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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에 문화를 덧씌우니 '쓸모'가 보였다

울산

    '폐교'에 문화를 덧씌우니 '쓸모'가 보였다

    • 2015-06-09 19:38

    울산CBS '이은정의 보이는 라디오' 인터뷰 - ‘폐교, 문화로 열리다’의 저자 백현충 부산일보 기자

    -폐교에 ‘쓸모’ 부여한 사람들과 그 공간에 대한 에피소드 담아
    -폐교 활용한 경북 영천 ‘별별미술마을’·‘밀양연극촌’ 인상적
    -복합문화공간으로 인기…산골 오지의 폐교가 사람 모아
    -성공보다 실패 많아…콘텐츠 선정·운영에 신중 기해야
    -해당 지역 주민과의 유대감 형성이 성패 좌우
    -교육부·교육청 폐쇄적 정책이 폐교 운영 걸림돌

    ■ 방 송 : 울산CBS FM 100.3 (오후 5시 5분~5시 55분)
    ■ 방송일 : 2015년 6월 9일(화) 오후 5시 5분~5시 25분
    ■ 진 행 : 이은정 PD
    ■ 출 연 : 백현충 (부산일보 기자)

    - 울산CBS 홈페이지 '이은정의 보이는 라디오'에서 방송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폐교, 문화로 열리다'의 저자 백현충 부산일보 기자.

     

    ◇ 이은정> 학생 수가 줄어 학교 통폐합이 늘면서 전국적으로 폐교가 늘고 있습니다. 흉물로 방치되는 학교도 있고 폐교는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드는데요.

    이런 폐교들이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폐교는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학교보다 더 큰 학교가 돼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독점하는 공간이 아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활짝 열린 공간으로 태어난 문화로 태어난 폐교 이야기 함께 나눠볼 텐데요.

    ‘폐교, 문화로 열리다“의 저자 백현충 부산일보 기자 만나봅니다.

    이 책은 다시 피어나는 문화의 꽃을 발견한 저자가 그 희망의 꽃이 어떻게 피어났고 가꾸어지고 있는지를 기록한 대한민국의 폐교에 관한 작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입니다. 함께 나눠보죠. 백 기자님 안녕하세요.

    ◆ 백현충> 네, 안녕하세요.

    ◇ 이은정> ‘폐교, 문화로 열리다’는 어떤 책인가요?

    ◆ 백현충> 학생들이 다 떠나서 더 이상 운영할 수 없고, 그래서 문을 닫은 학교를 폐교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학교로서의 쓸모를 잃은’ 공간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쓸모없게 된 공간을 빌리거나 사들여 새로운 ‘쓸모’를 부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과 그 공간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입니다.

    ◇ 이은정> 어떤 내용이 담겼나요?

    ◆ 백현충> 책은 303쪽으로 요즘 단행본치고는 두껍습니다. 전면 컬러의 재생용지라서 더 두껍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만큼 소개된 폐교 문화공간은 40곳에 이릅니다.

    이들 폐교 문화공간을 8개 장으로 나눴는데, 그중에는 산골 폐교를 연극 공연장으로 꾸민 것도 있고, 시립미술관 수준의 갤러리로 만든 폐교도 있습니다.

    또 시각예술가들이 조성한 집단 창작촌도 있고, 개인 소장가들이 평생 수집한 탈이나 인형, 민속품, 해양생물 표본 등을 각각 전시한 폐교 박물관도 여럿 있습니다.

    ◇ 이은정> 가장 인상에 남는 폐교 문화공간은 무엇입니까?

    ◆ 백현충> 40곳이 모두 중요하고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화천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뛰다, 영천의 시안미술관, 제주의 김영갑갤러리두모악, 평창의 감자꽃스튜디오, 부산 가덕도의 록봉민속교육박물관 등은 특히 더 주목해야 할 곳입니다.

    예를 들어 경북 영천 시안미술관은 존재 자체로서 마을을 변화시키고, 그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역할을 했고, 강원도 평창 감자꽃스튜디오는 폐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예술가와 행정가의 수많은 질문에 유효한 정답을 제시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은정>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백현충> 경북 영천 가상리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가상리라는 행정 명칭보다 ‘별별미술마을’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정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받아 미술마을이 됐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이 마을에는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습니다. 마을도 예쁘지만, 그곳의 미술품을 구경하기 위해섭니다.

    하지만 이 마을이 그냥 주목받은 것이 아닙니다. 1999년 폐교된 화산초등학교 가상분교를 2004년 4월 개조해 문을 연 시안미술관이 도시 예술가들과 미술애호가, 여행자들을 불러들였고, 이를 계기로 언론과 행정이 주목하면서 점진적인 투자가 이뤄졌던 겁니다.

    밀양연극촌은 잘 아시다시피 문화 게릴라로 잘 알려진 이윤택 씨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연희단거리패의 삶터이자 연극 공연장입니다.

    이곳도 1999년 폐교된 월산초등학교를 개조했는데, 연극촌이 도시 관객을 불러들여 유명해지자 밀양시가 중앙정부 예산을 끌어올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연극촌 주변의 가옥과 산책로가 새롭게 정비되면서 더 많은 관객이 찾아오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습니다.

     

    ◇ 이은정> 프롤로그에 ‘폐교가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는 대목이 있던데, 무슨 뜻입니까?

