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의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는 Y씨(여, 27). Y씨는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온 이후 1년에 한번씩 이사를 했다.
운 좋게 기숙사가에 머물 때도 있었지만, 상당 기간을 쉐어하우스나 친척집을 전전했다.
Y씨는 "높은 주거비용 때문에 내 집 마련은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다. 이제 집은 그냥 빌려 쓰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조금 좁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도 좋으니 정부가 깨끗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을 많이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벼랑 끝 청년 '주거 난민'Y씨처럼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이곳 저곳을 떠돌야만 하는 '주거 난민' 청년들의 현실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서울시가 청년 주거문제와 관련해 지난해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단체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서울에서 주거빈곤(주택법에 규정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사는 상태)에 처한 청년은 2010년 기준으로 52만여 명에 이른다.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 꼴(22.9%) 꼴인 셈이다.
최근 주택 임대시장의 불안정으로 인해 마땅한 자금도, 신용도 없는 청년들은 더 열악한 주거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권도 이를 모를 리는 없다.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선거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각당의 공약이 서로 비슷하거나 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공약의 재탕인 경우가 많아서 청년 주거 문제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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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여전히 많아각 정당의 청년 주거 공약의 핵심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다. 새누리당은 빈집을 활용해 1~2인 청년가구에 특화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한편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을 위한 저렴한 행복주택을 2017년까지 14만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국민연금을 활용한 공공임대주택 중 10%를 청년에게 공급하겠다고 제시했다. 또한 청년용 '쉐어하우스' 임대주택을 5만호 공급하고, 신혼부부용 스마트주택을 매년 5만호 이상 공급하겠다는 정책도 내놨다. 국민의당도 국민연금을 통한 청년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원외 정당인 노동당과 녹색당도 공공임대주택 30만호를 청년에게 제공하거나, 지역균형 별로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처럼 각 정당이 경쟁적으로 임대주택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단순히 공급을 늘리겠다는 주장이어서 열악한 청년 주거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최은영 연구위원은 "공공임대주택 확대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지만 실천이 따르지 않고 있다"며 "또한 중장기 대책만 가지고는 지금의 청년주거 문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보금자리 기숙사 확대, 대학생 공공주택지원 같은 정책이 쏟아졌지만 제대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 주거비 완화를 위한 정책도다만 청년 주거문제의 특수성이나 실질적인 문제를 고려한 공약들이 정의당 등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정의당은 청년주거공약으로 공공임대주택 대신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탈출과 인간다운 주거'를 모토로 ▲월세 공정임대료 실현 ▲월세 보증금 안심대출 ▲표준임대차계약서 사용 의무화 같은 주거비 완화 중심의 정책을 내놨다.
이에 대해 정의당 중앙청년학생위원회 김경용 위원장은 "기존의 청년주거 정책은 진입과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주거와 관련해 청년들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해보자는 취지에서 정책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노동당의 경우도 전월세 전환율을 기준금리의 2.5배 또는 연리 6% 중 낮은 값으로 하는 주거비 완화 정책을 내놨고, 녹색당도 주택바우처 지원 같은 사회초년생, 청년세대를 위한 통합적 주거지원 정책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 주거 정책의 '약한 고리', 청년 주거
(사진=CBS노컷뉴스 총선기자단 홍석훈 기자)
하지만 각 정당이 내놓은 주거 공약 중 청년 주거 문제는 여전히 주변적인 위치에 놓여있다. 지난 16일 주거권네트워크가 개최한 '20대 총선 정당 서민주거정책 평가 토론회'에서 각 정당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청년 주거 문제는 대부분 기존 주거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거나 선언적인 차원에서 다뤄진 경우가 많았다.
민달팽이유니온 임경지 위원장은 "정당 별로 좋은 주거 정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청년들에게 실효성이 있기 위해서는 임대시장의 시세 중심이 아닌 실제 청년들의 지불능력 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년 주거 공약이 실현되지 못한 19대 총선은 청년들에게 '배신의 정치'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