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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현 회장, 법원의 선처없이 사는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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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이재현 회장, 법원의 선처없이 사는 길은…

    1600억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53) CJ그룹 회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휠체어에 탄 채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 법의정신을 지키는 것일까? 또한 사법체계는 엄정해야 한다는 사법부의 판단은 언제나 정당한가?

    권력의 높낮이에 비례하지 않고, 돈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는 것은 법의 만민평등의 정신에 부합된다. 죄에 대한 처벌과 응징면에서 볼 땐 사법부의 죄형법정주의는 옳고 정당하다. 모든 대법원장들이, 검찰총장들이 취임식을 할 때마다 사법적 정의와 공정한 법집행을 강조한다.

    반면에 법은 개과천선을 위한 징벌이라는 의미도 크다. 법은 일체의 관용을 허락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가치를 지니는 게 아니라 때론 인간의 탈을 써야 한다는 갱생적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논리가 함께 상존한다면 교도소행만이 능사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덕이 있은 다음에라야 좋은 법을 행할 수 있는 것이다(정도전 삼봉집)", "너무 일직선으로 법을 고수하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 융통성이 없는 처사가 되어 도리어 백성을 해롭게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정약용, 목민심서)"는 말도 있고, 공법원리의 건설자인 몽테스키외는 <법의정신>이라는 책에서 "종교는 대체로 법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인간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 기독교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불교는 법 만능주의보다는 사랑과 은전만이 악의 세상을 교화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2013년 7월 1일 구속 수감 된 이후 30개월가량을 교도소와 병원을 전전했다. 지병인 만성신부전과 신장 이식 후유증, 근육이 위축되는 샤르코-마리투스(CMT)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근육 소실이 심각한 질병으로 극도로 쇠약한 상태라고 한다. 재판에 출석하는 모습으로서만 봐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의 호소가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CJ 측이 이재현 회장의 병세를 좀 과장했음을 감안하더라도 서울대병원 주치의 말까지 불신하지 않는다면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변 인사들은 "이재현 회장이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한다. 길어봤자 10년 안팎일 것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는 15일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받았지만 감옥이 아닌 서울대병원 암병동으로 직행했다. 그의 건강 상태를 감안한 재판부의 선처다. 기왕지사 배려하려면 좀더 과감하게 집행유예를 내렸다면 어땠을까? 법원이 여론의 눈치를 살핀 것일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의 울분을 감안해서일까? 돈 앞에서 당당했다는 법원의 자기만족을 위한 판결 같다. 물론 탈세와 배임, 횡령 등의 죄는 너무 위중하기에 법원을 탓할 수도 없고 탓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를 병원이나 감옥에 가둔다고 죄를 더 뉘우치고 징벌의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법 이전에 생명 존중의 정신은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져본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 1993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매출 20조원이 넘는 CJ그룹으로 키웠다. 제일제당이라는 한물 간 삼백산업을 문화 콘텐츠·음식·유통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영화산업을 부흥시켜 미국의 독점적 스크린 장악을 막은 것도, 한류붐을 일으킨 것도, 그만의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창출한 것도 이재현의 새로운 실험과 도전정신,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퇴임한 한 대기업 CEO는 "재벌가 3~4세들 가운데 이재현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CJ그룹이 커피점과 빵집, 음식점업에 손을 대면서 골목의 자영업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CJ로부터 좋지 않은 경험을 가진 한 영세업자는 "하늘로부터 벌을 받은 것"이라고까지 매몰차게 말했다.

    그럴지라도 이재현 회장은 재벌 3~4세들이 가지 않은 사업 영역을 개척하려고 노력했고 일정부분 성과를 일군 기업인이다. 그는 비정규직일망정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그가 영어의 생활에 들어갈 당시보다 취업문이 더 좁아졌다.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복지이자 선으로 인식되고 있는 시점이다. 우리는 10%가 넘는 청년실업 사태 앞에 서 있다. 법원이 "많은 고민 끝에 실형이 불가피했다"는 판결보다 '일자리 창출과 생명을 구한다'는 인본주의 정신에 대한 고민을 더 했다면 이재현 회장과 CJ 측은 감동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법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법원은 우리 자녀들의 일자리 문제를 고민할 이유가 없다. 죄만 보면 되는 곳이다.

    이제 남은 길은 다시 대법원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런다고 이 회장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도, 법원이 판결을 뒤집을지도 의문이다. 대법원은 법 적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뿐 형량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그럴 바엔 아예 정부의 사면권을 기대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기업인 사면은 절대 불가하다는 청와대의 입장이 최태원 SK 회장에 대한 사면 때 바뀌었다. 정부가 이재현 회장이 최 회장만큼 수형생활을 오래 한 것도 아니어서 '집행정지'라는 특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이재현 사면과 관련한 여론이 조성될지 불분명하다.

    CJ그룹이 회장 사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의 길 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액의 변호사비를 투입하는 소송전 대신에, CJ그룹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총동원체제를 가동하는 방법이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아니 국민이 가장 소망하는 기업의 할 일이다.

    CJ그룹은 내심 기대했던 집행유예가 무산되면서 모든 투자와 인수·합병이 물 건너갔다고 한탄한다. 수조원이 투입되는 신사업과 M&A를 총수만이 결정할 수 있는데 이 회장이 풀려나지 않는 바람에 포기하거나 중도하차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재벌들은 총수 사면 요구를 '우는 아이 젖 달라'는 식으로 한다. 낡고 울림이 없는 수법을 버리고, 오히려 총수 부재중에도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우리 회장님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는 능동적 자세 전환이 지금 CJ그룹엔 필요할 수 있다.

    내년 3.1절에 즈음한 사면이나 원포인트 사면을 위해 발상을 바꾸는 것이다. 한국 경제에 대한 기여와 이재현 회장 사면과 맞바꾸는 것. 정부·국민을 상대로 한 일종의 거래지만 기업으로서 시도해봄직한 착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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