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연고전에서 응원전을 펼치고 있는 두 학교 학생들. 사진=연세대 제공
2015년 현재 연세대와 고려대 재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모두 40%를 웃돈다. 연세대(신촌+송도 캠퍼스)는 42%(남: 9325명 여: 6797명), 고려대(안암캠퍼스)는 41%(남: 10145명 여: 6940명)에 이른다. 하지만 정기 연고전에서 여학생은 선수로 뛸 수 없고, 관중의 역할에만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재윤 연세대 스포츠사회학 연구실 연구원이 2014년 한국체육학회지에 투고한 논문 '연고전 문화의 재해석 Ⅱ: 여성 없는 연고전, 특권화된 스포츠'에 따르면, 연고전의 구성은 1965년부터 현재까지 5개 남성 스포츠(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럭비)만 존재함에 따라 여성은 선수로 참여할 수 없는 특징이 확인됐다.
연고전은 엘리트 스포츠 대항전과 동아리 스포츠 대항전으로 나뉜다. 이중 엘리트 스포츠 대항전은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남자 학생선수가 5개 종목(축구,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럭비)에서 기량을 겨룬다. 일반학생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든 동아리 스포츠 대항전 역시 종목을 기존 5개 남성 스포츠로 한정했다. 여학생은 선수로 뛸 기회가 구조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연세대와 고려대의 여성 라크로스 동아리는 2013년, 각 학교 측에 '연고전 동아리 스포츠 대항전에 시범경기 형식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지만 거부당했다.
연세대 여성 라크로스 동아리 회원들의 경기 전 모습. 사진=연세대 여성 라크로스 동아리 제공
연세대 여성 라크로스 동아리 이주연 회장은 "신생팀인 고려대 여성 라크로스 동아리의 선수수급 상황을 지켜보면서, 연고전 동아리 스포츠 대항전에서 시범경기를 갖는 방안을 재추진하고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정식경기를 뛰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여성 라크로스팀이 있는 대학은 연세대, 고려대, 경희대, 이화여대 4곳이다. 연세대는 대학리그에서 3년 연속 우승했다.
연세대의 경우 여성 팀스포츠 동아리는 라크로스 외에 농구와 축구가 있다. 그러나 남녀 경기 룰이 달라 남성이 여성을 가르치기 힘든 라크로스를 제외한 축구와 농구는 남학생이 코치를 맡고 있다. 남녀 구분 없이 가입할 수 있는 팀스포츠 동아리는 많지만 여학생은 매니저 역할에만 국한되고, 경기를 뛰어도 선발로 출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기존 팀스포츠 동아리에 소속된 남학생들의 반발과 여학생들의 관심·참여 부족으로 여성 팀스포츠 동아리를 만들거나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2010년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여성 농구 동아리를 결성했지만 적은 참여인원 탓에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다.
사회적으로 몸짱 열풍이 거센 가운데, 대학교 내 피트니스센터에도 근력운동에 열중하는 여학생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축구, 농구, 야구 등 팀스포츠에 참여하는 여학생의 비율은 여전히 미미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여학생은 팀스포츠에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과 중고등학교에서 여학생의 팀스포츠 참여경험 부재가 연고전의 여성 선수 배제를 가져온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좋은체육수업나눔연구회' 임성철(원종고 체육건강부 부장) 회장은 "저희 학교는 점심시간에 '학급 대항 학교스포츠클럽 축구리그'를 운영한다. 전반전은 여학생이 뛰고 후반전은 남학생이 뛰는데 여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거워한다. 여학생 체육에 대한 체육교사들의 그릇된 편견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기연고전에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연세대 제공
임성철 회장은 또 "남녀학생 모두 스포츠 참여 기회가 적다. 지금도 학교 체육수업 시수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정부의 교육과정 개편안은 특목고의 경우 체육수업 시수를 최소 10단위(10시간)에서 8단위(8시간)로, 중학교 학교스포츠클럽 시수를 136시간에서 102시간으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학교체육 활성화에 역행하는 정부의 안에 우려를 표시했다.
배재윤 연구원은 "여학생은 중학교 때부터 스포츠 활동에서 멀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은 조신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 탓에 여학생 스스로 스포츠 활동에서 나타나는 격렬한 움직임을 피한다"며 "특히 연고전 5개 종목의 신체적 움직임은 남성성이 강하기 때문에 여학생들이 더 꺼린다"고 설명했다.{RELNEWS:right}
이어 그는 "여학생들이 축구장이나 농구코트를 온전히 점유하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팀스포츠 참여경험은 여성들 사이에서 스포츠를 향유하는 문화가 자리잡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연고전에서 여학생이 선수로 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문 사학 연세대와 고려대의 정기전은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행사가 학교 행정기관 중심으로 매년 반복해서 기계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대부분이 '연고전에 여성 선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한다는 게 내부 구성원들의 지적이다.
그해 연고전 승패(승·패·무)를 결정하는 5개 종목의 엘리트 스포츠 대항전 결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여성 소외 문제에 관한 학생들의 무관심을 불렀다는 의견도 있다.
익명을 원한 연세대 졸업생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연고전이 두 대학의 라이벌 구도 때문에 학교 간 대리전 양상을 띤다"며 "이로 인해 일반학생은 지나치게 승패에 연연하고, 학생선수는 과도한 훈련과 심리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세대 재학생은 "여성 선수 배제, 학벌주의 조장, 획일적인 문화의 강제, 본교와 분교생 차별 등 연고전이 지닌 문제가 경기 결과에 묻힌다"고 말했다.
배재윤 연구원은 "특정 성에게 선수로 참여할 기회를 박탈하고, 관중이라는 제한된 역할만 부여하는 건 명백한 차별이다. 학교 측과 학생들이 마주앉아 연고전의 문제점과 개선점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정기적으로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