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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무도 찾지 않은 소녀'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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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아무도 찾지 않은 소녀'를 위한 기도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가정 폭력을 피해 가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온 여중생 이모 양은 아버지와 계모에게 매를 맞았다. 4시간 가까이 폭행을 당한 뒤 지쳐 잠들었는데 그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언 땅이 녹아내리던 3월 중순의 어느 봄날이었다.

    이양의 시신은 좁은 방으로 옮겨져 1년 가까이 숨겨진 채 방치됐다. 봄이 가자 폭염이 찾아왔고 이어 낙엽 지는 가을, 눈 내리는 겨울이 다가왔지만 소녀를 찾아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네 번의 계절이 흘러가는 동안 소녀의 살은 문드러지고 장기는 부패됐다. 13살 소녀의 어린 몸은 미라로 변했다.

    여중생을 죽음에 이르도록 때린 아버지는 독일 신학대에서 신약학박사 학위를 받은 성직자다. 귀국해서는 모교 신학대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쳤다. 여러 권의 책을 냈고 강의를 했다. 부천의 한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를 맡아 매주 교인들과 정기예배를 드렸다. 집 가까이 단골식당 주인은 “목사님은 팔에 성경책을 끼고 다녔다”면서 “부부가 항상 손을 꼭 붙잡고 다녀 사이가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고 말했다.

    미라가 된 여중생은 삼 남매 가운데 막내였다. 오빠(19)는 아버지가 재혼한 2009년 가출해 혼자 살고 있다. 언니(18)도 가출해 지인 집에 거주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갔다. 소녀는 함께 살게 된 계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계모의 여동생 집에 맡겨졌지만 그곳에서도 폭행을 당하다 가출했다. 지난해 3월 17일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교사가 이 양을 찾아 아버지에게 맡겼다. 소녀는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온 그날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딸을 찾는 전화가 오면 가출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쪽 방에서는 죽은 딸의 시신이 썩어가고 있는데도, 아버지는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했다.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하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서 ‘죄 짓지 말라’ ‘회개하라’는 설교를 했다!

    성경에는 자녀에 관한 구절이 많다. 에베소서 6장에는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구절이 나온다. 신명기 6장에는 부모가 자녀들을 가르칠 때는 ‘먼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현실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다. 부모들은 자식이 자기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고 소리치며 화를 낸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그치다가 때린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낸다. 목표를 정해 놓고 강요한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에서 생명을 만들어 세상으로 보내준 사람은 부모가 맞지만, 세상에 나온 자녀는 부모의 혈육인 동시에 독립된 인격체이고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남녀 관계 혹은 부부관계,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상대를 ‘소유’로 보느냐 ‘존재’로 보느냐의 차이점을 명쾌하게 분석한다. ‘소유’로 보는 순간 모든 불행이 시작되고 죄와 벌에 이르게 된다. 집에서는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폭력까지 휘두르는 나쁜 아버지가 밖에서는 온유하고 성실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천사 같은 남자라면 위험한 아버지일 확률이 높다. 딸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한 성직자이자 교수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남자’는 어린 딸을 자기 소유물로 안 것이다. 거룩하기는커녕 윤리도 없고 측은지심도 없는 ‘성직자의 탈을 쓴 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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