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한글날이 전혀 기쁘지 않은 이들이 있다. 꿈에 그리던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A(51)씨.
외국인들에게 우리말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퇴근 후 시간을 쪼개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공무원 신분이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대학 내 어학당에서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10여 곳의 어학당에서 그를 거절했다. 한국어 강의 경력이 전무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학원에서는 자격증만 취득하면 쉽게 취업할 수 있다고 광고했다"며 "당장 관련 경력을 쌓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격증을 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건 모순"이라고 토로했다.
일제의 방해에도 꿋꿋이 지켜온 우리말과 글을 세계에 알리는 '한국어 전도사'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공부를 시작한 B(27·여)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낮에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대학 부속기관에서 주경야독한 끝에, 최근 한국어 교원 3급 자격고사 1차 시험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교원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현실을 알게 되면서 꿈을 포기하고 현재 직장을 계속 다니기로 결정했다.
B씨는 "자격증 취득자가 급증하면서 기관이나 사설학원 등에서 웬만하면 석사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등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며 "요즘엔 봉사활동을 하려고 해도 지원자가 넘쳐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 '온라인 수업?'…매회 수천 장씩 쏟아지는 교원 자격증
이처럼 대다수의 자격증 취득자들이 정작 일자리를 얻지 못해 울상을 짓고 있는 가운데, 교원 자격증은 매회 수천 장씩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9일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지난 8월을 기준으로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모두 1만 9247명.
연간 취득자 수는 2007년 639명에서 지난해 4,566명으로 7배 이상 폭증했다.
특히 2급 자격증의 경우, 학사 학위를 가진 지원자는 학점은행제 등을 통해 16과목의 수업만 이수하면 취득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에 따라 일선 학원 등에서 "100% 온라인수업으로 1년 안에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 국내외 관련 일자리 수요는 '정체'…오도 가도 못하는 취득자들
하지만 이들이 자격증을 활용해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한글과 한국어 보급을 총괄하는 세종학당의 경우, 올해 50여 명의 교원만을 추가로 해외로 파견했다.
국내 다문화센터나 사설학원, 대학 내 외국인 어학당의 경우도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결국 부푼 꿈을 안고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은 오도 가도 못한 처지에 놓이거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른 직업군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 국립국어원 "초기에 예상 못한 문제, 논의 중이다"
자격증을 발행하는 국립국어원 측도 이같은 문제를 인정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자격검정시험제도 시행 초기에는 반대로 교원이 상당히 부족했다"며 "2010년 이후 자격증 취득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사설업체 등에서 자격증 취득이 쉽다고 과장광고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를 제지할 수단이 없다"고 토로하며 "자격제도 정비에 대해 법령 개정 등에 대해 논의 중이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민현식 교수는 "학원 등에서 그런 식으로 과장광고를 하고 있다면 사기에 해당한다"며 "관계 기관에서 시정권고를 하고, 지원자들은 학원을 선택할 때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