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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이세돌(33) 9단-구글 알파고(AlphaGo) 세기의 대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바둑 세계챔피언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 대국이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대결을 두고 인간의 승리, 이세돌 9단의 '완승'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계가 인간을 벌써부터 이기는 건 곤란하지 않냐"는 우려와 바람이 담겨있기도 하죠.
그러나 이미 승자는 사실상 정해졌습니다. 승자는 이세돌도, 알파고도 아닙니다. 바로 '구글'입니다. 아니, 이미 "승리했다"고 봐도 됩니다. 대국이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죠.
알파고는 2014년 1월 4억 달러(약 4332억원)에 구글에 인수된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기사 프로그램입니다. 신경과학 기반 인공지능 기술 회사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데미스 하사비스 CEO가 알파고를 개발했습니다.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딥마인드의 인수 뒤, 구글 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 현재 구글의 인공지능 사업 전반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글 창립 이전부터 수십 년에 걸쳐 이뤄졌던 인공지능 연구는 이른바 딥마인드의 '딥러닝'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구글 품에 안겼죠. 즉 '알파고'라는 기계를 만들어, 현재 인공지능 분야의 큰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바로 '구글'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구글의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합이 '알파고'인 셈입니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구글 지주회사) 회장이 8일 오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알파고 대국 개회 기자간담회에 깜짝 등장해 "이번 대국의 결과와 상관없이 승자는 인류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잘 따지고 보면 조금은 섬뜩합니다.
이세돌-알파고의 대국은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 아닌, 인간과 인간의 창조물의 승부여서 결국 '인간 대 인간'이 맞붙는다는 의밉니다. 그런데, 인간의 창조물은 결국 구글의 창조물입니다.
'알파고의 아버지' 하사비스는 "알파고는 모든 준비가 다 돼 있다"며 이번 대국에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알파고는 사실 이번 대국에서 '져도 본전'입니다. 크게 잃을 게 없습니다. 이미 프로 2단의 유럽 바둑챔피언 판후이를 5대 0으로 가볍게 제압한 기록도 있고, 지금까지의 대국에서 504승 1패의 전적을 자랑합니다. 무엇보다 세계 바둑챔피언에 '기계'가 대항한 그 자체가 엄청난 도전입니다.
이세돌 9단은 기자간담회에서 "진다고 해서 바둑 고유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김진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도 "알파고가 바둑의 깊이나 맛을 알고 바둑을 두는 것은 아니다. 알파고는 단순히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좋은 수를 계산할 뿐이다. 바둑의 멋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며 인간의 패배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하는 바둑의 가치와 이를 받아들이는 전 세계 '사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세돌 9단 본인은 "괜찮다"고 할지언정, 대국을 지켜본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할 수 있습니다. SF영화에서나 본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생각보다 상당히 빨리 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곧 도래할 기계 시대의 중심에 '구글'이 있습니다. 구글은 지금도, 조금의 쉼없이 전 세계 인터넷, 스마트폰 사용자들로부터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알파고가 지난해 10월부터 쉬지 않고, 인간이라면 약 1000년이 필요한 분량을, 최고 수준의 프로기사들 기보를 토대로 학습했듯이 말입니다.
알파고가 쉬지도, 자지도 않고 수를 익혔듯, 구글도 쉬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빅데이터를 만들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편히 쓰는 구글 맵, 검색, 구글 번역, 사진 분류 등 구글의 각종 서비스는 모두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여기다 '강화학습'이라는 새로운 기술까지 개발했습니다. 인간처럼 학습할 수 있는 기계를 인간이, 아니 '구글'이 독보적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죠. 이번 5번의 대국을 통해 알파고는 세계 챔피언의 수를 읽고 외우고 또 스스로 학습해 나갈 테죠.
대회 상금으로 구글은 100만 달러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대국 발표 때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 쏟아지는 세계적인 관심과 매스컴의 보도만 따져도 그 이상의 홍보 효과만으로 알파고는 승리했습니다. 스마트폰 출시 초기에 스마트폰 하면 '애플', 혹은 '스티브 잡스'를 떠올렸듯, 인공지능 하면 누구나 '알파고' 혹은 '구글'을 떠올릴 것입니다.
구글이 알파고라고 바둑 프로그램 이름을 지은 것도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를 알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죠. 후발주자는 아무리 뛰어나도, 구글 알파고의 아성을 뛰어넘기에는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입니다.
"불가능할 거로 생각했던 일이 가능해졌고 세계 최고의 바둑 챔피언에게 도전장을 내밀게 됐다. 인류를 위해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 기술을 지켜나가면 인간이 더욱 똑똑해지고 궁극적으로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슈미트 회장은 말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 인류에게 좋은 세상일까요, 구글에게 좋은 세상일까요. 세기의 대결을 앞둔 지금, 빅 브라더의 도래를 눈앞에 둔 건 아닐까 의문이 들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