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는 2015년 법조계에 일어났던 주요 사건과 쟁점들을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되돌아 본다. 첫번째 순서로 청와대에 의한 무리한 하명수사로 검찰력이 낭비되고 무죄 판결을 받아 비판이 일었던 사건들을 토대로 검찰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
① '하명'이라는 불명예 꼬리표, 檢에 치욕만 남겼다 (계속) |
◇ 가토 영웅 만들어준 검찰, 靑 눈치보는 기소로 망신 자초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지난 17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서울중앙지검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관해 인터넷 기사를 썼던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시지국장에 대해 기소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해 10월 8일.
'국경없는기자회(RSF)' 등 국제단체에서 불기소를 요구하는 등 언론의 자유 뿐 아니라 한일간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다는 우려가 일었지만 검찰은 결국 가토 전 지국장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그해 9월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대한 모욕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사이버명예훼손전담팀'이 꾸리고 네티즌을 구속기소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였다.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기소 결정도 이같은 분위기 속에 이뤄진 것이었다.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고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비판은 결국 1년여 뒤 현실로 닥쳤다. 올해 12월 1심 재판부가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과 정윤회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함께 있었던 것처럼 쓴 가토 전 지국장의 기사 내용은 허위이지만, 대통령이라는 공적지위를 고려하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기사에서 문제 삼은 날이 "국가적 관심 사안이었던 세월호 사고 당일이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허위라 해도 비방목적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1심 선고에 앞서 외교부는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됐다. 무죄 판결 후 가토 전 지국장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장시간 면담을 하는 그 나라의 영웅이 됐다. 검찰도 최근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항소를 스스로 포기하면서 무리한 기소였음을 자인했다.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기소와 무죄, 항소 포기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검찰에 치욕적인 내상을 남겼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결국 가토 전 지국장만 유명인을 만들어 준 것 아니냐. 너무 큰 검찰력의 낭비였던 것 같다.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평가했다.
◇ 괘심죄 걸린 조응천 전 비서관, 무리하게 기소하다 1심 무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사진=윤성호 기자/자료사진)
검찰이 대통령을 바라보는 수사를 하다 무죄가 선고된 경우는 이 뿐이 아니다. '정윤회씨 등 비선라인 국정개입 의혹 사건'에서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기소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게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해 말 세계일보에 의해 십상시 등 비선라인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이 터지자 검찰은 문건 내용에 관한 수사보다는 유출에 초점을 맞췄다.
박 대통령은 수사 중간에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이다", "찌라시에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며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내렸고, 검찰은 이를 충실히 따랐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법리 다툼 여지가 큰데도 불구하고 검찰은 '괘씸죄'에 걸린 조 전 비서관에게 이 법을 적용해 기소했지만 1심 결과는 역시 무죄였다.
1심 재판부는 문제가 됐던 문건에 대해 "직무 감찰을 위해 작성된 문건으로, 대통령기록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검찰은 고개를 떨궈야 했다.
◇ '성완종 리스트'의 시작과 끝은 靑의 무리한 개입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사진= 윤성호 기자/자료사진)
올해 상반기부터 법조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하명수사와 시작부터 끝까지 맞닿아있다.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취임 후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직후, 특수1부가 경남기업을 타깃으로 수사를 벌이자 성완종 전 회장은 구속영장실질심사 직전 뇌물 리스트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죽기 직전 인터뷰에서 성 전 회장은 자신이 수사 대상이 됐다는데 대해 억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검찰의 특수수사가 마치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비쳐지자 이같은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린 뒤에도 박 대통령은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4.29 재보궐 선거 직전 대국민메시지를 통해 노무현 정부 시절 성 전 회장의 사면 의혹을 파헤칠 것을 강조했다. 이에 검찰은 사면에 대한 수사를 보강해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소환조사하기도 했다.
민감한 시점에 대통령의 노골적인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자 검찰 내부에서도 "심하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검찰 수사 결과 리스트 8인 중 이완구 전 총리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만 기소하는데 그쳐 수사 성과에 대해 비판이 일었다.
◇ '하명'이라는 불명예 꼬리표, 檢 수사력 약화시킨다
현 정권과 검찰의 끈끈한 관계 때문인지, 검찰이 공을 들이며 진행한 굵직한 특수수사들에 항상 청와대의 하명수사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붙고 있다.
특히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 포스코그룹 수사를 비롯해 체육계 비리, 농협 및 KT&G 등에 대한 비리 수사도 모두 청와대와 연관돼 직간접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주요 수사에 "대통령이 00를 손보라고 했다더라"는 식의 꼬리표가 달리는 것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자신이 관심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 상황을 직접 챙기며 보고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내에 실세로 알려진 검찰 출신의 우병우 민정수석이 하명을 내리는 중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법조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설이다. '우 수석이 검찰에서 누구와 친한지'가 검찰 간부들 사이에 대화의 화제거리가 될 정도로 내부에서도 우 수석을 신경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