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개탄' 정도의 표현은 썼어야 했다.
더구나 아베는 대놓고 제3자(한국)에 대한 허위사실(한국을 도와줬다)을 유포했는데도 이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속만 끓이며 아직도 뭔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측은함마저 느껴진다.
차라리 윤 장관이 "사력을 다했지만 아직은 우리의 힘이 많이 부족했다"고 울분이라도 토했더라면 어땠을까?
정 많은 우리 국민들은 '약소국' 한국의 외교장관으로서 국제무대에서 겪은 설움을 함께 나누려 했을 것이다. 그리 하여 국가적 분발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윤 장관이 입으로 매를 번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월 말 재외공관장회의에선 그 유명한 '축복'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RELNEWS:right}
그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문제로 한창 시끄러운 가운데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니고,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해 황당하다는 반응을 낳았다.
윤 장관의 말이 틀렸다고만 볼 수는 없다. 전체 맥락에서 곱씹어볼 대목도 있다.
하지만 외교는 말로 하는 것이고, 같은 말이라도 달리 할 방도는 얼마든지 있다.
같은 자리에서 했던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에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 과연 외교적 언사인가?
실제 외교에선 제발 그러지 않기를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