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교수의 투신·사망 사건은 몹시 당혹스럽다. 총장 선출방식을 둘러싼 내홍이 이런 안타까운 죽음까지 불러오다니. 핵심은 총장직선제가 아닌 듯하다. 고인의 유서에도 '민주주의가 잘 안 되고 있고 교수들이 총장을 직접 뽑는 것이 그 개선의 시작'이라 밝히고 있듯이 문제는 대학의 민주주의이고 대학 내부의 민주주의를 허용치 않는 사회구조의 문제이다.
교육부라는 행정권력은 재정지원을 내세워 '총장직선제를 뜯어내라' 압박하고 있다. 총장직선제는 교육공무원법에 입각해 해당 대학 구성원들이 합의해 선택한 방식이다. 간선제로 바꾸든 공모제를 하든 대학구성원들이 자치적으로 결정할 일을 당국이 돈을 빌미로 제재를 가한다는 건 법치국가에서 상식을 벗어난 행위이다.
한 때 대학마다 실시하던 직선제를 행정권력이 몰상식한 압박까지 가하며 뜯어내려는 게 행정사무 상의 이유에서 비롯된 걸까? 아니다. 분명 집권세력의 정치적 성격과 관련 되어 있다.
◇총장 직선제, 대학의 역사 1천년을 뒤져보자 대학의 기원은 수도원 학교라 볼 수 있다. 십자군 원정의 준비와 시행 과정에서 상공업과 도시가 발전하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도시로 교사와 학생들이 몰려들어 대학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교육공동체는 조직의 운영과 안전, 구성원의 복리를 위해 자치기구를 만들고 대표를 뽑아 당국으로부터 권한을 인정받아 독립된 대학법인을 구성한다. 권한을 넘겨주지 않고 지배하려는 중세교회와 정부, '스폰서'의 압력이야 있었겠지만 대표 선출 투표방식을 직접 규제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근대 대학의 시작인 볼로냐 대학부터 살펴보자. 로마가톨릭교회는 수도원 외부의 학교 설립과 커리큘럼, 감독 등을 성당참사회 간부인 학무관에게 맡긴다. 학무관이 교황의 윤허를 얻어 허락하면 대학이 된다. 이 때 대학은 학생들이 모여 허가를 받느냐, 교사로서 가르치는 교수요원들이 모여 허가를 받느냐에 따라 둘로 구분된다. 라틴어로 '모두' - 공동의 목적을 지닌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 여기서 '유니버시티 (university)'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교수나 학생의 길드(guild), 즉 동업조직을 의미한다.
볼로냐 대학은 11세기 후반에 학생들의 길드, 오늘날의 협동조합(cooperative)으로 시작된다. 학생이라지만 나이로는 어른들이다. 성직자, 교회실무자, 공무원 등이 많았다. 학생 길드는 대표를 선출해 당국과의 교섭에 나섰다. 도시 하숙집의 월세를 낮추는 복리문제를 비롯해 병역이나 복역의 면탈, 세금 면제, 대학의 치외법권, 학위 수여와 교사자격증 수여권리의 보장, 자유여행, 자치권 등이 학생과 교수들의 과제였다.
당국이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대학을 다른 도시로 옮겨버리는 집단행동도 벌였다. 학생조합이 운영의 주체이니만큼 '휴강은 학생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업시간을 철저히 지킬 것' 등 교수들을 감독했다. 교수들도 학생조합장에게 성실히 복무하겠다고 서약을 하고 휴가나 휴강 허가를 받고, 강의가 부진하면 벌금도 냈다. 다만 학위의 수여만큼은 학생이 아닌 교수의 고유권한이었고 학무관이 감독했다.
교수조합의 시작은 파리대학이다. 파리대학은 노트르담 성당학교의 명성에 이끌려 파리로 모여든 교사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파리의 학무관이 성당 부근 건물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도록 허가하면서 파리대학이 문을 열었다. 대학의 교수가 된 교사들은 적당한 월세방을 구해 학생들을 모아 강의를 해주고 수업료를 받았다.
학생들은 교수를 다루는 게 과제였지만 교수들은 학무관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자치권을 보장받는 게 과제였다. 대표적인 것이 학위의 수여권을 가져 오는 문제. 학무관과 교수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자 교수들이 단결권을 행사해 조합을 결성한 것이 교수길드가 된다. 13세기 초반의 일이다. 교수들은 조합을 결성하고 '프록터'(proctor)라는 관리자를 선출해 대표권을 부여한다. 신학부, 의학부, 법학부 등으로 나뉘어 대표를 뽑았으니 오늘의 단과대학장 격이고 전체 조합을 대표하는 총장 '렉터'(rector)를 다시 뽑았다.
이렇게 대학의 역사를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 뒤져도 대학 규제가 아닌 총장 선출방식에 대한 규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교수조합이 조합장 뽑는데 교회나 황제가 간섭하고 거부했다는 대목도 발견키 어렵다. 민주주의와 근대 교육의 발전 과정에서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은 넌센스이자 부끄러운 퇴행이다.
◇불통정권은 대학을 향한 폭압을 거둬라지금 유럽은 유럽통합의 동력과 완성을 위해 유렵의 대학을 하나로 묶어내려 하고 있다.1998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의 교육부 장관들이 모여 내놓은 <유럽 대학교육="" 구조의="" 조화를="" 위한="" 공동="" 성명="">, 소르본 선언이다.
소르본 선언의 결의를 구체화시키는 유럽연합 전체의 볼로냐 선언이 이어졌고, 국제적으로 단일한 대학졸업 시스템을 갖추는 걸 목표로 한 '볼로냐 프로세스'가 추진되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간의 학생 교환 프로그램인 '에라스뮈스 프로그램', 유럽통합 고등교육 시스템인 '유코르'(EUCOR) 등 하나의 나라를 향해 대학을 변혁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학별로는 전통의 틀을 깨고 미국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학 시스템을 도입하려 서두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과 위기극복이 교육의 힘과 열정으로 이뤄졌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우리만 그런 건 아니다. 중국, 대만, 일본, 싱가폴 등 20세기 아시아의 신흥강국들은 모두 인적자원과 교육으로 성공했다.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미국의 대학, 공적 역할에 충실하면서 변혁에 나선 유럽 대학, 재도약을 노리는 동아시아권 대학, 막대한 투자를 힘으로 한 중동의 대학…. 우리가 각 대륙의 대학발전에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뻔하다.
대학 교수사회가 자율권과 학문적 독립성을 잃은 오늘의 상황, 학내 민주주의에 실마리라도 찾고자 총장선출 방식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는 그래서 심각하다. 21세기 초반에 대학 민주주의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대학의 미래, 21세기 우리의 미래는 뻔하다. 그 불행이 정치권력과 교육을 지원할 교육당국의 폭압에서 비롯된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도대체 당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