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집중호우 당시 피해 모습.(사진=기장군청 제공)
지난해 8월 집중호우로 인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부산 기장군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재해복구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건설 업체들이 무분별한 불법 하도급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명을 내세워 도급 계약을 따내고서는 곧장 불법 하도급 공사를 맡겨버리는 식인데, 공사에 투입돼야 할 정부 지원금이 원청업체들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8월 25일 쏟아진 집중호우로 644억 원 상당의 재산피해와 1천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기장군은 정부로부터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이에 정부와 부산시는 기장군에 4천924억 원 규모의 지원을 결정했고, 이 중 절반가량인 2천5백여억 원을 즉시 피해보상이나 복구에 사용하기로 했다.
정부 지원이 확정된 이후 기장군은 공모를 통해 피해 지역 복구공사를 담당할 148개 건설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공사 개시 이후 감시의 눈을 피해 적지 않은 나랏돈이 새어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복구공사에 참여한 일부 종합건설사들이 직접 공사를 한다고 계약을 맺은 뒤 신고를 하지 않은 채 불법 하도급을 맡긴 것이다.
건설산업기본법상 도급계약을 맺은 업체가 공사의 일부를 전문건설사에 맡길 경우 관할 관청에 하도급 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피해가 발생한 기장군 내 하천 제방 복구 공사를 맡은 A 종합건설사는 하도급 신고를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법이 정한 도급률(82%) 기준에도 못 미치는 저가에 공사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A업체로부터 하도급 공사를 받은 B업체는 자신들의 일부 마진을 떼어 낸 뒤 재차 불법 하청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A업체 관계자는 "신고를 하지 않고, 도급률 기준에 못미치는 가격에 하도급 공사를 맡긴 것이 귀책 사유라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도급 공사를 맡긴 업체가 재차 하청을 준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사에 참여하지 않은 A, B 업체가 해당 피해지역의 복구비로 지원된 예산의 30~40%를 고스란히 챙긴 것이다.
재난특별지역으로 선포된 기장군에서 수천 억 원 규모의 재해복구공사가 진행됐다.(위 공사현장은 해당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사진=기장군청 제공)
다른 공사현장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군청과 하천 복구공사 도급계약을 맺은 C업체 역시 직접 공사를 하기로 한 계약사항과 달리, 공사 전체를 다른 업체에 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법상 일부 예외조항을 제외하고 일괄 하도급은 금지되어 있다.
재해복구 공사현장에서는 이 같은 원청업체들을 '공사판 브로커'로 부르고 있었다.
공사에 참여한 한 지역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공사를 하는 동안 원청업체 사람들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며 "공사비의 일부를 챙기고 남에게 넘기는 것이 브로커와 다를 게 뭐가 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역 건설업자들에 따르면 이 같은 불법 하도급 공사는 재해복구 공사현장 곳곳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각 공사현장에 담당관을 배치하는 군청 측은 업체들이 자진해서 신고를 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는 말만 늘어놨다.
공사현장에 담당관으로 지정된 기장군청 관계자는 "업체들끼리 서로 입을 맞추면 가서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어쩔 수가 없다"며 "다시 한 번 점검을 하겠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기장군 지역에서 피해복구 공사가 진행된 곳은 무려 473곳. 지역민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지원된 국가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