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제공)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이후 잇따른 인사실패와 세월호 참사, 청와대 비선실세 논란, 성완종 리스트와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퇴, 그리고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일이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사과다운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일인데 거꾸로 사과를 받거나 사과를 하더라도 물 타기를 하거나 사과할 타이밍을 놓치면서 문제만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은 왜 사과를 두려워할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Why뉴스 전체듣기]▶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할까?
박근혜 대통령 (사진 = 청와대 제공)
= 사과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데 여기서 사과를 하거나 유감을 표명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사과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지만 대체적인 관측은 사과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청와대는 야당은 물론 여당내부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고 이를 종식시키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메르스는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에 사과보다는 수습이 우선"이라면서 "대통령이 사과를 한다면 아주 의미 있게 진심으로 후속 대책도 나와야 하고 인사와 시스템 개선 등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과보다는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슬쩍 비켜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 메르스 사태로 29명이 사망했는데 아직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거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서울 삼성병원 주차장에 메르스 관련 시설물들이 설치된 가운데 의료진이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성호기자)
= 메르스가 발병한지 오늘로 37일째, 확진환자가 180명이고 사망자가 29명에 이른다. 단순한 '중동 독감' 이라던 대통령의 말과 달리 엄청난 인명피해와 함께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여·야를 불문하고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모임인 아침소리의 간사를 맡고 있는 하태경 의원은 24일 언론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면서 "메르스 사태의 책임은 삼성이 2~3 정도라고 하면 정부 책임은 7~8 이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도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초기 실패부터 다시 되짚어보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해 우리 사회 모든 부분이 각자 철저히 반성문을 써내려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3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서 "국정의 무한책임을 지는 게 대통령이고 정부이기 때문에 국민한테 사과하는 거야 백번이든 천 번이든 그것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라고 말한데 이어서 24일에는 "(박 대통령이)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사과인들, 사죄인들 못 할 게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지난 22일 특별성명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 사과할 것은 하고 협력을 구할 것은 구하는 게 메르스 사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전병헌 최고위원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실상 임명장을 받자마자 책임 없는 총리도 사과했고, 삼성전자 부회장도, 삼성병원장도 사과를 했다"면서 "정부의 무능과 부실 관리로 국민에게 엄청난 불안과 피해를 끼쳤는데, 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 한마디 안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질타했다.
▶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하기는 할까?
지난해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발표를 시청하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공식 사과하고 해경 해체 등 관피아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방안 등을 발표했다. 윤성호기자
= 사과를 할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시기가 언제쯤일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참고로 세월호 참사 때는 34일 만에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를 했는데 메르스 사태는 벌써 37일이 지났지만 아직 진정세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사과를 하더라도 메르스가 진정세에 접어든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박 대통령의 사과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은 메르스 퇴치가 우선"이라며 비켜갔다.
청와대 관계자도 "메르스 사태 초기 대처 과정에서 정부가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메르스 사태에 대처하고 이를 종식시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상황이 종식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면서 "그 부분(사과)에 관해 제가 건의하는 것이 괜찮은 일인지 판단해 보겠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선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셔서 그렇게 하실 것으로 판단하실 것"이라고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컨트롤타워를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로 지목했고 황교안 총리도 메르스 컨트롤타워로 자처한 걸 보면 사과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 사과라는 건 타이밍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렇다. 사과는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과의 내용이 얼마나 진정성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사과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청와대나 정부의 애매한 태도와 달리 정치권에서는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또 사과는 사태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해결의 출발점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24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서 "사과도 타이밍이 있다"면서 "타이밍을 제가 볼 때는 (대통령 사과가) 이번 달 넘기면 너무 늦어서 해도 욕먹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정부비서관을 지낸 주광덕 전 의원은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같은) 안 좋은 일과 관련해서 국민들을 위무하면서 사과의 표현하는 게 타이밍의 예술인데 청와대를 떠나서 보니까 그 점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할 일에 사과를 받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청와대 제공)
= 그렇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사과해야할 일을 거꾸로 사과를 받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지난 17일 국립보건연구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 너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 대통령은 "투명하게 공개해서 빨리 알리고 (메르스가)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주기 바란다"고 질타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3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수행한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이 읽은 사과문은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2014년 6월 '문창극 사태' 때도 대통령이 사과 받는 일이 일어났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6월24일 사퇴하면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박 대통령을 도와 드리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저를 이 자리에 불러주신 이도 그분이시고 저를 거두어들일 수 있는 분도 그분"이라고 말했다. 국민보다 대통령을 향한 ‘사과’였습니다.
▶ 박 대통령은 왜 이렇게 사과에 인색한 거냐?= 여러 가지 이유로 분석하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자신이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친박계의 한 중진 정치인은 "대통령은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과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아래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로 본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중진 정치인은 "전제군주는 사과할 일이 없는 것 아닌가? 절대 권력이 사과할 일이 뭐가 있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원조 친박의 한 중견 정치인은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도왔던 정치인에 대해 일말의 고마움이나 미안함이나 부채의식이나 이런 게 없다"면서 "자신을 위해 정치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나 희생하고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종관계이고 소유관계인데 무슨 사과나 고마움 같은데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사과는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정상적인 정부라면 매일 아침 보고 받고 토론하고 의논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기본이 안 되고 있는데 뭘 기대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사과의 문제가 아니라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국민을 국정의 주체나 동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윤 센터장은 "국민을 주권자로 협력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면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필수불가결한 모습이지만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면 정책결정권자가 사과하고 책임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박 대통령이 사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는데?
= 그렇다. 정치권에서의 분석은 아니지만 두려움 때문에 사과를 주저한다는 전문의의 분석도 나온다.
신경 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 박사는 박 대통령이 사과를 주저하는 이유로 첫 번째는 실체 없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두려움이나 공포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나미 박사는 "박 대통령이 비명에 간 부모처럼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사회에서 밀려 날 수도 있다는 그런 근본적인 공포가 있을 것"이라면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언제든 나는 떠밀려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투명인간이 될 거라는 그런 두려움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