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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퇴근길, 갑자기 당신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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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퇴근길, 갑자기 당신도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메탄올 산재 사고로 본 파견노동 ①] 실명 위기 파견직, 그들의 이야기

    불과 2달만에 4명이 잇달아 시력을 잃고, 뇌손상까지 입었다. 이들은 모두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20대 파견노동자.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빼앗은 범인은 비단 메탄올만일까. CBS는 '메탄올 산업재해'를 중심으로 3차례에 걸쳐 생명까지 위협받는 파견직-하청업체의 현장을 조망하려 한다. [편집자 주]

    "아까 전부터 이상하게 앞이 잘 안보여!"

    지난 1월 16일. 12시간 밤샘 야근을 마친 뒤였다. 퇴근 무렵 A(28. 여)씨는 같은 팀 동갑내기 B(28)씨에게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원청인 삼성전자에서 주문 물량이 쏟아졌고, 지난 4개월 동안 주야 맞교대에 수시 잔업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한동안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 이미 전날에 병원도 다녀온 뒤였다. 공장 가득 배어있는 알콜 냄새가 수상쩍었다.

    하지만 일단 밤샘 야근으로 쏟아지는 잠부터 채워야 했다. 자고 나면 나아질 줄 알았던 눈은 더 보이지 않았다. 의식까지 흐려졌다. 놀란 A씨의 남편은 A씨를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A씨는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올해 초 인천-부천 일대 공단에서 4명의 중환자가 발생한 연쇄 메틸알코올(메탄올) 중독 산업재해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순간이다.

    메탄올 산재 노동자들이 일하던 한 공장. 늘어선 CNC 기계와 알루미늄 재료 사이로 메탄올이 담긴 하얀 말통이 눈에 띈다.

     

    ◇ 파견노동자 쓰러져도 '아무도 몰랐다'… 병원비 걱정에 치료 시기 놓치기도

    A씨가 결근했지만 회사에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파견직이었기 때문이다. 언제고 들어왔다 빠지는 파견직. 회사는 그저 '다른 업체에 일하러 갔으려니' 짐작할 뿐이었다.

    A씨가 쓰러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번엔 B씨가 부천 성모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그 또한 급성 메탄올 중독. 역시 실명 위기에 놓였다. 불과 며칠 전,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A씨의 말을 옆에서 들었던 바로 그였다.

    이들이 파견직이 아닌 정규직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노무사는 "만약 정규직처럼 A씨의 결근 이유를 회사가 즉각 확인하고, 관련 사실을 직원들에게 공지했다고 생각해보라"며 "아마 B씨는 급성 메탄올 쇼크 증세가 일어날 때까지 일하지 않고, 병원부터 찾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막을 수 있었던 메탄올 산재는 B씨의 사례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12월 30일, 역시 밤샘 근무를 마치고 새벽 6시에 퇴근하려던 C(24)씨는 회사 화장실로 뛰어갔다.

    수차례 구토하고도 모자라 집에 도착해서도 속을 게워낸 후 C씨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병원에 갈까 고민하던 C씨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아닌 병원비 걱정. 중국 국적으로 일하러 온 C씨는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진료비가 많이 나올까 겁이 나 병원에 가지 못했다.

    C씨가 파견돼 일하던 회사는 4대 보험금을 납품업체에 꼬박꼬박 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실제로는 산재보험 등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1년 이상 장기치료 필요한데 당장 생계는 막막

    현재 A씨와 B씨는 각자의 집에서, C씨는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다. 최근 산재 사실이 드러난 D(27, 여)씨는 아직 부천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이들은 모두 시신경이 손실돼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아 시각장애 1급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퇴원은 했지만, ‘시력 상실’이라는 현실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일부 피해자 가족들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몇 번이나 다시 진단을 받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회복은 쉽지 않다. C씨를 진료한 아주대병원 민영기 응급의학과 교수는 "증기 형태의 메탄올 흡입 사례는 매우 드물어 단정지어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최소 6개월에서 1년 가량 추적 치료가 필요한데, 신경계는 재생·회복이 쉽지 않아 무척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하지만,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통상 산재로 노동력을 잃은 경우 요양기간 동안 임금의 70%는 근로복지공단에서 휴업급여로 지급된다. 그러나 이들 파견직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이다. 휴업급여가 충분할리 없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우선 4명 중 3명은 산재로 인정됐으니 이들은 병원비 등 경제적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함께 있는 가족도 당장 생계 걱정이 앞선다. 시력이 손상돼 식사조차 혼자 하기 힘든 이들을 옆에서 장기간 간호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박 노무사는 "이번 사례는 그나마 의료계와 노동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이례적으로 산재로 빠르게 인정된 것"이라며, "직업성 질병임을 노동자 측이 직접 증명해야 산재로 인정받는데, 보통 작업사업장과 직접 관계를 맺지 못한 파견직 노동자는 관련 서류를 준비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광주에서는 형광등 제조업체에서 80여명이 수은중독 피해를 입었지만, 이 가운데 겨우 12명만이 산재로 인정받았을 정도로 산재 인정은 어렵다.

    ◇ 파견 확대되면...“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아예 산재 신청은커녕 그동안 메탄올 산재가 얼마나 더 있었는지, 정부 당국조차 제대로 조사가 힘든 형편이다. 대다수 공장에서 파견직 노동자를 사용하는 특성상, 누가 얼마나 일을 했는지 정확한 데이터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당초 5개 사업장 노동자 185명을 건강진단하고, CNC 기계를 사용하는 전국 3700여개 사업장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단 대상을 보수적으로 좁혀놓은 계획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물량이 크게 늘고 난방을 이유로 환기를 중단했을 것으로 보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근무 노동자로 진단대상을 좁혔다"며 "해당 사업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일일이 다 찾아낼 수는 없어 몸에 이상이 있는 노동자가 직접 근로상담센터로 찾아오면 상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박 노무사는 "해당 업체와 거래한 인력파견업체를 조사해 파견된 노동자를 추적·검진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려면 할 수 있는데도 노동부가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정부와 새누리당은 파견법 개정안이 포함된 소위 ‘노동개혁법안’을 통해, 55세 이상 고령층의 파견 노동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주조, 금형, 용접 등 6개 뿌리산업에도 파견이 합법화된다.

    메탄올 산재로 실명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파견직이 더 확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다. 파견직들의 노동환경은 후진국 수준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기사는 내일 이어집니다.)

     



    *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02-469-3976)는 파견알바, 전자제품 제조 하청 노동자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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