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성완종 리스트’ 검찰 특별수사팀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새누리당 전 수석부대변인 김모씨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지난 7일 기각되자 이런 의문이 든다. 김씨가 경남기업 고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이 돈은 어디로 갔을까. 이 돈이 제3자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을 수사팀이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수사팀도, 김씨도, 김씨를 지목한 경남기업 전 부사장 한장섭씨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수사팀은 2억원의 행방을 모른 채 김씨를 구속하려 한 셈이다. 누구에게 전달했는지도 모르는 돈을 전달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지만 수사팀은 신경 쓰지 않았다.
2억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 방침이 확정된 이완구 전 총리가 성 전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돈이 3000만원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1억원이다. 혐의가 사실이라면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전 남긴 인터뷰와 메모를 돌이켜 볼 때 2억원의 최종 목적지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일 것이고, 공직자라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에 해당한다. 매우 무거운 혐의인데 수사팀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김씨의 신병부터 확보하려 했다.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수사팀은 제3자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라면 김씨가 개인적으로 돈을 착복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전달은 물론이고 2억원을 받았다는 혐의 자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혐의 입증의 책임은 수사팀에 있다. 관련 증거와 진술로 김씨의 혐의를 입증해야지 김씨가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수사팀은 여기서도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김씨를 지목한 한씨의 진술도 오락가락했다. 한씨의 진술은 수사팀이 김씨를 구속하려 한 주요 근거였다. 수사팀은 지난 4일 밤 김씨를 체포한 뒤 한씨와 대질신문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한씨는 김씨를 “본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2억원 대해서도 ”성 전회장이 김씨에게 줬다는 얘기는 비서들로부터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식으로 얼버무려 수사팀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한씨는 그 전에도 2억원의 전달 시점을 지난 2012년 11월이라고 했다가 같은해 3월이라고 바꾸는 등 진술에 일관성이 없었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말처럼 특신상태(형사소송법상 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황)가 아니었다.
수사팀은 한 술 더 떴다. 이를테면 수사팀은 지난 2012년 3월 돈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과 대전을 오가지 않았냐고 김씨를 추궁했다. 자택을 대전에 두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김씨에게 서울에 온 이유를 물은 것이다. 김씨는 늘 KTX를 이용해 서울과 대전을 왕래했다. 마치 자택이 서울에 있는 대전지검장에게 왜 주말마다 서울에 오느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금품 공여자가 숨진 사건의 특성을 고려해 “생각하지 못하는 온갖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리적 모순과 무리한 수사를 한꺼번에 돌파할 수 있는 파격적인 수사방법으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뜻일까.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법원은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와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김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한 마디로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는 뜻이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지난달 “수사기관에서 하는 수사는 사법작용이고, 수사와 재판은 특정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이다”라고 말했다. 공익의 대변자로서 범죄 수사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되 신중하고 또 신중해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진태 검찰총장의 표현에 따르면 “치료가 꼭 필요한 환부만을 정확히 도려내는,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같은 기준이 김씨에게 적용됐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