    ◆ 백현충> 폐교 문화공간은 10여 년 전만해도 시각예술인의 창작공간으로 주로 활용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창작, 전시, 공연뿐 아니라 체험, 교육, 휴식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폐교 문화공간은 생활문화의 확산과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그동안 문화예술은 특정 계층의 향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는데, 폐교 문화공간이 하나둘 설립되면서 강원도 산골, 전라도 어촌마을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개념이 서서히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박물관이나 미술관, 심지어 공연장도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 있어야 된다는 것이 그동안의 오래된 고정관념이었는데, 산골 오지의 폐교 공연장이, 한적한 어촌의 폐교 박물관이 도시 사람들을 오히려 끌어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먼 거리와 교통 불편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 충남 당진의 아미미술관 박기호 관장은 “일종의 여유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도시에 있는 갤러리나 공연장에서 가질 수 없는 폐교 특유의 공간적 여유를 우선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시골에 있는 폐교는 공간 여유가 있고, 그러다 보니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생기는 것입니다. 아미미술관에서도 시내의 다른 미술관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간이 많습니다. 갤러리는 물론이고, 오픈 스튜디오, 지역 미술교사들을 위한 창작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공연장, 카페, 휴식공간, 심지어 운동장 하나까지도 볼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 이은정>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 대체로 성공합니까?

    ◆ 백현충> 그렇지 않습니다.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더 많습니다. 수많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폐교를 문화사업 성공의 발판으로 생각하고 도전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한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실패는 운영자뿐 아니라 마을과 주민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깁니다. 그런 만큼 콘텐츠 선정과 운영에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사례에 대한 연구 없이 시도하다 보니 무모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이은정> 폐교를 재활용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 백현충>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특히 더 폐교에 대해 일종의 환상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폐교가 버려진 시설이라며 누구나 쉽게 차지할 수 있다는 환상이고, 둘째는 그런 시설이니 비싸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입니다.

    셋째는 폐교를 사들이거나 임대하면 마치 자신의 왕국처럼 사유화할 수 있다는 환상입니다.

    그러나 폐교 구입은 물론이고 관리나 운영도 쉽지 않고, 사유화는 더더욱 힘듭니다. 그런 생각으로 시작된 폐교 재활용은 거의 다 실패했다는 것이 제 취재 결과입니다.

     

    ◇ 이은정> 폐교 문화공간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백현충> 폐교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인식은 그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마을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로 폐교를 재활용해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한 예술인이 한때 강원도 한 폐교를 빌려 연극촌으로 사용했는데, 주민과의 소통에 실패함으로써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그 장관은 폐교에 많은 투자를 했고, 좋은 콘텐츠의 공연도 올렸지만 정작 주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즉, 그를 비롯한 단원들이 거의 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공연이 열릴 때만 폐교를 찾았고, 폐교에서도 마을 사람들과의 소통보다는 도시 관객을 끌어 모으는 데에만 신경을 썼던 겁니다. 이른바 ‘정착보다 활용’에만 관심을 둔 것이 가장 큰 실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 이은정> 폐교 문화공간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요?

    ◆ 백현충> 많은 폐교 문화공간 운영자들이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의 폐쇄적인 폐교 운영을 문화공간 활성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고 있습니다.

    시설을 개조하는 것도 힘들고, 개조된 시설은 기부 채납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는 것이지요. 이 때문에 시설 개선을 포기하고 중도에 나가는 바람에 다시 황폐화된 폐교가 적지 않습니다.

    높은 임대료도 때때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폐교 관리자의 입장에서 임대료를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오히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좋은 콘텐츠를 가진 운영자를 선별해 유치함으로써 임대료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 이은정> 왜 하필 폐교 문화공간에 관심을 가졌나요?

    ◆ 백현충> 지금의 화두는 건설이 아니라 재생이라고 봅니다. 산업화 시대와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지요. 사실 폐교뿐 아니라 폐공장, 폐가옥, 폐사무실, 폐창고 등 폐기된 공간이 전국에 널려 있습니다.

    이런 공간은 대부분 ‘철거’라는 절차를 거쳐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하지만 이런 철거 방식은 자원 관리뿐 아니라 역사와 삶에 대한 기억과 같은 문화적 측면에서도 정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한 가지 용도가 소멸됐다고 다른 용도로 재활용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산업화 시대의 해묵은 논리이지요.

    이런 이유로 폐공간에, 특히 폐교 재활용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그 공간의 활용 방안에 주목했고, 그것이 건강한 지역문화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머리말에서도 썼지만, 공간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 이은정> 혹시 울산의 폐교 문화공간에 대해서도 설명해줄 수 있는지요?

    ◆ 백현충> 같은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울산에서는 1993년 문을 닫은 울주군 미호분교가 첫 폐교입니다. 이후 1999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21개 학교가 폐교됐습니다. 그중 8곳이 매각됐고, 7곳은 울산교육청 자체 활용, 5곳은 민간에 임대됐습니다. 나머지 2곳은 아직 활용계획이 잡히지 않았고요.

    문화공간으로 재활용된 것은 영상제작시설인 미호분교, 추억의 학교와 파충류 체험장으로 바뀐 북구 동해분교를 예시할 수 있습니다. 울산은 아직 폐교가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문화시설을 짓는 것 이상으로 폐교를 포함한 도시의 폐 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은정> 폐교 활용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 같은데?

    ◆ 백현충> 책이 나온 지 겨우 열흘 정도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책을 구해서 읽었다고 하면서 폐교 재활용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며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몇명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담당자도 있었는데, 주로 폐교 재활용 방법과 예산 지원 등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 이은정> 앞으로 계획은?

    ◆ 백현충> 폐교뿐 아니라 폐 공장, 폐가, 폐 관공서 등 폐 공간 전반으로 관심의 폭을 넓힐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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