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인간을 들었다 놨다"했던 엄청난 한 주였다.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5대국은 한 편의 '이세돌 드라마'였다.
"5-0"으로 이기겠다고 자신했던 이 9단은 1국에서 지고서, "알파고는 완벽했다"면서도 "이제 시작"이라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2국에서는 알파고에 감탄했다. "할 말이 없을 정도다. 내용상 완패"라고 고개를 또 한 번 떨궜다. 이 9단은 패를 동원해가며 전투적 싸웠던 3국에서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우승이 알파고에게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세돌 9단이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5국을 마친 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에게 사인한 바둑판을 선물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황진환기자
그는 "압박감을 이기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다, 인간의 패배가 아니라 이세돌의 패배"라며 자신을 탓했다. 그러면서도 이 9단은 인간만의 '집념'을 보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을 증명하듯, 승패는 이미 결정 났는데도 그는 "알파고에게 약점이 있을 것"이라며 "남은 대국도 지켜봐 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부담감을 떨친 만큼 4국에서는 알파고 약점 공략에 성공했다. 그의 집요함은 알파고의 어이없는 실수를 유발케 했고, 마침내 빛나는 첫 승리를 따냈다. 그제야 얼굴에 환한 미소를 되찾은 이 9단은 "어떤 승리와도 못 바꿀 값진 승리"라면서 "마지막 5국은 '흑'으로 알파고를 이겨보고 싶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5국, 마지막만은 꼭 오로지 계산만으로 이겨보겠다는 불굴의 투지를 발휘했지만, 암산왕 혼자서 지치지도 않는 1202대의 계산기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알파고는 일단 사람이 아니고, 두는 스타일도 너무나도 생소했다. 환경부터 너무나도 달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역시 승부사였다. 이세돌 9단은 5번의 대국을 모두 마치고서야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한없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져서 아쉬운 것도 있겠지만, 더이상 알파고와 겨뤄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대국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 보였다.
이 9단은 15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마지막 5국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초반에 유리한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져서 많이 아쉽다. 부족함이 다시 한 번 드러난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집중하고 끝없이 집중하는 알파고에, 다시 붙어도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든다"면서 "바둑 실력보다는 심리적인 부분, 집중력 부분은 인간이 따라올 수 없다"며 알파고의 '무심(無心)'을 높이 평가했다.
다만, 이번 대국을 통해 "바둑에 대한 이해보다는 인간의 창의력이라든지 바둑 격언에(기존 바둑 관념에) 의문이 들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알파고 수법들을 보며 '과연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다 맞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앞으로 조금 더 연구해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세돌 9단이 15일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와의 제5국에 앞서 딸 혜림양과 함께 하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제공) 윤창원기자
이 9단은 많은 아쉬움을 내비치면서도 "이번 대국은 원 없이 즐겼다"며 소감을 밝혔다. 그는 "바둑은 물론 즐기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둑을 즐기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번 대국만은 마음껏, 원 없이 즐겼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정보 비공개로 인한 '불공정 논란'과 승패에 대한 '음모론'도 이 9단은 승부사답게 일축했다. 그는 "일단 기본적으로 알파고가 상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인간이 충분히 아직은 해 볼 수 있는 수준이고, (그럼에도 져서) 그런 점에서 좀 아쉽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알파고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는 이 9단에게 "창의적인 천재성과 대국 내내 보여줬던 (모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면서 "(이 9단이)얼마나 뛰어난 기사인지를 직접 볼 수 있어서 기쁘다"고 존경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이번 대국을 통해 알파고가 발전해야 할 부분을 많이 파악했다"며 "향후 성과를 모두가 알 수 있게 공개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직 인공지능 기술은 초기 단계밖에 오지 못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인공지능은 하나의 도구고, 또 인간이 훨씬 많은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앞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을 불식시켰다.
실제 구글은 딥마인드를 인수하면서 자체 윤리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사비스는 "인공지능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이 돼야 한다고 강하게 믿고 있다"면서 "AI 관련 알고리즘을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발할지에 대해 학계를 비롯해 다른 AI 업체와 함께 논의하면서 과학계와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