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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자들, 아직도 '설거지는 여자 몫'이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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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남자들, 아직도 '설거지는 여자 몫'이라 생각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지난여름, 덕유산 자락의 M리조트에 갔을 때.

    휴가를 온 젊은 아빠들 가운데 십중팔구가 가슴에 아기띠를 매고 있다. 아기띠 속에는 옹알거리는 어린자식이 들어있고, 유치원에 다니는 큰애는 아빠의 목말을 타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의 든든한 몸에 붙어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들며 난리법석 떠는데도 젊은 아빠는 아무 말도 못하고 땀만 뻘뻘 흘린다. 그러다가 눈길이 젊은 엄마에게로 간다. 도대체 애들 엄마는 무얼 하는 걸까. 처녀 같은 아가씨가 아빠 곁을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간다.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엄마다. 햇빛에 얼굴이 그을릴까봐 양산을 펴든 채 유유자적 걷는 것을 보니 미간이 찌푸려진다. 남편을 부려 먹어도 유분수지!

    ◇ 이태 전 겨울, 일본 삿포로에 갔을 때.

    동행했던 여행객 가운데 50대 중년 부부가 있다. 둘 다 점잖은데다가 교양도 있어 보였고 금슬이 좋아보였다. 그날 저녁 식사는 해산물과 함께 대게를 먹을 수 있는 뷔페였다. 마침 4인석에 그들 부부와 동석하게 됐다. 그런데 남편 되는 분은 자리를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아내가 커다란 접시에 해산물과 대게를 가득 담아오면 먹기만 했다. 이튿날은 일본의 A맥주 공장을 견학 갔다. 그곳 시음장에서도 아내가 가져다주는 맥주를 받아 마시기만 했지, 손수 일어나 받아오는 법이 없다. 아직도 저렇게 살면서도 집에서 쫓겨나지 않은 간 큰 남자도 있구나. 부럽고 신기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오늘 아침 떠오른 생각 1

    그해 여름 아기띠를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가던 젊은 아빠가 생각났다. 자연스럽게 “요즘 젊은 아빠들은 50대 이후의 꼰대 가장들과는 달리, 집에 들어가서도 대부분 가사노동을 하겠구나”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밖에서도 그렇게 정성껏 아기를 돌보는 아빠가 집에 가서는 빨래며 청소며 밥 짓는 것까지 당연히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그해 겨울 일본 삿포로에서 만났던 50대 부부가 떠올랐다. “저 나이 부부라면 남편이 집안에서도 손 하나 까딱 않겠구나. 그렇지만 남성들의 권위주의가 맹위를 떨쳤던 세대도 이제 막을 내리고. 세상은 남편과 아내의 가사노동이 평등한 관계로 기울어 가고 있으니까” 하며 미소 지었다.

    ◇ 오늘 아침 떠오른 생각 2

    그런데 통계청이 발표한 가사노동에 대한 신문기사를 보는 순간 혼란스러워진다. 50대 이상 꼰대 남성들의 가부장적 권위가 사라지고 남여의 가사노동이 평등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이 극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조사 결과 한국의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아내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이 194분인데 반해 남편은 불과 40분이다. 아내가 남편보다 무려 154분이나 일을 더 많이 한다. 그렇다면 피서지에서는 머슴처럼 아이들을 돌보며 땀을 뻘뻘 쏟던 가사노동의 대가인 젊은 아빠가 집에 들어가는 순간 ‘맨스플레인’(mansplain)으로 돌변해 아내를 부려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온단 말인가. 아니면 통계청 조사에 응할 때 남자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이 싫어서 ‘나는 가사 일에는 손도 안댄다’는 거짓 답변을 했단 말인가. 원인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2015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남성들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사노동 참여율이 꼴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이 일을 어찌 해결해야 좋을까. 남편들이여. 눈앞에 일이 있으면 행동하라. 탈수기가 멜로디를 흘려보내면 아내 눈치 보지 말고 다가가 빨래를 꺼내 널어라. 방바닥에 먼지와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면 청소기를 돌리고, 음식물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 것이 보이거든 바람 쐴 겸 들고 나가서 버리고 오라. 그런 일에 굳이 아내를 의식할 필요가 무언가.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 앞에 다가오는 일들을 남편과 마찬가지로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가사노동을 ‘역할’로 분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성과 여성이 각자 맡기로 한 약속에 따라 이루어지는 가사노동은 가정공동체의 사랑과 믿음에 어딘지 부적합하다. 남편은 무엇을 하고 아내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해 놓는 것도 평등의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부부평등은 자발적인 동기유발과 행동이어야 하고 대가 없는 노동이야 한다. 집에 일거리가 생기면 그 시간 그 공간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 설거지는 남편 몫이기 때문에 식후 남편에게 급한 일이 생겼는데도 아내가 개수대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젠더(gender)의 평등한 가정공동체가 아니라 역할 분담에 의한 현상유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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