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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전관예우와 연고주의 근절을 위해 한 달 전부터 실시한 재판부 재배당 제도에 대해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도 도입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재배당이 반복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는데다 오히려 판사를 편법적으로 바꾸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판부 재배당이란 판사의 고등학교 동문, 대학 동기, 사법연수원(로스쿨) 동기, 과거 같은 부서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변호사가 사건에 선임될 경우 판사가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하는 방침을 뜻한다.
서울중앙지법이 재판장 회의를 거쳐 처음으로 결의했으며, 형사합의부에 한해서만 이달부터 실시되고 있다. 시행 한 달 만에 무려 총 8건의 사건이 재배당되는 등 활발하게 이용되는 추세이다.
법원은 이같은 재배당이 활성화되면 전관예우, 연고주의를 근절해 사법부의 신뢰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지방변호사협회에서는 공식적으로 환영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선 재판 현장에서는 우려 섞인 시선이 감지된다. 사건 배당은 원칙적으로 '무작위'로 이뤄지면서 공정성을 확보하게 되는데, 재배당이 활성화되면 무작위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 근무하는 모 판사는 "사건이 '랜덤'으로 배당되는 것이 원칙인데 재판부가 사건을 다른 부에 넘길 수 있는 재량이 커지면 배당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특정 재판부를 피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연고가 있는 변호인을 선임해 재배당을 노리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모 판사는 "재판장 성향에 따라 심리가 까다롭거나 양형이 센 특정 재판부를 피하고 싶을 때 일부러 연고있는 변호인을 선임해서 사건 재배당을 유도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재배당이 한 차례에 그치지 않고 여러차례 반복돼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부작용의 하나로 지적된다.
실제로 김양 전 보훈처장의 경우 재배당 받은 재판부에 다시 연고가 있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논란이 일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해당 변호사의 선임을 포기했지만 이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광장의 고위 관계자에 전화를 걸어 변호인을 교체하라는 취지의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재재배당을 막으려다 법원 고위층이 일선 사건에 개입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는 "연고주의를 막자고 만들어진 제도인데 오히려 재판과 직접 관련없는 법원 고위층이 연고를 이용해 변호사 선임 문제까지 간섭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RELNEWS:right}출신 고교와 대학, 연수원 기수에 근무 경력까지 따져 피하는 것이 다소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모 부장판사는 "담당 재판장이 변호인들과 연고가 있는지 모르고 재판을 진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면서 "현행 재판예규로도 공정성 우려가 있을 때에는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는데 굳이 '동기는 배제한다'는 물리적인 기준을 세워서 '결의'의 형태로 강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재판장들이 자체적 판단에 따라 재배당을 하게 하는 것이지 연고가 있다고 무조건 재배당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며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전관예우와 연고주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큰 상황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