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간 메르스로 심하게 상처를 입은 국민들은 한 천재소녀의 쾌거에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특목고를 다니고 있는 한 재미 한인 고등학생이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 두 곳에 '동시 입학'하게 됐다는 이 소식은 절망 속의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게 빠르게 확산되었고 여러 언론들에서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CBS에서는 이 소녀와 인터뷰까지도 발빠르게 진행했습니다. MIT에서도 이 소녀의 수학 논문을 극찬했고, 하버드와 스탠퍼드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하다가 2년 씩 다니도록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인터뷰의 내용은, 무능한 정부가 짓밟은 대한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 내 한인 코뮤니티에서 먼저 문제제기가 시작되었으며 사실확인을 하느라 속보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경향신문의 확인 보도를 통해 불이 붙었습니다.
아이의 부모들은 경향신문의 기사로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면서 법적 대응을 운운했고, 이에 더 많은 제보들이 쏟아졌습니다.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동급생이라고 주장하는 한 학생의 쓴 글이었는데요, 그는 사려 깊게 모두를 익명으로 표기하면서도 사건의 전말을 정확하게 짚어 주었습니다.
결국 최초 기사를 쓴 <미주 중앙일보=""> ㅈ객원기자는 지난 10일 오보를 인정했고, 이후 신문들과 방송들은 11일 오전에 사과문을 게재하거나 사과방송을 했습니다. CBS <박재홍의 뉴스쇼="">도 "청취자 여러분들께 혼돈을 드린 점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후속취재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 드리겠다"고 사과한 뒤,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하버드 한인학생회 회장과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아이의 아버지는 편지를 통해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하면서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 아이나 아이 부모만의 책임이겠습니까? 한국 사회는 무한 경쟁을 찬양하면서 초등학생들부터 순위를 따집니다. 반 순위를, 전교 순위를, 전국 순위를 따지고, 학교의 순위를 따지고, 부모 직장의 순위를 따지고, 순위로 나열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순위로 전환시키는 나라입니다.
이 와중에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부각됩니다. 과정의 충실도나 만족감에는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에 결과를 표시하는 숫자만 남습니다. 이 숫자는 채찍으로 돌변해서 다시 사회구성원들에게 태형을 가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불행해지는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책임은 엉뚱한 곳에 돌립니다. 대개는 약자들이 공공의 적이 됩니다. 심지어 편법이라도 썼다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매장시킵니다. 거짓말이라도 주목을 받고 싶던 이 소녀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을 수호하는 직업에 평생을 종사하면서도 편법으로 점철되어 있는 사람은 총리 자격이 있다고 청문보고서를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이런 뒤죽박죽 사회에서 참과 거짓의 기준은 단지 힘과 자본에 의해 결정되는 지극히 가변적인 가치가 되고 맙니다. 이 사회를 견디느라 몸부림치다 공적이 된 소녀가 너무도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기형적인 사회를 만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