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당 의원총회의 사퇴 권고 추인에 따라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힌 유승민 의원의 운명은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후보등록 일정을 감안하면 경선은 이미 물 건너갔고, 고사(枯死)되지 않으려면 유 의원은 23일 밤 12시 직전까지는 탈당을 결행해야 한다. 후보등록이 시작됐는데도 공천을 받지 못하면 탈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권의 내부 기류상 단수공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탈당 후 무소속 출마의 수순이 유력하다.
'3.15 공천'에서 친유승민계와 비박 후보들을 대거 죽이는 이른바 공천 학살이 단행된 지 일주일 여 동안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와 진박 핵심은 공조직을 통한 정상적인 공천작업 대신 시간끌기와 정치적 압력으로 자진사퇴를 유도하는 변칙을 택했다. 마치 심판이 심판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선수에게 패배를 인정하라는 사상 초유의 비상식이 정치판을 어지럽혔다.
그러나 이번 '유승민 공천파동'은 단순히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법적인 흠결을 안고 있다. 이른바 '경선방해죄' 논란이다.
정당법의 벌칙조항을 담은 제49조에는 경선의 자유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선의원 출신의 박찬종 변호사는 "49조 조항은 당대표 경선 뿐 아니라 대선후보 및 국회의원 후보 경선을 모두 포함한다고 봐야 하며, 유승민 의원이 공천신청을 했는데 컷도 하지 않고 스스로 결단하라며 아예 경선의 문을 닫는 것은 명백한 경선 방해"라고 주장했다.
헌법 8조 2항은 정당의 목적과 조직,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당의 중요한 활동 중의 하나인 공천행위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번 파동은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
정치의 또다른 한 축은 국민이다. 유권자가 없는 선거, 국민이 없는 국가는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칼에 피를 묻히지 못하는 친박 핵심의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정당한 사유없이 공천심사를 중단하고 결론을 내지 않는 것은 국민의 참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다. 선거구 획정을 두 달이나 지연시킨 것도 모자라 4.13 총선이 21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누가 후보인지 결정하지 않는 것은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훼손하고 정당한 결정을 방해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
이러한 무리수는 역풍을 불러왔다. 수도권과 영남지역 경선에 나선 진박 후보들이 잇따라 고배를 마신 것이다. 탈락한 수도권 출신 한 진박 후보는 "명함을 돌릴 때마다 민심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당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들은 정두언 의원으로부터 '비루한 간신들로 기록될 것'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그런데 공천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특정인을 내쫓으려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절차적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위다. "헌법 1조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의 변이 이번 공천파문 과정에서 새삼 이유있는 항변이었음을 입증하는 듯하다.