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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 70년 동안 경계인으로 살아온 원폭피해자들

사회 일반

    [행간] 70년 동안 경계인으로 살아온 원폭피해자들

     


    ■ 방송 :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김성완 (시사평론가)

    ◇ 박재홍> 김성완의 행간,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 나와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성완> 네, 안녕하세요.

    ◇ 박재홍> 오늘 행간 주제 들어보죠.

    ◆ 김성완> 지구상에 유일한 원자폭탄 피해국이 일본이라는 사실, 아마 다 아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본 다음으로 원폭피해자가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바로 한국입니다. 70년 동안 경계인으로 살아온 원폭피해자들, 그 행간을 좀 살펴볼까 합니다.

    ◇ 박재홍> 어제 일본 최고재판소가 판결을 내린 그 내용을 말씀하시는 거죠?

    ◆ 김성완> 네, 맞습니다. 우리의 대법원격인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아주 의미있는 판결을 내놨는데요. 일본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에게 의료비 전액을 지급하지 않는 건 부당하다, 이런 하급심의 판결을 최종 확정한 겁니다. 이에 따라서 소송을 냈던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비롯해서 한국인 원폭피해자 전원도 일본인과 동등한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그동안 한국 원폭피해자들은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왔거든요. 일본에 거주하는 원폭피해자는 의료비 지급 상한선이 없어서 후유증을 치료할 수가 있었는데요. 한국인 원폭피해자는 연간 30만엔, 그러니까 우리돈으로 따지면 약 300만원 정도에 한도가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는데, 이번 판결로 일본인과의 차별이 사라지게 됐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런데 이번 판결이 그냥 얻어진게 아니고 45년간 투쟁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 김성완> 이게 눈물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내용인데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싸우기 시작한 게 1970년대부터입니다. 일본은 이미 1957년 법률을 제정해서 일본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이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거든요. 한도가 없이 계속 피해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문제는 한국에 살던 피해자들인데요. 원폭 후유증에 시달리다 못한, 손진두 씨라는 분이,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일본으로 밀항을 했습니다. 6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불법입국자에게도 피폭자 건강수첩, 우리로 말하면 의료보험증 같은 건데, 이걸 줘야 한다, 이런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98년 일본에서 치료를 받던 곽기훈 씨라는 분이 한국에 와서도 피폭자 건강수첩 효력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이렇게 소송을 냈고요. 2002년도에 승소를 했는데. 6년 뒤인 2008년도부터 한국에서도 피폭자 건강수첩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 단계로 모든 차별이 없어지게 된 거죠.

    ◇ 박재홍> 앞서 우리나라에 일본 다음으로 원폭피해자가 많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신 건가요?

    ◆ 김성완> 일본 후생성 집계로는 올해 4월 말 기준으로 4280명의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집계가 됐고요. 한국 거주자는 약 3000명으로 추정이 됩니다.

    ◇ 박재홍> 많이 계시네요.

    ◆ 김성완> 네. 한국 원폭피해자 협회에 따르면 등록되어 있는 피해자가 2580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정말 원통한 것은요. 한국인 피해자의 90%가 이미 방사능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등졌다는 건데요. 한국인은 2차세계대전의 가장 큰 피해 국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원폭면에서도 일본 다음으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국가입니다. 아시다시피 이건 역사 얘기를 다 거슬러 올라가면 한도 끝도 없는 얘기가 되겠지만 1945년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가 되지 않습니까? 당시 70만명이 피해를 당했고 23만명이 사망했는데요. 한국인 사상자가 그 10%, 그러니까 약 7만명 정도가 됩니다. 4만명은 이미 숨졌고 3만명 정도가 부상을 입었는데, 그중 2만 3000명이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중 10명 중 9명이 이미 돌아가신 상태고. 지금 이제 2천 몇 백여 명 정도가 남은 상황이죠. 더 심각한 것은 원폭피해가 대물림이 되고 있다는 건데요. 원폭피해자 1, 2세뿐만 아니라 3세, 4세까지. 지금 증손자까지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게 피해자협회쪽의 얘기입니다. 2, 3만명 정도가 3, 4세가 있다고 하는데요. 암이나 뇌질환, 다운증후군, 괴사증 이런 것들로 지금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피해자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우리나라 원폭피해자들은 우리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이렇게 촉구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 김성완> 요며칠 사이에 ‘MBC 무한도전’이 일본 우토로 마을을 찾아가서 할머니 만났던 그런 장면들을 보시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았다, 부끄럽다.’ 이런 반응들을 많이 보이셨는데요. 그것과 비슷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우토로에 사시는 분들이 일종의 경계인, 한국인도 아닌 일본인도 아닌, 난민 같은 그런 생활을 해왔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한국인 원폭피해자 상황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거의 70여 년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 정부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을 그동안에 계속 외면해왔습니다. 일본에서도 외면당하고 우리 정부에서도 외면을 당해온 그런 상황인데요. 지금까지 원폭피해자 현황을 우리 정부 자체가 실태조사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정부 차원이 아닌 적십자사가 최소한의 의료비 지원을 하는 정도의 수준인데요. 원폭피해자들이 지원특별법을 제정해달라, 이렇게 계속 요구를 해왔는데. 실제로 또 법도 발의가 됐지만 보건복지위 공청회 정도만 지금 하고 본격적인 심의조차 되고 있지 못한 상황입니다.

    ◇ 박재홍> 아까 말씀하신 우토로를 방문했던 유재석씨, 그 방송에 악플을 다는 일본 누리꾼들이 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는데. 그런데 우리 정부는 왜 그렇게 법제화에 소극적인거죠?

    ◆ 김성완> 세 가지 정도 이유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통해서 이미 대일청구권이 소멸됐다, 이렇게 본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쪽에서 이미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을 다 이 안에 포함시켜서 했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마땅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배상을 하라 이렇게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는 거고요. 둘째로는 미국의 핵전략 때문입니다. 원폭피해자라고 하는 게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거 아니겠습니까? 미국 같은 경우에 2차세계대전 이후, 6. 25 이후에 일본에 있던 핵무기들을 대거 한반도에 배치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사라졌다, 다른 곳에 이동 배치했다고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원폭피해가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런 측면으로 볼 수 있고요. 세번째로는 원전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나옵니다. 원전과 원자폭탄은 사실 동전의 양면 같은 거거든요. 그러니까 원전도, 후쿠시마 원전 사례 보면 알 수 있듯이 나중에 가서 잘못되면 원자폭탄처럼 터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인데요. 원전을 많이 설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폭피해자 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정부가 부담스러워했다, 이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원전 반대 논리로 쓰일 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요. 여기까지 듣죠, 시사평론가 김성완 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성완>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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