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정폭력과 학대에 희생된 아이들의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드러나지 않은 한편에는 희생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난 아이들이 있다. 대전CBS가 어렵게 찾은 이 아이들은 또 다른 생존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미성년자가 정상적으로 돈을 벌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주]
희생되지 않기 위해 집을 떠난 아이들은 사회에서 또 다른 생존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주희(가명·16·여)는 매일 밤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고 탬버린을 친다. 처음 보는 아저씨에게는 '23살'이라고 했다.
고작 16살인 주희는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을까.
주희가 처음부터 이 일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늘 술에 취해 주희를 때리던 아버지의 손에 어느 날 칼이 들려있었다. 집을 나왔다. '서빙 구함'이라고 적힌 글을 보고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 서빙을 구한다던 사장은 첫날 주희에게 계란찜과 된장찌개를 만들면서 서빙과 설거지까지 동시에 시키고는 느리다고 혼을 냈다.
2주를 버텼다. 사장은 석 달을 채우지 못했으니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주희는 사장이 한 말을 기억한다.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넘친다"고.
사장의 말대로 일할 사람이 넘쳤다. 청년부터 중장년층, 노년층까지 일자리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세상에서 10대 청소년인 주희에게까지 올 자리는 드물었다. 힘들게 찾은 다른 아르바이트는 '부모 동의서'를 요구했다. 주희에게는 동의를 해줄 부모가 없었다.
친구 집을 떠돌거나 지하상가,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밥은 하루에 한 끼를 먹거나 굶었다.
불법 노래방 도우미 일을 제안 받았을 때 주희는 "다행히 먹고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뭐든 해야 되는데 그렇다고 돈을 훔치긴 그랬거든요..."
탬버린을 치는 일은 매일 토해야 하고 저녁에 나가 아침에 들어오는 생활이지만 나쁘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래도 돈은 꼬박꼬박 잘 주거든요."
현아(가명·16·여)는 파인애플을 팔았다. 식당과 주점마다 들어가서 손님들에게 파인애플을 맛보라고 하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호객행위를 했다. 가게에서는 40개를 팔아오라고 했다. 하루 8시간을 일했는데 40개를 파는 날에만 10만원을 받았다. 팔지 못하면 교통비만 줬다.
택배 상하차 일을 하던 상우(가명·17)는 트럭에서 떨어지면서 어깨를 크게 다쳤다. 하지만 치료비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정식 직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들이 미성년자인데 성인이라 속이고 서류를 내요. 본사에서 성인치 월급을 주면 몇십만원 떼먹고 저희한테는 최저임금보다 낮게 주는 거예요. 불만을 제기하면 '너 아니어도 쓸 애들 많다'며 하지 말라고 하고..."
상우는 "알바 구하는 게 힘들고 다른 데 가도 어차피 똑같으니까 그냥 참고 일했다"며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못 견뎌 집을 나온 찬빈(가명·17)은 '폰팔이'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휴대폰을 파는 일인 줄 알았던 찬빈은 곧 그것이 휴대폰을 '훔쳐 파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돌아서는 찬빈에게 "당장 생활이 어렵다며"라는 말이 꽂혔다.
찜질방에서 훔친 아이폰을 20만원에 팔았다. 며칠을 꼬박 일해도 벌기 힘든 돈. 찬빈은 유혹에 빠졌지만 지금은 후회한다. "제가 힘들다는 걸 알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거예요."
담담한 듯했던 주희도 "탬버린을 치다보면 '내가 왜 여기서 탬버린을 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엄마와 나이가 같은 다른 도우미를 보면 나도 그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게 될까봐 무서워진다"며 자신이 생각했던 삶이 아니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택배 일을 하다 트럭에서 떨어져 크게 다쳐도 치료비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아이들은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체념한 듯 말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상우는 사회에 나오면 사람들이 상우의 상황을 안타까워해주고, 보호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항의해줄 부모님이, 집이 없다는 사실을... 이용하더라고요. 사회가."
가정에서의 학대와 방임에서 탈출한 아이들이 맞닥뜨린 사회의 민낯.
이곳에서 많은 아이들의 홀로서기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